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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믈리에 릴리 Mar 08. 2024

음식 그리고 기억

-엄마의 두꺼운 수제비


어릴 적 외식은 한 달에 한 번 25일뿐이었다. 

대부분 회사원이 그렇듯이 아빠의 월급날이었다.


아빠의 식사에는 좀 더 신경 쓰셨지만, 오빠와 나만 있을 때는 간단히 먹기도 했다.

주부가 되어보니 끼니때마다 밥을 준비하고 차려내야 하는 건 시시포스의 돌덩이처럼 얼마나 지겨운 굴레인가?


아빠가 없을 때 엄마와 나 혹은 오빠까지 셋은 간단하게 끼니를 때우곤 했다.

자주 해 먹던 음식은 김치전과 수제비였다.

아빠는 밀가루 음식을 싫어해 두 가지 모두 잘 드시지 않았다.


우리는 김치전을 많이 부쳐서 점심 한 끼를 때우곤 했다.

김치전은 밀가루를 많이 넣고 계란까지 넣을 때도 있었다.

적당히 두터운 김치전을 말대로 김치와 밀가루 맛으로 먹었다.

결혼 후에 내가 김치전을 하려 하면 남편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김치만 넣어 먹는 것도 그렇고 (남편 집에서는 돼지고기 간 것을 넣는단다)

밀가루 맛이 나게 두툼하게 부치는 것도 내키지 않는 것이다.

뾰로통해진 내가 그럼 네가 해보라고 하면, 

최대한 묽은 반죽으로 바삭하게 김치전을 구워내려 애를 쓴다.

그게 더 맛있는 걸 알지만 내가 먹고 싶은 어릴 적 그 맛은 아니다.


어떤 날은 밀가루 반죽을 해서 수제비를 해 먹곤 했다.

아빠는 수제비는 가난의 음식이라며 싫어하셨고 손도 대지 않으셨다. 

엄마는 큰 그릇에 담긴 반죽 덩어리를 숟가락으로 대충 떼어내어 수제비를 해 주셨다.

그래서 수제비가 두툼하고 모양이 제각각이었다.


대학교 때 집에 놀러 온 동기 언니에게 수제비를 해 주었다.

엄마가 해 주던 식으로 만들었는데, 이렇게 두꺼운 수제비는 처음 본다며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나는 그 이후로도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 수제비 맛집이 나온 영상을 보고

수제비가 얇게 떠서 후루룩 먹는 음식이란 걸 알게 되었다. 




30년의 세월을 건너뛴 지금 우리 집은 주말에 한 번 정도 외식을 한다.

옛날에 비해 식당은 너무나 많아졌고, 군침을 돌게 하는 맛있는 메뉴들이 넘쳐난다.

아이들은 저녁 준비하려는 내 눈치를 보며 슬쩍 ‘오늘 저녁에, 혹시.... 치...킨....’하며 말끝을 흐린다.

돈만 풍족하고 내가 눈만 질끈 하면 매일매일 외식을 할 판이다. 


나 역시 외식이 간편하고 편하지만 먹고 나면 부대끼는 속과 소태같은 입을 생각하며 

한 번 더 귀찮음을 물리치고 밥을 하게 된다.

특히 뷔페에 다녀온 날은 먹을 때는 맛있다고 좋아라 했으나 

집에 와서 연거푸 물을 마시면서 매번 후회하곤 한다. 


아이들 학교 근처 시장에 떡볶이집이 있다.

길쭉한 오징어튀김과 매콤한 떡볶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어묵과 꼬마김밥까지 그냥 지나치기가 힘들다. 

오가며 지나는 탓에 곧잘 어묵꼬치를 사 먹게 된다.

그날도 막내와 어묵꼬치 하나를 먹고 있었다.

아주머니가 국그릇을 들고나와 국물에 붓는 그것은 고향의 맛 한 사발이었다.

‘아, 알고는 못 먹겠구나.’ 눈을 질끈 감고 싶었다. 


음식이 차고 넘치는 요즘은 건강을 위해 음식을 먹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줄여야 한다.

자극적인 음식이 넘쳐나 오히려 조리를 덜 하고, 양념을 덜어내고 음식량까지도 줄여야 한다. 아이러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묵은 김장 김치의 양념을 깨끗이 씻어서 물기를 쪽 짜내고 먹는 묵은지 쌈이다.

나는 여기에 고추장, 참치를 더한 조합을 좋아한다.

원래도 쌈을 좋아하는 데 상추와는 다른 쿰쿰한 이 맛이 좋아 밥 한 그릇 뚝딱이다. 

더 이상의 요리법도 필요 없는 간단한 한 끼가 나에게 딱 맞는 것이다. 

아이들이 이 맛을 알고 외식을 거절할 날이 올까?

아니면 내게 두꺼운 수제비로 기억되는 엄마처럼,

엄마는 맛없는 것만 먹었다고 기억해 버리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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