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듣도 보도 못했던, ‘가면 증후군’
요즘엔 너도 나도 있다는 그 흔한 증후군 중의 하나가 바로 ‘가면 증후군’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사실 나는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다.
다만 난 꿈에 그리던 회사에 입사한 후로 계속 시름시름 시들어갔다. 누가 야단을 친 것도, 누가 지적을 한 적도 없었는데 말이다. 오히려 팀원들은 “와아- 새로 들어왔는데 들어오자마자 적응을 해버렸네.” “와- 진짜 잘한다.” 하며 너도나도 나를 격려해 주고 북돋아주기 바빴다. 정작 나 자신을 말려 죽이고 있는 것은 나였다. 열댓 명 정도 되는 팀원들은 하나같이 다들 자신감이 넘쳐 보였고 프로페셔널해 보였다. 자신들이 하는 일에 굉장히 자부심이 있어 보였고, 그 모습들이 아주 반짝반짝하다 못해 번쩍거렸다. 그들의 작업물은 진정한 디자이너, 진정한 아티스트가 아니면 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훌륭했다. 아무리 봐도 내 포트폴리오 작업물들이 한심해 보이기 시작했다. ‘도대체 난 이 대단한 사람들이 일하는 곳에 어떻게 들어온 거야. 이 사람들은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나를 뽑은 것임에 틀림없다, 누군가의 포트폴리오와 내 포트폴리오가 바뀌어서 전달됐었나 봐. 누군지 몰라도 그 사람이 이 팀에 들어왔어야 했는데 내가 잘못 들어왔어.’ 하는 생각들이 점점 더 큰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팀 내 미팅 외에도 회사 전체 규모의 미팅들이 상당히 많았는데, 당최 뭐라고 하는지 내 두 귀는 굳이 주워들으려고도 않는 것 같았다. 그저 소음처럼 들렸고, 나의 뇌는 미팅 때마다 잠시 휴식 중이셨다. 그러니 시간이 지날수록 내 마음속에 들어앉아 있는 시꺼먼 단어들은 더욱더 기세가 등등해서 내 숨통을 지그시 조이느라 신들이 나 있었다.
우리 회사에는 일대일 면담이 아주 캐주얼하게 이루어지는 편이다. 한국 회사는 어떤지, 또 미국에서도 다른 큰 회사에서 일해 본 경험이 없어 잘 모르긴 해도 우리 회사는, 적어도 우리 팀은 일대일 면담을 ‘매우 장려’한다. 일대일 면담은 팀원 내 누구든 자유롭게 신청할 수 있고, 꼭 일과 관련된 주제가 아니어도 그 어떤 주제여도 상관이 없다. 사실 일하는 시간에 ‘수다 떨 명분’을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입사한 지 한 일이 주 정도 되었을 시기였던 것 같다. 매니저는 세심하게도 내가 잘 적응을 하고 있는지 간간이 확인하고는 했는데, 아무래도 내가 어버버 얼버무리거나 그냥 괜찮다고만 해서 그런지 나에게 먼저 면담을 제시해 왔다. 매니저랑 일대일 면담이라니. 입사 3년 차에 접어든 지금은 주저 없이 내가 먼저 면담 스케줄을 잡고 마음 편히 얘기하게 되었지만 그때만 해도 어떤가. 아니 내가 뭘 잘못했나 하는 생각부터 들지 않았겠느냔 말이다. 가뜩이나 간도 쪼그라들었는데 이젠 거의 그 쪼그라든 모습마저 안 보일 지경이었다.
“그래, 잘 적응하고 있어?”
그 한마디에 다시 한번 더 괜찮다고 거짓말을 하면 될 것을, 눈물이 그 거짓말을 쫓아내 버렸던 것 같다. 눈물부터 나기 시작한 것이다. 매니저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나는 여기 있을 만한 인재가 아닌 것 같은데 뭔가 오해가 있으셨던 것 같아요, 도대체 나의 어떤 면을 보고 뽑은 거예요? 여긴 다 미치도록 유능하고 재능 넘치는 사람들뿐인데. 내가 잘 해낼 수 있을지, 이 팀 안에서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하고. 도움이 될 사람이고 싶은데, 민폐만 끼치는 팀원이 될까 봐 너무 걱정이 돼요. 아, 여배우들처럼 어여쁘게 눈물만 또르르 흘리며 아름답게 말할 수 있었다면 그나마 좀 봐줄 만했을 텐데, 그만 나는 세상에서 가장 열심히 우는 일그러진 얼굴로 더듬더듬 말하고 말았다. 으아앙-하고 말이다. 매니저는 당황했는지 ‘아이고, 클로이...’ 하면서 휴지를 건네주고 토닥여 주며 말했다. 우리는 팀원을 뽑을 때 아주 까다로워. 인터뷰할 때 우리가 본 너는 굉장한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었어. 너에게서 성장 가능성을 봤고, 우리 팀 문화에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다른 사람의 포트폴리오와 헷갈렸다니,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고. 너를 찾을 때까지 우린 꽤 많은 사람들을 면접을 해왔어. 그냥 어쩌다 얻어걸린 것도, 운도 아니야. 네가 잘했고 잘할 사람이기 때문에 뽑은 거야, 하며 나를 달래주었다.
