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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윤정 Oct 14. 2023

M과의 고별

9월에 들어섰는데 한여름보다 더 매섭게 덥다. 날마다 온도가 100도 (섭씨 38도) 가까이 올라 체감온도는 100도가 넘는다. 8월 23일이 처서였는데, 처서 이후에 비 한 방울 없이 땡볕이 이어지고 있다. 처서가 지나면 선선한 가을이 오고 풀이 자라지 않는다는 옛말도 기후변화로 맞지 않는 모양이다. 더위도 그렇지만, 지난 몇 주간 비가 내리지 않아 풀과 나무가 바싹 말라가니 안쓰럽다. 한여름 내내 더워도 소낙비가 하루 걸러 쏟아붓고 지나가 나무가 우거지고 텃밭 농사도 수월하게 했는데, 몇 주째 비가 오지 않아 온 땅이 바싹 말라가고 있다. 비가 오지 않으니, 이른 아침 일어나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밖에 나가 재배하는 채소와 작물에 수돗물을 틀어 물을 주는 것이다.


집 앞마당과 뒷마당에 물을 주고 화초를 살피며 주로 뉴욕타임스의 팟캐스트 더 데일리(The Daily)를 듣는다. 9월 첫날, 더 데일리에서 애리조나에 주택이 늘어나면서 물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멕시코에까지 파이프를 깔아 바닷물을 담수화(desalination)해 끌고 오려한다는 보고를 들었다. 사막 지역인 곳에 자연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채 끊임없이 개발해 주변 지역의 지하수가 고갈되고 있는 것이다. 지하수가 고갈될 경우 해수의 유입 외에도 지반 침하 현상을 일으켜 배수 곤란, 오·폐수 정체 등 큰 문제라 했다. 며칠 뒤엔 또다시 뉴욕타임스에서 미국 내 기업형 농장들의 과도한 지하수 사용으로 주변 지역의 가뭄피해를 악화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2021년 한 해 동안 정부 허가량보다 230억 리터에 달하는 지하수를 초과 사용했는데 그중 1/3을 맥도널드 감자튀김용 감자를 납품하는 기업 농장에서 끌어다 쓴 것이라 했다. 


환경문제를 얘기할 때 탄소 발생량을 측정하는 탄소발자국처럼 “물 발자국 (Water Footprint)”이란 용어가 있다. 이 용어는 특정 프로세스나 활동에서 사용되는 담수(fresh water)의 양을 나타내는 데, 미국에서 농업은 소비되는 전체 물의 80%를 사용한다고 한다. 내 작은 텃밭에도 매일 아침 물을 주며 느끼는 거지만, 식량을 대규모로 재배하고 가공하는데 얼마나 많은 물이 사용되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물 발자국 네트워크(Water Footprint Network)의 데이터에 따르면, 빵 한 덩어리를 생산하는 데 약 240갤런의 물이, 치즈 1파운드에는 약 382갤런이 필요하고, 간단한 치즈 샌드위치 하나에 약 56갤런의 물이 추가된다. 얇게 썬 칠면조 고기를 추가하면 물 발자국이 148갤런으로 늘어나고, 감자칩 작은 봉지는 추가로 12갤런, 여기에 얼음처럼 차가운 탄산음료를 포함하면 이 일반적인 점심 일 인분을 만드는 데 206갤런의 물이 필요하단다.  


식품의 물 발자국을 알려주는 웹사이트 https://foodprint.org/는 식품별 물 발자국을 알려주는데, 고기가 곡물이나 야채보다 물발자국이 훨씬 높다. 그중에서도 쇠고기는 1파운드를 생산하는 데 평균 1,800갤런의 물이 필요하다. 이는 가로, 세로 1.2미터에 1.2미터 높이의 커다란 통에 가득 채워야 하는 물의 양이다. 보통 스테이크 식당의 1인분이 소고기 ½~1파운드이니 한 끼 소고기 식사를 위해 물먹는 하마보다 큰 물량을 먹어치우는 셈이다. 미국인의 년 평균 육류 소비량은 전 세계 평균 소비량의 세배로 그런 만큼 물 발자국도 높을 수밖에 없다. 포장된 스낵이나 즉석식품과 같이 가공된 식품으로 구성된 식단 역시 물을 많이 사용한다. 감자칩 작은 봉지 하나를 생산하는데 총 12갤런의 물을 쓴다 한다. 키우는데 물이 가장 많이 드는 감자를 재배하고, 씻고, 가공 기계를 청소해야 하고, 튀김용 식용유 생산, 배송용 연료 생산, 제품 포장 등 각 단계마다 많은 물이 사용된다. 


아이들과 함께 무심코 사 먹던 맥도널드의 감자튀김과 큰아이가 유난히 좋아하던 포장된 감자칩이 떠올랐다. 따끈따끈하고 적당히 짭짤하고 한입 물면 입안에서 바삭거리는 그 맛. 맥도널드에서 감자튀김과 소프트아이스크림을 사서, 한 손엔 아이스크림을 들고 감자튀김을 찍어 먹으며 온 가족이 흐뭇한 미소를 짓곤 했다. 그 맛 때문인지, 아이들 어렸을 때의 그 순간들에 대한 그리움 때문인지, 아이들이 자라 떠난 후에도 남편과 나는 둘이 간혹 맥도널드에 들러 아이스크림과 감자튀김을 사 먹곤 했다. 아, 이 맛을 포기할 수 있을까.


맥도널드와 나의 인연은 수십 년이다. 대학 1학년 겨울, 유럽에 배낭여행을 가 말이 통하지 않는 도시에서 허기진 배를 채운 곳이었다. 유럽의 어느 곳을 가도 커다란 M 표시는 찾을 수 있었고,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올 6월 로마에 갔을 때도 바티칸 앞의 커다란 맥도널드에서 아이스커피와 감자튀김을 먹었다. 하지만, 이제 그 M과 작별해야 할 시간이다. 지하수 고갈이라는 문제는 대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선택하는 개개인의 문제이고 그 개개인이 식습관을 바꾸지 않는 한 이 문제는 되돌릴 수 없이 악화될 터이다. 그리고 그 개개인 중 하나가 나이기 때문이다. 

(2023.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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