#18 사람들

고양이 빌딩의 당신

by 스티븐

303호

관리네임 ‘돌.씽.남’

북쪽 구석에 위치한 303호는 복도는 꽤 지저분했다. 청소를 해도. 전문 청소 회사를 불러 입주 청소 마냥 한 번 더 했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복도 끝 구석에 곰팡이가 자리 잡았다. 외벽 실리콘 처리는 깔끔했지만 이웃한 건물로부터 가까워서 일까. 상시 그늘이 드리워진 3호라인 특성인 듯. 작은 운 빨에도 소심하게 흔들리는 입주자를 위해 5층으로 명명한 4층의 3호 라인은 그렇지 않았다. 2층도. 유독 3층만 그랬다. 임대 주기도 짧아 자주 바뀌는 편이었다. 처음엔 홀로 사시는 아주머니, 다음은 마케터를 꿈꾸는 프리터 여학생, 그리고 세 번째 입주자 돌씽남이다.


돌씽남은 이전 입주자들과는 달랐다. 단 한 마디 집 입구 복도의 곰팡이에 대해선 언급도 하지 않았다. 방에 들어가면 그만이었다. 처음 입주한 날. 방문이 열려 있었고, 입주자에게 공통적으로 전하는 안내문(캣타워 룰이 담긴 안내문)을 가지고 가니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펼쳐져있다.


책상과 책장의 물건을 하나같이 자로 잰 듯이 맞추고 있는 것 아닌가. 그리고 벽하나, 바닥 모서리를 타는 몰딩은 깔끔히 쳤다. 삐져나온 전선이라곤 단 1mm도 보이지 않게 마감한다. 벽에는 큼지막한 평면형 TV를 조금의 기울어짐 없이 굳건히 걸었고, 화면 안엔 스크린 테스트가 돌고 있다. 입주자는 팔을 걷어붙인 채, 깨끗한 걸레로 바닥과 벽을 다시 힘주어 훔치고 있다. 전형적 초보 홀로서기 자세다. 수년간 임대인 관찰 일지를 쌓아 본 경험으론 그렇다. 첫 홀로서기 땐 잘 가꾼다.


- (아주 오랜만 혹은 첫 홀로서기군. 그래도 회사는 그럴싸한 곳. IT 아니면 대기업이겠다.)


헌데, 그 뒤로 매일 출퇴근은 하지만 시간은 일정치 않아 뭘 하는 분인지는 도통 모르겠더라. 넥타이는 항상 메고 있어도 세미 캐주얼한 양복의 옷차림. 볼록 나온 배. 전형적 50대 중반 샐러리맨. 한 쪽 어깨에 오래된 가죽 가방이 항상 메어져 있다. 마치 오늘 피곤한 날이라는 듯, 가방 주머니에서 삐져나온 서류가 처량하다.


건물 내에서보다 건너편 한 블록 너머의 편의점에서 마주치곤 했다. 나는 그를 알고, 자주 봤다고 기억하지만. 그는 나를 기억 못하는 듯 인사를 해도 받는 둥 마는 둥이다. 심지어 십 분 전 편의점 앞에서 인사를 하고 엘리베이터에서 다시 만나도 아는 인기척조차 없다. 편의점에선 항상 맥주를 마시고 있다. 낮이건, 오후건 그리고 저녁이건.

한 여름이었던가. 매미가 울던 여름 어느 휴일.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스트레스성 압력 때문에 뭔가를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는데, 집엔 먹을 게 없어 편의점으로 나섰다. 그 날도 건물의 민원 한 건을 힘겹게 해결한 날이었다.

헛헛한 마음에 잘 먹지 않던 짜고 매운 것이 필요했다. 결국, 컵라면을 사들고 편의점 앞 의자에 앉았다. 스트레스엔 이열치열이다. 뜨거운 온도가 밖으로 새지 않게 젓가락을 잘 올려두고 움켜잡았다. 바로 그때, 내가 앉은 자리 뒤에서 게걸스럽게 뭔가를 들이키며 나는 큰 소리.


- 알았다고. 알았어. 보내주면 되잖아. 지금 좀 힘들어. 내일 꼭 보내줄게.


그의 목소리다. 뒤돌아 슬쩍보니 얼굴은 상기되어 있고, 다시 한 번 캔 맥주를 벌컥 들이킨다. 씩씩대며 휴대폰을 노려보고 있다.


