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빌딩의 당신
임대기간 1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 예상대로 였다. 잦은 나의 출현에 건물주와 매우 가까운 친인척 일지 모른다고 짐작한 사람들. 그들의 시선은 무섭다. 아니 무섭게 돌변했다. 처음엔 입주자 자격 충만을 들어, 곧잘 아무 소리 없이 반응도 하는 둥 마는 둥 잰체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하나 둘 사정 이야길 털기 시작했다. 조용히 경청하는 내 자세가 무언의 동의라 이해한 걸까. 나를, 나와의 잠시 동안의 대화를, 메마른 사정에 마중물 여기는 듯 했다. 결국 골치 아픈 상황까지. 지난번 이야기 하지 않았냐며 임대료 조정은 합의 한 것 아니냐는 우격다짐으로 일관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부당당한 상황이 늘어나면서 나 스스로 지쳐버렸다. 이내 내린 결론. 입주자들과 친해져서도, 필요 없는 이야길 나눠서도 안 된다는 김 대표님의 조언을 그대로 따르기로 했다.
다만 한 가지 명확히 하고 싶었던 나름의 계획은 고수 했다. 입주자 관리, 임대인으로서 자산가치를 고려해 운용 경험은 더 쌓고 싶었다. 누가 그러더라. 오피스텔 건물은 생물이라고. 사람의 사고와 이야기가 살아 움직이는 곳이라고. 그 움직임과 이야기를 모른다면, 내 자산으로 키운 에셋이 어떤 성장과정을 거쳤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경험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한 호 한 호 다가가 살피고 기록하는 것은 유지했다. 게을리 하지도 않았다. 한 발짝 떨어져 선 듯 거리를 두되, 애증을 가지고 바라보는 자세로. 고양이의 식빵 자세로.
601호
사람들은 내려가는 것은 편하게 생각한다. 반면, 자신이 거주하는 층 이상으로 올라오는 것은 불편해 한다. 아니 불편해서 올라오지 않는 게 아니라, 그럴 생각을 잘 하지 않는다. 해서 나는 최고층인 6층 옥탑방으로 자리를 잡게 됐다. 스스로 다짐했다. 나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존재로서의 시선에 만족한다. 스스로 믿고 그걸 즐겨야 한다. 적어도 이 건물 안에선. 그들의 눈에 띄지 않는 편이 좋다.
사람이 거주하는 나의 ‘집’ 공간은 내가 쉬는 공간이다. 쉬는 공간은 조용히 쉴 수 있어야 한다. 마땅히 가까이 있는 이들 외엔 일부러 올라오는 경우는 별로 없다. 해서 6층의 반은 혹시 모를 이변의 공간으로. 그리고 반은 내 공간으로 문과 복도를 분리했다. 복도에서 보기에 내 공간은 마치 창고마냥 굳게 닫힌 철문으로 한 번 더 단절시켰다. 여간해선 이 문을 열고자 하는 마음이 들지 않을 정도. CCTV는 복도 쪽을 정확히 가리켰다. 내 방에선 전체 층의 공용공간과 더불어 이 낯선 6층 복도를 응시하고 기록했다. 혹 누가 왔었다면, 화장실을 찾지 못해 급한 생리 현상을 해결하려는 경우다. 쪼그려 앉거나 서서 벽만 응시하고 내려간 자리엔 가혹한 냄새만이 남아 있을 뿐. 이런 경우는 대부분의 임대 건물에선 발생하는 일. 그렇게 항상 6층 옥상 복도는 예외이고 무료했다.
복장은 지질한 동네 아저씨. 추리닝 바람으로 일관했다. 자주 마주칠 일 없는 옥탑방 방랑자로서 충분한 자태. 걷는 소리도 거의 내지 않고, 벽에 기댈 흔적이나 일을 만들지 않는 적절히 소외된 자. 내 스스로가 이 같은 모습, 걸음걸이, 말투, 눈빛을 자처했다. 2층에서 옥상 층으로 옮긴지 수 삼 개월 후. 이 같은 일관된 모습에 대해 건물 입주자들, 주변 상가에 입주한 음식 점주, 학원 원장들 사이 심심한 사람으로서의 소문만 드물게 돌았을 뿐이다.
