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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이민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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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loe Park Aug 27. 2022

사막에 집짓기-2

나의 첫 내 집 장만 스토리

    아침 아홉 시였나 열 시쯤에 이메일을 일괄적으로 보낼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 시간에 회사에 미팅이 있었기에 모든 건 남편의 손에 달려있었다. 한국에 어디 콘서트를 보러 갈 때나 대학교 수강신청 때 사람들이 컴퓨터 여러 대와 지인들을 대동해서 완전한 전투태세를 갖추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우리는 둘 뿐인 데다가 두 사람이 있음에도 한 사람밖에 전장에 나갈 수 없게 됐다. 그래서 나는 나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잔뜩 긴장했다. 내 머릿속은 뿌연 안개와 폭발음과 답답함으로 가득했다. 


드디어 시간이 됐다. 나는 줌 미팅 창 옆에 나의 지메일 윈도우를 열어두고 새 이메일이 오는지 뚫어져라 쳐다봤다. 

이메일이 왔다! 

미팅 중이었기에 나는 마주 앉아 있는 남편의 얼굴색을 확인하며 상황이 어떻게 되고 있는 건지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나, 혹시라도 동시에 이메일을 열었다가 에러라도 날까 봐 나는 그 이메일을 열어보지도 못하고 있었다. 남편의 얼굴이 울그락 푸르락 하더니 금세 평안을 되찾는가 싶었다. 그러다 다시 그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게 되었다. 어두웠다. 어떤 일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우리는 며칠 전부터 어떤 자리의 어떤 평수의 집이 아니면 미련을 버리기로 하고 이메일이 오면 오직 그 조건의 집만 찾아 재빠르게 회신을 하기로 했었다. 그래서 어떤 집으로 할지 고민중은 아닐 터였다. 우리가 원하던 집이 아예 없었나? 평수는 있지만 자리가 영 별로인 곳인가? 미팅 중이라서 왜 그러냐고 물어볼 수도 없었다. 수상쩍은 기운을 느껴 눈동자를 살짝 굴려보니, 이메일 페이지가 있어야 할 윈도우에 갑자기 에러 창이 떠 있었다. 나는 몇 번이나 새로고침을 다시 해 봤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평생 한 번도 지메일이 다운된 적이 없었는데 정말 이게 실화인가 싶었다.


됐어!!!! 됐어!!!

남편의 얼굴에 웃음이 피었다. 미팅이 끝나고 어떻게 된 건지 물어봤다. 왜 그렇게 얼굴이 붉었다가 퍼랬는지. 왜 어두웠는지. 몇 개의 사정이 그렇게 짧은 시간에 생길 수 있는 건지. 지메일 에러가 내 컴퓨터에서만 그랬던 게 아니었던 건지. 남편이 말하길, 이메일이 약속된 시간에 왔고, 열어보니 오픈된 하우스 목록 중에 우리가 원했던 자리의, 평수의, 외관의, 인테리어의 집이 쓰여 있었단다. 그래서 반가운 마음에 바로 답장을 보냈는데, 빨리 답장을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어느 집을 원하는지 적지 않고 "저희가 할게요!!"라고만 써서 보냈다는 것이다. 몇 초 후에 어떤 집을 할 건지 안 썼다는 사실을 깨닫고 바로 원하는 집을 써서 다시 이메일을 보냈는데, 보내기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지메일이 다운이 되었단다. 그래서 망했다고 생각했단다. 십여분 쯤 지나 지메일이 원상 복귀되었고, 다시 돌아온 페이지에는 우리가 해당 집을 살 수 있는 권한을 가졌다고 축하한다는 이메일이 와 있었다고. 얘기를 듣고 답장을 읽어보니 선착순이 2분도 채 되지 않아 마감되었으며, 누가 어떤 집에 가장 빨리 보냈는지를 찾느라고 스크롤을 꽤나 내렸어야 했다는 이야기가 쓰여 있었다. 나는 그 이메일을 읽고 또다시 읽어도 실감이 나지 않았고,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우웩- 우웨엑!!

그동안 긴장 상태를 유지하며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온 신경을 매물에만 곤두세운 지 3-4주 째였다. 이제 더 이상 이 일로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몸이 느꼈는지 5분 간격으로 연신 헛구역질을 해댔다. 부동산 중개인 분과 실시간으로 통화하며 자축했고, 가족들에게도 기쁜 소식을 전했다. 우리는 당장 우리 집이 될 집 터로 달려갔다. 모래 바닥일 뿐이었지만 "SOLD" 간판이 세워져 있는 걸 보면서 여기가 우리 집이 될 거라며 그 자리에 한참을 서 있다가 돌아왔다.