- 아니. 지난달엔 보낸 거 아냐? 무슨 석 달이 밀려. 뭐? 배드파파? 뭐? 신고? 해라 해! 끊어!


그리곤 전화기를 편의점 테이블에 던지며 뇌까린다.


- 그래. 내 죄다. 너무 젊은것을 만난 내 죄지. 어휴. 다시는 결혼하나 봐라. 바람은 누가 나고 싶어 나나? 아이고. 어휴. 젠장.


전세가 아닌 연세 개념에 가깝게 계약을 변경해달라고 하더니. 매달 보내야 할 양육비가 필요한 상황 이라니. 임대인으로서 이런 사정을 알고 싶지 않지만 이렇게 우연히 듣게 되는 경우는 피할 수 없다. 하지만 마음 써선 안 된다. 당장 공실로 전이될 이슈 대상은 아니니. 며칠 또 지나고 나면 잊어야 할 일상적 이벤트 중 하나일 뿐. 지금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라면의 짭짤한 내음만이 반갑다. 정말 잡다하고 안쓰러운 일상들을 잊기 위해.


302호

관리네임 ‘태.권.도’

원장이었다. 비혼남.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말투와 성격. 군에서 바로 제대한 듯 남자다운 어감 충만하다. 군살 없이 꽉 잡힌 몸매. 계약 일에도 트레이닝복. 평상시에도 트레이닝복. 눈썹이 짙어 인상도 강인한 편인데다가, 눈매는 살짝 작고 옅게 늘어져 있는 호남형. 턱선과 목선에 잡힌 근육이 보일 정도로 강인함이 느껴졌다. 입주 후 반년이 지나도록 누구 한 명 데려오는 적도 없고 아침과 저녁엔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 자칫 어디 경기도 외각 직업 군인인가 싶을 정도. 하지만 어느 날엔가 1층에 주차를 하기 시작할 때부터 알게 되었다. 노란 호랑이가 그려진 태권도 학원 차량. 그는 언제부터인가 이 차로 출퇴근하기 시작했고, 운동 가방인지 큼지막한 가방을 메고 퇴근하는 모습을 보였다. 오른팔엔 가방 외에 검은색과 붉은색이 반반 석인 풍띠가 들려져 있다.


태권도 학원. 계약서를 통해 살펴본 본명과 연락처 그리고 주민등록번호의 나이를 가늠해 구글링. 금세 검색 결과가 나왔다. 국가대표 태권도 선수 출신. 은메달리스트. 스포츠엔 워낙 관심이 없다보니, 누군지도 몰랐는데 괜한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그의 학원은 아닌 듯 했다. 월세가 밀린 적도 한두 번 있었고. 기사를 살펴보니, 협회장 선거 지원 활동을 했는데 이때 권력의 반대파에 잘못 선 듯 했다. 결국, 국가대표 라인업 싸움에서도 밀렸고 코치 자격도 잃어버린 듯 했다. 태권도 선생은 아마도 그 여파의 선택지 였을듯.

입주 때 기억을 되살려보니 안내문 전달 차 들른 그의 집도 인상적 이었다. 미니멀리즘과, 운동에 집착하는 사람의 전형적 모습. 집 안의 물건은 고작 세 가지. (옷걸이, 밥상, 벤치프레스) 그 외엔 아무 것도 없었다. 가장 깔끔했다. 임대인 입장에선 이런 임차인이 그나마 편하다. 더럽히지 않고, 고장 내지도 않으며, 이웃과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301호

관리네임 ‘보.험.아.줌.마’.

불혹의 미혼. 그러나 건물 남자들에겐 요주의 대상. 사람들에게 친절한 편. 특히 남자들에게는 지나친 친절. 결국 그 지나친 친절이 사단을 만들고 말았는데, 그 대상은 옆집 깔끔남 ‘태.권.도’. 입주 후 3개월여가 지났을까. 매미가 울던 여름날 휴일. 하루 종일 메시지와 메일을 통해 건물 임대인에게 전해달라는 302호 태권도의 연락. 이유인 즉, 옆 방 입주자가 괴롭힌다는 것. 공실이 생기면 바로 옮기고 싶다는 이야기로 출발했지만, 오후 들어선 메시지부터는 임대계약을 끝내고 퇴거하고 싶다는 메시지로 급변. 자의가 아닌 타의라며. 임대차 기간 끝내지도 않고 이사를 나가겠다는 것. 타의에 의한 것이므로 임대차 나머지 월세 금액은 내지 못하겠다는 단호함까지. 요구는 명확한데 숨은 의도는 보험아줌마를 좀 막아달라는 것. 임대인으로선 휴일에도 불구하고 입주자에게 하루 종일 시달리는 것만큼 큰 스트레스도 없다.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임대인이 보내서 방문한 것처럼 이야기를 시작했다.


