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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thingnewri Nov 26. 2022

#6 두번째 속초 설악산, 권금성과 울산바위

강릉 한달살이

경포호에서 보는 대관령이 너무 멋져서 산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설악산에 갔다.

*이번 편은 '#1 경포호에서 마주한 수묵화'와 이어집니다.





설악산에는 케이블카가 있어 등산하지 않아도 멋있는 경치를 쉽게 볼 수 있었다. 나 역시 설악산 케이블카를 타고 어느 바위에 도착했다. 마주하는 설악산의 능선엔 여전히 눈이 쌓여있었지만, 그날은 유독 따뜻했다. 거추장스러운 롱패딩은 벗어 던지고 나도 사람들이 있는 곳을 향해 가파른 돌산을 올랐다. 바위 위에 올라 설악산의 능선을 감상했다. 나목들은 겨울을 끝내고 봄을 준비하고 있었다. 강인한 강원도의 눈은 봄날의 햇살에 녹아내리고 있었고, 산골짜기에서 흘러온 물이 개울을 따라 졸졸 흘렀다.





볕이 설악산의 바위를 따뜻하게 데워놓은 듯 했다. 어느 바위에 누워 성큼 다가온 봄을 온 몸으로 실감했다. 나는 눈 부신 햇살을 견디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홀로 설악산에 누워 오롯이 설악을 느꼈다. 바람과 햇살, 눈이 녹아내리는 소리, 사람들이 재잘대는 소리, 그리고 어쩌면 겨울잠에서 깬 동물들의 발걸음도 들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정확히 일주일 뒤 나는 다시 한번 설악산으로 향했다. 이번엔 현대과학의 힘이 아닌, 순전히 자력으로 올라가 보고 싶었다. 여러 코스 중 나름 쉽다고 알려진 울산바위로 향했다. 두 번째 설악산은 게스트하우스에서 함께 지내고 있는 문과 함께 했다. 울산 바위로 가는 길은 힘겹고 무서웠다. 초반엔 완만한 경사와 다듬어진 길로 편하게 올라갔지만, 흔들바위 위에 있는 길들은 정말이지 지옥의 오르막이었다. 특히 울산바위에 철심을 박은 계단을 오를 땐 정말 가파르고 위험했다. 나는 휴대폰을 떨어트릴까 봐 주머니에서 꺼낼 수도 없었다. 나는 손잡이를 동앗줄처럼 꼭 붙잡고 힘겹게 올라갔다. 수많은 계단과 가파른 경사들은 여전히 아찔하게 느껴진다.




울산바위 정산에 나보다 먼저 오신 할머니가 계셨다. 머리가 하얗게 지신 어르신의 눈엔 내가 앳되어 보였는지 내게 몇 살인지 정중하게 물어보셨다. 나는 민망하게 내 나이가 스물다섯임을 밝혔다. 어르신은 아기가 어떻게 여길 올 생각을 했냐며 대단하다고 말씀하셨다. 어르신은 '훌륭한 사람 되세요’라는 말과 함께 여러 덕담을 해주셨다. 낯선 어른에게 받는 칭찬과 아이 취급은 참 오랜만이었다. 나는 어른과 아이, 어느 사이에도 낄 수 없을거라 생각했는데 낯간지러운 아이 취급은 나를 들뜨게 했다. 나는 그저 앞선 이들을 따라 올랐을 뿐인데, 다른 등산객들보다 어리다는 이유로 이런 칭찬을 받는다니. 산이 더 좋아졌다. 그렇지만 '훌륭한 사람'이라는 말은 나와 정말 안 어울리는 단어라고 생각했다. 여든이라고 밝힌 어르신이 내게는 훨씬 멋있고 존경스러웠다.






정산에 오르니 바람이 솔솔 불었다. 등산하느라 젖은 몸이 시원해졌다. 문과 나는 가지고 온 빵과 과일을 먹고 누웠다. 얕은 단잠을 잤다. 낮잠을 자고 나니 내려갈 힘이 생겼다. 이제 와 고백하자면 올라오면서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은 “와, 내가 저길 오르는 건 아니겠지?, 어떻게 내려가지?"였다. 오르면서 보이는 커다란 바위를 보면서 ‘설마 저게 울산바위는 아니겠지?, 저길 올라야하는 건 하니겠지?’를 속으로 외쳤다. 그리고 지옥한 계단 오르기를 시작할때쯤 어떻게 내려갈지를 먼저 고민했다.



나는 끝 심이 정말 부족한 사람이다. 처음엔 열정에 불타올라 일을 저지르고는 금방 식는다. 모든 일에 쉽게 열정을 가지고, 쉽게 질려버린다. 이런 나에게 있어서 등산은 '참을 인' 그 자체였다. 등산, 말 그래도 산을 오르는 것이다. 산을 직접 오르기 전에는 '등산'만 생각했다. '하산'은 생각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직접 산에 올라보니 목표인 정산에 오르면 다시 내려와야했다. 등산만 할수없다. 등산을 한다면 하산 역시 필수적이다. 평소 나였다면 이미 질려버리고 하산은 물론 정상 근처에도 다가가지 못한 채 관뒀겠지만, 산은 달랐다. 산이라는 장소가 나에게 끝까지 할 힘을 줬다. 그래서 등산과 하산을 모두 해낼 수 있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오르는 일만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왜 산을 오르내리는 일을 '등산'이라고 하는 걸까. 내려가는 일도 정말 중요하고 어려운데. 영어에서도 마찬가지다. 'hinking'과 'climbing' 둘 다 오른다는 의미이다. 등산을 통해서 배웠다. '등산'뿐만 아니라 '하산'도 정말 중요하고 멋진 일이라는걸. 동시에 삶은 직선이 아니다. 산을 오르면서도 산의 지형에 따라 오르락 또는 내리락 거린다. 그렇게 오름과 내림을 반복하면서 우리는 산 정상에 다다른다. 인생 역시 그러하다.




경포호에서 첩첩산중의 수묵화를 보았고, 직접 강원도의 산에 오르러 갔다.

그렇게 나는 산에 더 빠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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