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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윤정 Oct 29. 2020

이웃을 돌보아야 할 이유

레몬 (3)

“생명의 그물을 짠 것은 인류가 아니다. 우리는 단지 그 안의 한 올일 뿐이다. 우리가 그 그물에 하는 무엇이든 우리 자신에게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함께 묶여 있고 연결되어 있다. (Humankind has not woven the web of life. We are but one thread within it. Whatever we do to the web, we do to ourselves. All things are bound together. All things connect.)” - 시애틀 추장 


10월에 들어서며 날씨가 제법 쌀쌀해져서 레몬 나무와 고추 두 그루를 집 안에 들여놓았다. 햇빛 잘 드는 창 가에 놓고 나무가 선선한 바람을 받을 수 있도록 날마다 창문을 연다. 온종일 레몬 나무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내 책상에 앉아 하루를 보내는 나는 상쾌한 바람이 불어오면 으레 창가로 시선을 준다.

간밤에 세찬 비바람이 지나간 후라 하늘은 여전히 흐리지만 비는 그쳤다. 오늘 아침에도 창을 여는데 레몬 나무에 삐죽이 솟아 나온 긴 가지가 눈에 띄었다. 레몬 씨를 발아해 키워 새싹을 낸 후 세 화분에 옮겨 심었지만, 내 꿈은 무산되었다. 무슨 까닭인지 조금 자라다가 시름시름하더니 모두 죽고 말았다. 그래도 몇 해전 남편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 주었던 레몬 나무는 말라서 다 죽은 듯하였다가 내 정성을 알아주었는지 다시 잎이 풍성해졌다. ‘레몬 나무도 다른 나무처럼 삽목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무가 튼튼해지니 삽목을 시도해 볼 생각이 들었다. 구글 해 찾아보니 늦봄이나 이른 여름에 새로 나온 건강한 가지를 골라 삽목을 하라고 나온다. 내년 늦봄까지 기다릴 참을성이 없어, 어차피 실내에서 키우는데 계절에 상관없지 않을까 싶어 내친김에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긴 가지 두 개를 잘라 여섯 개로 나누어 심었다. 삐쭉삐쭉한 가지를 잘라내고 나니 이발을 한 것처럼 레몬 나무 인물이 훤해졌다. 그러고 나니, 긴 가지에 묻혀 보이지 않았던 하얀 꽃봉오리가 드러났다. 너무나 반가운 마음에 고개를 숙여 꽃봉오리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검은 것들이 붙어 있고 주변의 잎 두어 개도 끈적거렸다. 아, 진딧물이다! 전에 피이스릴리도 이렇게 끈적거려 떼어내느라 고생을 했는데 어쩌다 레몬 나무, 그것도 새로 맺힌 꽃봉오리가 공격을 당했을까. 나는 옆에 놓은 고추를 의심했다. 매일 잎이 비실비실하다 바닥에 떨어지곤 하던 고추를 나는 그저 저물 때가 되어서 그러려니 해왔다.

그도 그럴 것이 고추는 여름 내내 하얀 꽃을 피우고 고추를 주렁주렁 달았으니 가을이 되어 이제 기력을 잃고 갈 준비를 하는 것이려니 했다. 문인회의 한 분이 작년에 고추를 가을에 집 안 햇빛 좋은 곳에 들여놓았더니 겨울 내내 열매를 맺고 올봄에 다시 밖에 나와 크고 있다고 하여 나도 한번 시도하려 안에 들여놓은 것이었다. 하지만 큰 기대는 없어, 잎이 떨어져도 애써 들여다보질 않았다. 그것이 문제였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은 것. 고추에서 시작된 진딧물은 그 옆에 놓인 시클라멘에도 잔뜩 붙어 있었다. 몇 해전 선물로 받은 시클라멘은 계절에 상관없이 거의 일 년 내내 화사한 진분홍 꽃을 피워 내가 무척 아끼는 것인데 이런 고초를 당하다니!

고추와 시클라멘에 진딧물이 가득한 모습 & 레몬 꽃봉우리에 붙은 검은 해충

‘괜히 제 사명을 다한 고추를 들고 들어와서 이런 고생을 하는가?!’ 식기세척제를 물에 희석해 화초를 닦아주면 진딧물을 죽일 수 있다 해서 시클라멘 꽃과 잎을 닦아내며 속으로 구시렁거렸다. 속이 상한 나는 고추는 내다 버리려 했다. 하지만, 잎을 떨구던 고추에도 가지가지마다 새싹이 솟아 나와 있었다. 아직 생명이 있어 새싹을 내는데 차마 내다 버릴 수 없어 고추도 가지와 남아 있는 잎을 닦아 내었다. 진딧물을 닦아내며 보니 어린잎과 꽃봉오리에 더 많이 붙어 있다. 사람 사는 세상에도 병이 들면 어린아이와 노약자에게 그 피해가 제일 심한데 식물 세계도 비슷한 듯해 마음이 아렸다.