- 무슨 문제인 건지 확인 해보라 하셔서 왔습니다. 괴롭힘을 당하신다고요?

- 이제야 보셨나보군요. 너무 힘드네요. 들어와 보세요.


의아했다. 왜 들어오라고 하지? 예상은 분명 옆집에 같이 가 보자라고 할 듯 했는데. 조용히 따라 들어가 보니 집안은 여전하다. 깨끗. 바닥에 앉아서 아무 소리도 내지 말라며 기다리라 했다.


- 어흠.


태권도가 큰 소리로 헛기침을 한다. 1분여가 흘렀을까. 갑자기 302호와 301호가 접한 벽면이 울린다. 음악소리다. 듣기 좋은 발라드에서 경음악 까지. 음악소리는 점점 커졌다. 리듬이 점점 경쾌해지는가 싶더니 벽이 울리기 시작한다. 울림은 좀 더 강해진다. 음악으로 인한 진동파가 아니다. 점점 더 커진다. 이건 좀 심하다. 그리고 둔탁하다. 아니 이건. 손으로, 팔로 쳐서 나는 소리다. 음악의 리듬과는 박자 차이도 있다. 이게 무슨 짓인가.


- 자 이제 시작입니다. 문을 열고 옆집으로 가서 얘기 해 볼 테니 따라오세요. 한 번 들어 보세요.


함께 복도로 나가려는데 내 앞을 손으로 막아서며 태권도 원장은 301호 초인종을 눌렀다. 누르자마자 1초도 지나지 않아 바깥 확인도 없이 바로 문이 열린다. 그리고 이어지는 큰 소리. 일반적인 항의 수준이 아니다. 도대체 나에게 왜 이러냐는 항변이다. 301호 아줌마의 웃는 소리가 이어진다. 아니 이게 무슨 상황인가. 그리고 뒤늦게 문 앞으로 나서며 보니 303호 돌씽남이 문을 열고 빼죽 얼굴만 내어 본다. 눈이 마주치니 겸연쩍은지 이내 문을 닫는다. 그리고 다시 들리는 301호 쪽의 소리.


- 그러니까 만나달라고요. 들어오시던가. 저랑 식사를 하시던가. 왜 관심표현을 그렇게 무시하세요.

- 저는 관심이 없다고 분명하게 말씀 드렸습니다. 이게 지금 몇 번 째 입니까. 저보다 나이도 있으신 것 같은데. 이건 좀 아니잖아요.


이게 무슨 상황인가. 아니 만나달라고 소음으로 괴롭히다니. 그것도 옆집에서. 그것도 연하의 남자에게. 나 역시도 겪어보지 못했던 상황. 거침없는 분 인건 알겠다만. 나서서 해결하기에 버겁고 기괴한 상황. 나도 모르게 그 자리를 슬그머니 피했다. 이후, 태권도로부터 전해오는 임대인에 대한 메시지는 더 격해졌다. 보내신 관리원에게 분명하게 보여주었고 상황을 보고 갔으니, 그 관리원에게 들으시는 대로 조치를 취해 달라. 당장 조치가 없다면 오늘 저녁부터 별도의 공간으로 이동할 것이다. 입주 시 전달해주셨던 캣타워 룰을 어기고 있으니 임대인으로서의 책임을 다해주기 바란다.


이 같은 상황을 겪어보지 못했던 내겐 당혹 그 자체. 어떻게 해야 하나. 처음 겪는 상황에 머리가 지끈거린다. 어쩔 수 없다. 찾자. 이런 상황을 심각하게 처리했을 사람. 더 격한 상황도 무심히 넘길 수 있을 것 같은 사람. 그래 그 분께 물어보자.

