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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윤정 Jun 20. 2023

신의 집

오랜만에 콜로라도에 갔다. 공항을 나서니 파란 하늘에 닿은, 눈 덮인 산봉우리가 눈에 들어왔다. 광활하게 펼쳐진 평야 위로 우뚝우뚝 솟은 산봉우리에 하얀 눈이 내려앉은 풍경은 산신령이 살 듯 신성해 보였다. 

“킬리만자로는 높이가 19,710피트 되는 눈 덮인 산으로 아프리카 대륙의 최고봉이라 한다. 서쪽 봉우리는 마사이어로 ‘응가예 응가이(Ngàje Ngài)’ 즉, 신의 집이라고 불린다.”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1936년에 발표한 소설 『킬리만자로의 눈』은 이렇게 시작한다. 일 년 내내 눈 덮인 산봉우리를 보며 그도 그런 신성함을 느껴 죽음에 대한 고민을 하며 그 소설을 쓰지 않았을까 싶다.


탄자니아의 북동부에 위치한 킬리만자로는 한국에서 가장 높은 백두산보다 두 배 이상, 한라산보다 세배 이상 높은 산이다. 산봉우리 정상 주변엔 푸르트벵글러 빙하 (Furtwängler Glacier)가 있다. 1912년 이곳에 올랐던 월터 푸르트벵글러의 이름을 따라 지어진 이름인데, 이 빙하는 1912년 이후 2011년까지 90% 가까이 사라졌다 한다. 그리고 2050년이 되기 전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고, 지난 11월 이집트에서 열린 COP(Conference of Parties: 당사국총회) 27에서 UN은 보고했다. 이뿐 아니라 프랑스와 스페인 사이의 피레네산맥, 이탈리아 알프스의 돌로마이트, 미국의 옐로스톤 국립공원과 같은 지역의 빙하 역시 2050년 전에 사라질 것이라 한다. 지금부터 아무리 노력해도 이들은 사라질 것이나, 지구상의 다른 빙하들은 우리가 최선을 다하면 구할 수 있다고 호소했다. 


매년 580억 톤의 빙하가 사라지고 있다 한다. 에펠 타워 5백만 개만큼의 얼음이 매해 녹아내린다는 것이다. 일차로 담수, 식수 및 식량 생산을 위해 빙하에 의존하는 지역 주민들에겐 생존의 문제다. 1993년부터 여러 차례 그린란드를 방문한 그레텔 얼리히( Gretel Ehrlich)는 에세이  「썩은 눈 (Rotten Ice)」에서 이를 생생히 그렸다. 그녀는 글 속에서 “빙하가 녹아 수면 상승으로 인한 자연재해와 살 수 없는 지역이 늘어나는 정도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북극 해저 빙하 바닥에 묻혀있는 메탄의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대기로 방출되면 인류는 전멸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지구는 인류와 모든 생명체가 모인 하나의 유기적 생명이다. 이 생명이 소설  『킬리만자로의 눈』 속 주인공 해리처럼 다가오는 죽음을 마주하고 있다. 소설 속 해리는 아프리카 초원에서 사진을 찍으려다 나무 가시에 다리를 찔려 세균에 감염되었다. 설상가상으로 해리의 일행을 실은 트럭이 고장이 나 병원으로 이송될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 그를 호송해 갈 비행기를 기다리며, 세균이 온몸에 점점 퍼져 가는 해리는 그의 연인이자 동행자인 헬렌에게 막말을 내뱉어 울게 하거나 술을 마시고 산봉우리의 눈을 보며 과거를 회상한다. 그의 몸속의 세포 하나하나가 세균과 맞서 싸우지 않는 한 퍼져가는 세균에 당할 수 없는데도 그는 몸에 좋지 않은 술을 마시고 아까운 생의 마지막 시간을 사소한 다툼과 지난날의 회상으로 보낸다. 


이 거대한 지구도 그 속에 살아가는 미세한 세포와 같은 개개인이 맞서 싸우지 않으면 다가오는 죽음을 막을 수가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온몸의 세포들은 서로 싸우고 할퀴고 상처 내며 죽음을 앞당기고 있다. 전쟁은 끊이지 않고, 각 나라마다 분열되어 서로 다투고 있다. 이념이 다르다고, 종교가 다르다고, 성이 다르다고, 피부색이 다르다고, 다르다는 것을 용납하지 못해 서로 죽이려 한다.


연초부터 캘리포니아주는 겨울 폭풍으로 비상사태가 선포되었다. 폭우로 아이가 물에 쓸려내려 가고, 도로와 집들이 물에 잠기고, 현재까지 수십 명이 사망하고, 2018년 진흙이 쏟아져 내려 대피했던 마을은 또다시 대피하였다. 피해액이 한화로 1조 2천억 원을 넘을 것으로 추정한다. 전 세계적으로 기후변화로 인한 보험업계의 연간 손실액이 1천억 달러(약 125조 원)를 넘어섰고, 이런 일이 ‘뉴 노멀(new normal)’이 됐다고 블룸버그는 보도했다. 지금은 2023년 1월 초. 앓고 있는 지구의 신음은 점점 커질 것이다.


콜로라도에서 가는 곳마다 산과 호수는 하얀 눈으로 덮여 있었다. 친구와 함께 산책한 딜런(Dillon) 호수가에는 누군가가 솜 같은 눈을 쌓아 눈사람을 만들어 놓았다. 눈사람 뒤로 아무도 손대지 않은 하얀 케이크 프로스팅 같은 얼어붙은 호수 위에 겨울 낚시를 즐기는 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병풍처럼 둘러싼 산 위로 파란 하늘이 눈부시게 빛나고, 햇살에 반짝이는 눈은 밝고 아름다운 불멸의 삶을 약속하는 듯했다. 하지만, 죽어가는 해리가 눈을 보며 ‘눈 속에서 발에 피를 흘리며 온 탈영병’을 기억한 것처럼 눈은 누군가에게는 고통이고 죽음이다. 눈 덮인 ‘신의 집'을 지키지 못한다면, 그레텔 얼리히가 말한 ‘썩은 눈'은 우리 모두에게 고통과 죽음을 가져올 것이다. 

(2023.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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