그 말을 들을 때는 좀 나아지는가 싶었는데 집에 오니까 다시 또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성장 가능성을 보고 뽑았다니 지금은 잘하지는 않는다는 거 아니겠어?’ ‘역시 아무래도 굳이 영어가 완벽하지 않은 외국인을 뽑을 이유가 없는데 왜 뽑은 걸까.’ ‘면접 때 에너지가 넘쳤다니, 그럼 지금 내 모습 보고 엄청 실망했겠네.’
그 후에도 나는 곧 다시 시름시름 앓다가, 이번에는 매니저가 아닌 팀 전체 보스에게 가서 일대일 면담을 신청해 똑같은 고민을 그대로 털어놓았다. 역시 울면서. 왜 나는 울지 않고는 말할 수 없는 걸까 하면서 말이다. 그랬더니 보스가,
“어, 가면 증후군이네.”
하는 것이었다. 내가 말한 모든 생각 느낌 감정이 다 가면 증후군에서 비롯된 거라고. 그리고 네가 보기엔 다른 팀원들이 다 쿨하고 멋있어 보이지만 사실 그들도 다 똑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나처럼 자신들의 작업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기가 못난 것 같고, 자기에 대한 어떤 모습에 다들 속고 있다는 생각에 휩싸이기도 하고. 다들 느끼고 있단다. 그저 누군가는 그걸 잘 숨길 수 있고 누군가는 좀 더 겉으로 드러날 뿐이야. 팀원들이 다 너무 재능이 뛰어나고 자기 분야에서 잘하는 사람들이라, 그런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으면 그 누구라도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감정이고 생각이지. 게다가 우린 다 아티스트들이잖아? 감성이 예민할 수밖에 없지, 하하- 하면서. 본인도 자신이 리더인 것에 대해 불안하고 자기가 적합하지 않은 것 같고 다들 속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정말로 다른 팀원들도 나와 같은 사람들이라는 건 머지않아 알 수 있었다. 그 점이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하지만 이 가면 증후군을 떠나보내기까지는 그 후로도 2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떻게 이 증후군을 마음속에서 내쫓아버렸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느 날 문득 ‘어, 그러고 보니 나 이제 이 팀에 쓸데없는 사람이라는 생각 안 하네?’ 하고 깨달았다. 물론 하루아침에 이겨낸 것은 아니다. 주위에서 많은 도움을 주었다. 같은 주제로 징징거릴 때마다 다그치거나 귀찮아하지 않고 계속해서 토닥여준 팀원들의 마음과, 다른 팀원들이 나와 같은 감정들로 힘들어할 때 내가 건넸던 진심 어린 위로의 말들이 어떤 한편으로는 나 자신에게도 위로가 되었을까? 그리고 언제나 든든하게 기댈 수 있는 나무가 되어 준 남편의 공이 컸다. 또 과거의 씩씩했던 나의 모습들, 누가 뭐라든 무슨 상관이람, 하며 내가 하고자 했던 것들을 하나씩 해 나갔던 나를 되찾고자 한 노력들 역시 도움이 되었으리라.
한 가지 확실한 건, 난 지금 나에게 딱 맞는 곳에서, 딱 맞는 사람들과 딱 맞는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 같다는 점이다. 남에게 잘 보이려 포장하지 않은 내 그대로의 모습, 내가 하고 싶은 것, 나를 찾아가고 있는 중이라는 느낌이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하다. 이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 건 정말 일생일대의 행운 중 하나이지 싶다. 그리고 이 모든 게 이루어진 곳이 내가 그토록 살고 싶어 했던 애리조나인 것도. 이 멤버 이대로 영원히 같이 일할 수는 없겠지만, 이런 기회 속에서 현재를 살고 있음에 감사한다.
가면 증후군이 언제 어떻게 어떤 얼굴로 다시 돌아오더라도 사막 한가운데 오롯이 서 있는 선인장들처럼, 그렇게 잘 지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