황 여사에게 연락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간단하게 말을 자르는 황 여사. 잠시 후 내게 간단한 답을 전달하고는 한 마디를 더했다.


- 아니 건물 이득 보고 팔아야하나 고민해서 연락하신 줄 알았더니만. 지금 그럴 때가 아닌데 아직도 이런 소소한 일로 연락하시면 어떻게 해요. (뚝)


그렇다. 황 여사나 JH는 내게 이 건물에 함께 살지 말라 하지 않았던가. 어디까지나 투자의 에셋인데, 에셋에 섞여 있으면 시야가 좁아지고, 비효율적인 시간에 얽매이게 된다던 그들의 조언은 정확히 들어맞았으니. 한심해진 내게 황 여사의 답은 간단했다.


- ‘법대로 처리 하시면 되요.'


법대로. 말은 쉽다. 그래도 무턱대고 변호사를 부를 수도 없고. 내려가서 연배도 있어 보이는 노처녀 아줌마에게 무슨 소릴 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하며 하염없이 태권도로부터 온 메시지만 다시 들여다보고 있었다.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봤다. 아침부터 전해진 그의 메시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난감한 마음만 그득. 그 와중에 한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캣타워 룰’.


그래 내가 세운 캣타워 룰을 다시 들여다보자. 경고할 건 경고하고 문제의 원인을 제공한 301호에게는 법대로 조치하겠다는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해야겠다.


그리고 짧고 굵게 A4 한 장의 종이에 ‘경고안내’라는 제목을 큼지막하게 붉은색으로 넣었다. 명확하게. 진지한 궁서체로.

‘캣타워 룰 6을 어겼으며, 장기적으로는 캣타워 룰 1과 2가 유발될 수 있는 원인을 제공했으며, 이웃한 이의 캣타워 룰 6을 선행하고자 하는 노력을 무시했다. 상기 위반 사항에 대해 캣타워 룰 7에 의거 법적 증거물로 활용될 수 있는 CCTV 영상을 임대 측에서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피해당사자에게 전달할 수 있고, 소송이 발생할 경우 증거물로 제출될 수 있음을 미리 알려드린다’


가기 싫은 301호를 다시 방문.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연 301호 보험아줌마에게 전달했다. 나직한 소리로 명확하게 이야기했다. 놀라는 보험아줌마에게 오늘 중으로 사과 및 재발방지 약속이 있어야 한다고 전했다. 긴 변명 없이, 짧고 굵은 톤으로 또박또박.

다행히 경고 안내장의 효과는 바로 작용했다. 전달 후 6층으로 올라와 태권도에게 보낼 메시지를 입력했다. 경고조치 했음을 안내한다는 메시지를 입력하고 있는 와중. 바로 메시지 도착을 알린다. 보험아줌마의 메시지다.


‘이런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그에게 관심이 있어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눠왔다. 대화로 타협하겠다. 더 이상 임대인에게 이 일로 연락 갈 일은 없을 터이니 한 번만 이해를 부탁한다.’


메시지는 그리 길지 않았지만 이즈음에서 마무리 해주길 바랬다. 조용히 302호 태권도에게 작성 중이던 안내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스트레스성 경험에 허기를 느꼈다. 뭐라도 먹어야겠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302호는 우연히 건물 앞에서 만난 내게 임대인에게 전하라 했다. 감사했다며. 그 후로 301호로부터 피해는 없지만 가급적 건물에 공실이 생기면 옮길 수 없겠냐했다.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그녀와 마주치는 것이 부담이었으리라. 이해는 간다. 자칫 중재를 잘못 서거나, 오해가 더 쌓이면 데이트 폭력이나 스토킹처럼 전이 할 지도 모르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공실은 하나 밖에 없었다. 201호. 그는 어디서 소문을 들었는지 201호는 싫다했다.


301호는 조용했다. 보험아줌마 특유의 너스레인지. 마치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한 모습이었다. 괘씸했다. 그렇게 경고 한 번에 체념할 호감수준 이었다니. 왜 그리 복잡하게 사는지.


하지만 임대인인 나에게는 좋은 경험이었을 뿐만 아니라, 다행스러운 결과였다. 한 여름의 해프닝으로 끝난 것에 감사했다. 물론 탐탁지 않은 라면과 함께 돌씽남의 사정도 알아버린 상황이 되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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