고시 4수를 겪고 나서 신림동 꼭대기 산 자취방에서 하산한 불쌍한 친구. 사회경험 별로 없는 총각인데 직장에서 쫓겨난 이라는 둥. 군에서 제대한지 얼마 되지 않아 자리 못 잡은 백수라는 둥.
옥탑방에 사는 것 같은데 매일 같은 옷을 입고 다녀 동네에선 그냥 건물 관리 아르바이트생이라고. 가장 좋은 평가는 내가 설계한 이 마지막 평가였다. 이 평가가 조금 더 진정성 있게 용해되길 바랐다. 그래서 더 자주 같은 추리닝 복장으로 출연해 드렸다. 한 블록 떨어진 편의점에 갈 때에도, 두 블록 더 떨어진 조금 큰 슈퍼에 뭔가 먹거리를 사러 갈 때에도. 느리게 걸었고, 외모는 애써 다스리지 않았으며, 말 수 보다 기침하는 수가 더 많은 것 같은 행위 예술을 서슴지 않았다.
소문은 돌고 돈다. 편의점, 슈퍼, 세탁소, 빨래방과 같은 곳을 타고 다시 입주자들에게 자연스럽게 메아리로 돌아왔다. 그래서 입주자들에게 내 존재감은 점점 현실화 되었다. 난 옥상 알바 청년, 알바 아저씨, 그리고 알바 학생으로 정의 되었다. 가끔 건물주에게 전달해 달라는 거라며 용건만 짧게 이야기할 뿐. 자초지종과, 통사정과, 하소연은 더 이상 듣지 않아도 되는 이. 애써 바라던 바였다. 그리고 6층 탑층의 내 공간 밖은 허름한 철문으로 가로 막혔지만, 안은 방이 세 개나 포진한 나의 전용 펜트하우스였다. 입주자들에게는 철저히 숨겨진 건물주로서.
대신 나는 그들을 비즈니스 대상이라는 마음으로 살펴보고 기록했다. 그들의 삶의 의미를 알 필요는 없다. 이 캣타워의 공간을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로서 알아 두어야 하는 특징적인 내용만 기록해두면 된다. 그리고 입주자들의 특징이나 일화는 그들과 대면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정보로 활용했다. 오피스텔은 생물처럼 돌아가니까.
502호
관리네임 ‘사고유발자’. 매일 저녁 늦게 귀가. 반은 잠긴 눈. 항상 피곤에 절어 있다. 밤 12시를 넘겨 CCTV 붉은 LED를 켜곤하는 입주자. 막 사회생활을 시작했는지 발목과 팔목 위로 단 짧은 양복차림. 새것으로 보인다. 봄이 오는 3월의 금요일엔 정신이 바짝든 모습이지만 늦가을에서 겨울의 월요일엔 무표정에 어깨는 축 쳐져있다.
어느 날. 눈에 띌 수밖에 없는 등장화면. 엘리베이터 안에서 휘청한 후 쓰러졌고. 119구급대를 불러야 하는 일을 만들었다. 30여 분을 내내 엘리베이터 안에서 잠을 청하더니 일어날 기미가 없어 직접 나섰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도 기동만 하고 문은 열리지 않아 결국 소방대원이 구출. 엘리베이터 안에선 코를 찌르는 술 냄새와 걸쭉한 잔여물을 남겨 놓으셨다. 물걸레질과 락스 그리고 소독약까지, 3종 청소세트를 엘리베이터 바로 앞 창고에 비축하게 만든 일화다.
- 엄마 그냥 내가 알아서 할께 이제 그만해.
내 보기엔 아직 철없다. 짜증 제대로 섞인 말투. 엘리베이터에서 조차 거침없는 소리로 저항한다. 분명 밥 잘 챙겨먹어라, 옷은 깨끗이, 회사에서 선배들 말씀 잘 듣고, 서투르게 돈쓰지 말라는 등의 애정 어린 부모님의 잔소리에 대한 답 일게다. 입주 후 5개월 동안 단 한 번도 월세를 밀리지 않는 칼같은 입금. 그가 아닌 그의 어머니 이름으로 기록되는 월세입금.