그로부터 6개월여간 집이 지어지는 과정을 보겠다고 매주 한두 번씩은 꼭 집터를 방문했다. 터가 닦이고, 프레임이 올라가고, 벽이 세워지고 지붕이 올라가고. 집이 지어지는 과정을 보는 건 마치 뱃속 아기의 성장 과정을 보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집을 계약했다고 해도 클로징이 되기까지는 완전히 내 집이 아니고 언제든지 엎어질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에 나는 반년을 더 긴장하며 살았다. 부동산 중개인은 신용 점수가 떨어지면 모기지를 거절당할 수 있기 때문에 웬만하면 고정비용 외에는 돈을 쓰지 말라고 했다. 모지기를 얻는 것도 고민이었다. 집을 사겠다고 신청을 할 때에 모기지를 어느 정도까지 받을 수 있는지 서류를 제출해야 했기 때문에 당시 우리에겐 이미 같이 하기로 한 모기지 업체가 있었다. 그런데 집을 짓는 회사에서 제안하는 곳을 통해서 하면 마지막에 클로징 비용 - 이 비용만 한 7000불 정도 들었던 것 같다 - 을 면제해 주겠다고 했다. 부동산 중개인은 이런 일은 새로 집을 짓는 사람들에게 흔히 일어나는 일이라 저쪽 회사로 넘어간다고 해도 지금 같이 하고 있는 모기지 회사는 이해할 것이라고 했다. 70불도 700불도 아닌 7000불을 절약할 수 있다는 건 어쨌든 우리 같은 소시민에게는 아주 좋은 조건이었다. 하지만 남편이 리뷰를 찾아본 결과 그들은 잠수를 타거나 아니면 클로징 직전에 갑자기 모기지 승인을 취소한다는 말들이 있었다. 다른 상황이면 모르겠으나 지금같이 수요가 미친 듯이 높아진 때에는 어떻게든 모기지를 확실하게 얻을 수 있는 게 중요했다. 집이 완공될 때쯤에는 집값이 더 올라가 있을 것이기 때문에 빌더와 그 모기지 회사가 한통속으로 모든 걸 물거품으로 만들고 더 높은 가격에 다른 사람에게 다시 집을 팔 가능성도 꽤 컸다. 나는 아이를 임신했을 때 몇 달 정도 지나 안정기가 와서야 임밍아웃을 하는 임산부들의 마음을 이런 식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월세 생활을 더 하게 될지도 모른다니 정말이지 끔찍하게 싫었다. 그리고 처음부터 같이 했던 모기지 업체는 우리가 궁금한 것이나 그쪽에서 필요한 것이 있으면 바로바로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미국에서 그런 곳을 찾는 것도 쉽지 않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7000불을 포기하고 원래 진행하던 곳과 계속해서 함께하기로 했다. 


집이 지어지는 모습을 보고 서류가 넘어가고 계약금과 다운페이 금액이 넘어가는 과정들을 지나오면서 내가 드디어 여기까지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15년, 여행용 캐리어 두 개를 달랑 들고 미국으로 왔던, 일면식도 없는 어떤 모르는 사람의 집 안 방 한 칸에서부터 시작한 나의 과거가 주마등처럼 머릿속에서 상영되었다. 화장실도 달려있지 않아 집주인분의 딸들의 화장실 사용시간을 눈치를 보기도 하고 시리얼이나 라면을 끓이는 것도 (아무도 눈치 주지 않았지만) 괜히 눈치 보던 생활, 대여섯 명의 룸메이트들과 지지고 볶으며 화장실과 세탁기, 집안 청소 등등에 대해서 신경전을 벌이고 눈치게임을 하던 날들, 지금의 남편과 처음으로 따로 나와 자그마한 타운하우스에서 지내던 시간들, 눈이나 비가 오면 지하실부터 살펴야 했고 보증금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했던 그때, 그리고 벽이 너무 얇아 옆집에서 아침 다섯 시부터 크게 웃기라도 하면 그 소리에 잠을 깨던, 듣고 싶지 않은 소리들이 들려오던, 그리고 미쳐 날뛰는 아이들과 그를 전혀 신경 쓰지 않던 부모들이 살던, 점점 더 최악으로 치닫는 이웃들이 많아졌던, 그리고 매년 월세를 올려 오던 아파트 생활까지 전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시간이 흘러 집이 완공되고 우리는 오리엔테이션을 하러 갔다. 왠지 지금까지의 내 모든 미국에서의 생활, 대학 졸업 후 진짜 어른으로 성장하며 지내온 모든 게 이 집 하나로 상징되는 것 같은 마음에 가슴이 뭉클했다. 비록 내가 원해서 온 미국이라도 이방인으로 살면서 가족이나 친구들과 떨어져 지내게 되어서 때로는 아쉽고 힘든 날들이,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한다는, 그저 부유하는 인간일 뿐이라는 생각들이 가끔 나를 슬프게 했는데, 이제 나도 여기에 어엿하게 내 뿌리를 내린 것 같아, 스스로에 대한 대견함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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