전에 피이스릴리에 간혹 진딧물이 생겨 왜 그런 것이 생기나 찾아보았었다. 화초가 물이나 햇빛 등 무언가가 부족하여 건강이 약해져 시름 거리면 생긴다 했다. 소리를 내지 못하는 화초도 필요한 영양분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면 약해지고, 약해지면 외부의 병균에 싸울 힘을 잃어 아프고, 그리고 그 아픔이 다른 생명에도 전염될 수 있다는, 이 세상 모든 생명의 생존 원리를 나는 아직도 제대로 깨치지 못하고 이를 병들게 하였구나. 언젠가 한 의사 친구가 “질병이나 아픔은 재앙이나 저주가 아니라 모든 존재의 삶의 한 부분이고 삶을 돌아보고 서로를 보살피라고 주어진 것'이라 했다.

레몬 꽃봉오리에 붙은 것들은 떼어내기가 만만치 않다. 어떻게 키운 꽃봉오리인데 혹 꺾여서 잘라나가면 어쩌나. 더 유심히 들여다보니 고추와 시클라멘에 붙은 것은 베이지색인데 레몬에 붙은 것들은 검은색이다. 이건 또 뭐지? 실내 화초에 나오는 해충은 모두 진딧물인 줄만 알고 있던 나는 식물에 자주 나타나는 해충을 검색해 보았다. 한 사이트에 <식물에 자주 나타나는 해충의 모습과 증상, 조치법>이라는 제목으로 각 해충과 병해를 입은 식물 사진과 함께 상세한 설명을 찾아 읽는다. 진딧물은 아이보리, 연두, 빨강, 갈색, 검정 등으로 색이 다양하고 주로 새순 쪽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는 설명으로 보면 레몬 꽃봉오리와 새순에 붙은 것도 진딧물인가 싶기도 하고 색과 모양으로 보면 방패벌레와 닮은 듯도 하다. 

어쨌든 집에서 만든 세제를 희석한 물 정도로는 완전히 퇴치할 수 없고 벌레에 따라 다른 저독성 약제를 써야만 한단다. 일단 오늘은 민간 치료제로 닦아내 주고 약제를 주문해 완치를 해 줄 수밖에. 레몬과 시클라멘은 집안의 여러 화초들 중 내게 각별해 가장 볕도 잘 들고 바람도 잘 통하는 곳에 놓았는데 이웃을 잘 못 만나 고생을 한다. 그동안 고춧잎이 떨어지며 아프다고 표현을 했음에도 내 무심함에 빨리 알아채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인다. 같은 창가에 늘어선 이들을 보며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한  명령은 이웃의 삶이 결국은 함께 살아가는 모든 이의 삶에 연계되어 있으니 나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삽목한 레몬 나무와 다른 삽목수의 수분 유지를 위해 유리상자 안에 넣어 같은 창가에 놓았다. 온종일 나의 눈길이 가장 많이 머무는 곳에 두고 상태를 살피기 위해서. 식물에 나타나는 해충을 상세히 설명한 사이트에서 “병충해를 예방하고 이길 수 있는 가장 큰 무기는 키우는 사람의 날카로운 눈”이라고 한다. 그 눈길은 마음에서 나온다. 나의 마음이 닿지 않았던 시든 고추줄기와 같은 이웃이 있는가, 낙엽을 보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추워지기 전에 실내에 들여놓아야 할 식물>

레몬 나무는 화씨 55도 (섭씨 13도) 이하에서는 자라지 않고 영하로 떨어지면 나무가 죽을 수 있어 추워지기 전에 실내에 들여놓는다. 햇빛 잘 드는 창가에 놓으면 겨울에도 꽃을 피운다. 실내에서 꽃이 피면 열매를 맺기 위한 수분(受粉)을 해 주어야 한다.

제라늄이나 베고니아 꽃은 추우면 죽지만 실내에 들여 햇빛 잘 드는 곳에 두면 내내 꽃을 피우고 자란다. 삐죽이 자란 줄기를 잘라 물에 담가 놓으면 뿌리가 생겨 번식시킬 수 있다.

또한, 칸나와 같은 구근 화초도 60°F (15°C) 이하에서 죽게 됨으로 가을에 날씨가 추워지기 전에 구근을 파내어 겨울 동안 그늘지고 건조한 곳에 보관해야 한다.

(1) 제라늄, (2) 실내에 들여 놓은 후 꽃봉오리를 맺고 활짝 핀 레몬 꽃, (3) 레몬, 장미, 진달래를 삽목해 습기를 보존하도록 테라리움 케이스에 넣어 유리로 덮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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