어느 날은 지방에서 올라 오셨는지 양손에 큰 여행 가방이 끌려왔다. 사고유발자의 어머니. 502호를 찾아 바리바리 물건을 싸들고 엘리베이터를 타셨을 때. 날 보시곤 흠칫 위아래로 훑어보셨다. 추리닝 바람의 내 모습이 못마땅하다는 표정이셨다. 그리고 사흘째 되 던 날이었던가.
- (딩동)
- (철컥)
열린 문틈 사이. 문 밖을 낯설어 하시는 눈치다. 한 쪽 눈만 간신히 보일 정도의 문틈으로 누구냐 물으셨다.
- 안녕하세여 건물 관리사항 연락차 왔습니다. 건물 관리소에서 전해드립니다.
모자 지간이라 할지라도, 예외는 있을 수 없다. 사흘째 동거인이 함께 있을 수 없는 건물임을 안내하는 마음은 썩 좋지 않다. 하지만 어쩌랴. 이 캣타워의 룰이다. 어쩌면 당신의 아들이 이 건물에서 더 이상 이상한 행동이나, 낯선 이를 데려와 살지 않는 곳임을 아시기에는 좋으리라.
비록 사흘째 되기 전날 밤. 싸우는 큰 소리가 났다손 치더라도. 불편하다는 신고가 501호로부터 있었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입주자간 싸움은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으니. 사고유발자 어머님은 바로 사흘째 되던 날 오후에 가셨다. 그 후로 가끔 친구를 데려와 질펀하게 술을 마시는 듯 한 모습이 보였지만, 며칠간 재우는 케이스는 없었다. 그 선을 넘는다면 분명 누적 경고가 들어갔을 테고. 다른 집을 알아봐야 했을 테니. 이 녀석이 벌였던 엘리베이터의 사건 때 소방대원과 구급대를 대면한 경험이 트라우마로 남았는지, 그 후로 엘리베이터에서 쓰러지는 일은 더 이상 없었다. 요주의 인물이다.
501호
관리네임 ‘차. 도. 녀’
매일 정확한 시간에 출근하고 퇴근한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건 주말에나 있을까 말까. 상당히 부지런하다. 흔들림 없고. 옷맵시도 돋보인다. 샤넬 계열의 향기. 그녀가 발산하는 향은 꽤 자극적이었다. 얼굴은 핏빛도 없이 창백한 모습이지만, 턱은 들고 시선은 15도 위를 고정한다. 차갑고 치밀한 느낌이다.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만난 필로티 공간에서도 도도하다. 주말에도 내 집이란 환경에선 연출하기에 버거운 캐주얼 양장이다. 입주 후 6개월 즈음에선가. 마주치는 횟수가 부쩍 늘었지만, 그녀는 상냥하게 인사는 받되 그 이상의 대화는 원지 않는 듯 데면데면하다. 나도 말수가 없고, 그녀는 정확히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 외에는 더 보태지 않았다. 502호 사고유발자에 대한 소음 신고 말고는, 지내면서 그녀 스스로 특별한 경우는 없었다.
다만, 입주 전 후 소소한 특이점 두 가지가 기억에 남는다.
하나는 입주 때의 고집스러운 조건. 보통의 입주자와는 다른 특이한 사항을 집요하게 요구해서 당혹스러웠다. 실질적인 가장 최상층에 위치하는 5층. 공실이 이미 아래층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상층을 고집했다. 직접 둘러보고 최상층의 특징으로 높은 층고를 확인했다.
헌데 내부 인테리어를 하겠단다. 새 건물에서. 매매도 아닌 임차인의 자격으로 추가 인테리어를 감행하겠다? 비상식적이다.
예외 케이스를 만들기 싫었지만 받아 들였다. 짐이 많고 특히 책과 일 관련 장비가 많다고. 바쁠 땐 퇴근 후에도 집에서 일을 해야 할 경우도 많단다. 때문에 오피스텔에 있어서 침실 공간과 생활공간을 분명히 구분하고 싶다는 이유. 단, 퇴거 시 반드시 인테리어를 원상복귀 하겠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3년 장기 계약을 기본 조건으로 내세우며 임대료 인상에 있어서도 이견이 없다. 갱신에 있어서도 프로토콜 거래는 오히려 좋다했다. 나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다. 분명히 퇴거 시 인테리어를 원상 복귀하겠다 할지라도, 복층을 만든 게 어쩌면 다음 임차인으로의 전환조건에도 긍정적 요인이 될 수 있으니.
다른 하나는 입주 후 관리를 고려한 시설 확충. 외부로부터 동관 하나를 추가 증설해서 들이겠다고 했다. 복층이기 때문에 에어컨을 증설하고 싶어서였을까. 시스템 에어컨임을 설명했더니 전혀 다른 이유였다. 일부 전력을 측정하고, 디지털 데이터를 주고받는 전용 케이블용도. 자신은 투자 관련 일을 하는데 - 처음엔 꽤 자극적 외모와 도도함 때문에 모델인줄 알았다 - 최근 투자 연구과제 관련 사항으로 스마트팜을 운용한단다. 다양한 화장품에서 뿜어내는 원천 향원료가 되는 허브. 이 허브를 기르는 비닐하우스를 디지털 스마트팜을 구축한단다. 그것도 바로 앞 탄천에 늘어선 비닐하우스를 이용한다고. 물론 오피스텔 계약이 성사된다면.
온실 유지 및 작물 신장을 데이터화 하는 연구. 나로서는 전혀 모르는 분야지만, 이를 관리하기 위해 임대한 비닐하우스와 연결되는 작은 동관 케이블만 설치한다고.
계약서 내엔 임차인이 책임지고, 제때 관리하고, 퇴거 시 반드시 원상복귀를 조건으로 명기했다. 임대인으로서 문제 삼을 여지는 없었다. 건축법을 준수하면서 다른 이들에게 피해줄 일 만 없다면 무슨 상관이겠는가.
차도녀와 특이한 일이 벌어진 것은 한 계절이 지나고 여름이 끝나가는 시점이었다. 항상 정장에 꽃 아니면 화병을 들고 귀가했던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와인을 여러 병 쇼핑백에 넣고 퇴근하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날도 엘리베이터 안 이었다. 다른 손으로 옮겨드는 쇼핑백 안에서 챙 소리가 난다. 와인 병이 내는 소리다. 함께 탔던 나를 뒤돌아보며 인사하려는 듯 했다. 헌데 안색이 붉다. 눈을 게슴츠레 뜨더니 이내 충격적 한 마디를 건넨다.
- 야~ 너! 몇 살이야?
이게 무슨. 사람이 이렇게 무례할 수가 역시 취기가 올라 있었다. 어이가 없어 얼굴을 자세히 뜯어봤다. 볼은 이미 빨갛고 광대뼈는 몽글 했으며 블라우스 단추는 하나 풀어져 살짝 속살이 비칠 듯. 나이를 이야기해야 하나 싶다가 안녕하세요 라는 짧은 인사만 건넸다. 그 순간 차도녀의 큰 눈이 작아지더니, 이내 다시 힘주어 치켜뜨고는 내게 다가서려다 그만 발을 접질렸다.
야멸찬 하이힐. 그대로 넘어졌고 그녀는 내게 상반신을 기대어왔다. 나는 겨우 쓰러지려던 그녀를 부축해 잡았다. 이 무슨 황당한 상황인가. 일으켜 세우려했다. 헌데 힘이 부친다. 결국 함께 주저앉았다. 옆으로 앉은 그녀는 나를 꼭 움켜잡았다. 그리고 다시. 서로 눈이 마주쳤다. 어디서 본 듯 했다. 어디 선가 한 번은 본 듯한 눈빛이다. 이내 5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지만 그녀는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중심을 잡고 힘을 주어 일으켜 주려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그리고 내가 거주하는 6층에 엘리베이터가 서자 그녀가 말했다.
- 바람 좀 쐬게 해줘요.
그녀의 음성은 흔들리고 있었다. 숙성된 와인 향과 향수냄새가 뒤섞여 전해졌다.
- (꽤 많이 마신게로군)
6층 밖 개방된 옥상에 마련해둔 평상에 그녀를 앉혔다. 한 동안 한 숨만 쉬는 그녀 멀찌감치 앉았다. 10여분이 흘렀을까. 이내 정신이 좀 드는지 살짝 눈을 뜨고는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그녀는 한 마디 뱉어내는가 싶더니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난감하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니까. 처음 본 사이는 아니나 엄연히 말도 잘 섞지 않던 사람에게 이런 경우가. 날 옥탑방 알바생이 아닌 다른 이로 본 것일까. 이해되지 않는 추측. 그저 가만히 있어야겠다 싶었다.
- 힘들어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기억도 엉망이고. 당신은 기억이 있어요?
- 네. 501호 사시죠? 어서 내려가세요. 전 이만···
난 짧게 인사하듯 이 말만 남기고, 평상을 가볍게 넘어, 반대편 내 공간 안으로 들어와 버렸다. 하소연이 시작될 게 뻔하다. 내가 차도녀에게 답을 해 줄 필요는 없다. 더 알아서도 안 되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열심히 내가 한 조처가 잘했다며 생각하고 또 확신했다.
하지만 하나는 계속해서 머리에 남는다. 차도녀가 바라봤던 그 눈. 그 시선. 어디 선가 본 듯했다.
503호
관리네임 ‘효.도’.
입주 첫날 가장 많은 도우미들이 동원된 모습이 이채로웠다. 새벽부터 시작된 입주자의 이사. 입주자는 실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주변의 사람들만 연신 짐을 나르기 바쁜 듯 했고. 입주자는 가장 늦게 오후에서나 등장했다. 서류를 다시 보니 그럴 만하다. 황혼의 할아버지. 자식들이 효도하듯 연신 웃으며 이삿짐을 나르더니 한참 뒤 나타나셨다. 그리고 그 웃던 사람들은 이사를 마치자마자 냉정하게 뒤돌아 사라졌다. 자식이 아닌걸 입증하듯. 들어서는 할아버지의 입주 발걸음은 무척 느리고 지난했다. 이동을 잠시 돕는 이가 뒤에 섰지만 부축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뒤로 몇 걸음 뒤쳐져 걷는 이들 세 사람. 가족 같아 보였다. 입실 후 30여분이 지났을까 되돌아 나오는 이들을 할아버지는 마중하지 않았다.
임대료는 매달 지켜졌다. 입금 내역 메모에 항상 남자 이름, 여자 이름, 다시 두 달 전의 같은 남자이름. 자녀분들이 돌아가며 입금하는 듯 했다. 순서도 틀리지 않았다. 항상 아침, 늦은 오후 하루 두 번 외출하시는 듯 했고, 시간은 일정했다. 황혼의 나이답게 조용한 생활 패턴. 그러나 5층에선 가장 많은 민원을 발생하셨는데 다름 아닌 차도녀와의 트러블. 외출 후 돌아오시면 항상 외로우신지 문을 열어두셨다. 그것도 매번 꽤 오랫동안. 차도녀는 일찍 퇴근 하는 날이면 복도에서 냄새가 난다며 짜증을 냈다. 처음엔 조용히. 최근엔 복도가 떠나갈 정도로 쩌렁쩌렁하게. 마치 할아버지가 듣고서 문을 빨리 닫기를 채근하듯이. 황혼의 홀로 사시는 할아버지께서 냄새가 나면 얼마나 난다고 그러나 싶기도 했다. 그걸 지적하는 이는 5층에 단 한 명 차도녀뿐이었으니까. 어쩌면 5층엔 차도녀 혼자만 여자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차도녀를 우연히 마주쳐도 웃기만 하셨다. 그리고 언젠가 내게 이야기하셨다.
- 자네 이 건물에 사나? 혹시 5층에 잠시 들르면 내 방에 한 번씩 들러 얼굴이나 한 번 비추고 가. 잠시 놀다 가면 더 좋고. 내가 가끔 일어나지 않으면 어쩌나 싶어서 말이지. 가급적 문을 열어둘 터이니 언제든 자네 편할 때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