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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셔블 밝은 달에 Aug 08. 2020

솔거 미술관

또는, 소산 미술관  by 진연



 지인들의 안부가 궁금할 때면 들여다보는 sns, 인별그램에서 본 사진이 시작이었다. 커다란 창 앞에서 쏟아져내리는 빛을 받으며 찍은 것이었는데, 역광이라서 시커먼 그림자만 보였다. 덕분에 창 밖으로 보이는 정원의 푸름이 돋보였던 사진에서 태그 된 장소를 검색했고, 알아낸 이름이 <솔거 미술관> 그러고 보니 경주에 처음 생긴 공립 미술관이라고 듣긴 했었다. 엑스포 광장을 지나 언덕배기를 오른 후에야 볼 수 있다고 해서 가 볼 생각을 못했을 뿐. 주차장에서부터 걸어가려면 내 기준으로 최소 3번은 쉬어야 도달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런 노옾은 곳을, 퇴화 직전의 다리를 끌고, 더운 여름날에 올랐다는 건 보통의 애정이 아니었음을 굳이 밝힌다.

 실물을 보겠다는 마음 하나로 숨을 몰아 쉬며 입구에 다다랐을 때 직감했다. 여긴 찍어야 한다. 주머니를 뒤적여서 휴대폰을 찾은 뒤에 외관만 수십 장을 찍었다. 승효상 건축가가 지었다는 건물은 단층에 도드라지지 않는 황토 빛으로, 앞에서 거울처럼 빛나는 아평지 연못과도 주변의 산과도 잘 어울렸다. 건축에 대해 1도 모르지만, 좋은 건물은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독자적 아름다움보다는 어우러지는 멋이라고.

표지판을 찍고, 연못을 찍고, 하늘을 배경으로 간판을 찍고. 함진아비가 문 앞에서 더디 걷듯 하고 있으니 동행이 그랬다. 안에 가면 더 멋있어. 개봉박두의 설렘이란 이런 것인가.    


신라 시대의 화가 이름을 따서 <솔거 미술관>이 되었지만, 미술관이 생길 수 있었던 건 또 다른 전설인 소산 박대성 화백의 공이었다. 고려와 조선시대 때 주요 명승지나 자연경관을 묵으로 그린, 실경산수화의 맥을 이어가는 작가, 겸재 정선 이후 ‘최고’라고 불리는 그분께서 자신의 작품을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후 7년이 지나 개관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곳은 <솔거 미술관>이자 <소산 미술관>이다.

기증받은 작품들을 돌아가며 전시한다고 했는데, 운 좋게도 소산의 작품을 어느 때보다 많이 볼 수 있는 기간에 갔다. 반들거리는 느낌이 생생해서 눈을 뗄 수 없었던 도자기 그림을 지나, 눈이 내려 반은 희고, 반은 검은 나무 그림을 지나, 마침내 벽 한 면을 가득 채운 소산의 대표작을 만났을 때 잠시 비현실적인 생각이 들었다. 폭포 소리가 들려. 차가워.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연이은 대작들을 보고 있노라니 이곳에선 잠시 턱을 내려놓아도 좋다 싶다. 빠진 턱으로 종이와 먹만으로 이걸 그렸다고??를 앵무새처럼 되풀이했다. 자연이 주는 감동을 그대로 옮겨왔다. 미술관에 전시된 소개글을 보고 안 사실이지만. 작가는 이걸 한 팔로 그렸다.


경주의 명산, 남산 앞에선 다른 느낌으로 한참을 서 있었다. 산 곳곳에 숨어 있는 보물들을 하나하나 정성 들여 그렸는데, 크고 웅장한 그림 속에서 실낱같은 섬세함이 느껴졌다. 남산 자락 어디메에 소산의 집이 있다고 했던가. 수없이 산을 오르내렸을 그가 떠올랐다.

미술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는 작가. 보고 느낀 것을 오로지 자신의 감으로만 표현한 작가. 소산 박대성 화백의 그림을 보고 나오는 길에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림마다 다른 필체로 쓴 글씨들도 예뻐서 소산체 1,2,3을 만들어 주면 좋겠다는 말도 했다.

아. 그러고 보니 <솔거 미술관>으로 나를 인도했던 그 창에 대해 잊고 있었다. 사진에서 보았던 창은 포토존이란 이름으로 그곳에 있었고, 한옥에서 창을 풍경을 담는 액자라고 말한 의미를 잘 보여주는 곳이었고, 인증샷도 찍었으나 작품이 되진 못했다.

자연과 함께 했던 시간을 뒤로하고 미술관을 내려오는데 멀리 이타미 준의 경주 타워가 보였다.

나뭇가지들 틈으로 보이는 타워가 엑스포장 어디에서 본 풍경보다 아름다웠다.


<솔거 미술관>을 가게 된다면 끝까지 휴대폰을 놓지 않길.    

현재 <솔거 미술관> 입장은 경주 엑스포 통합권을 구매해야 관람이 가능하다.


   통합권을 끊은 김에 엑스포장도 둘러보는 코스를 추천한다.





꽃작가 덧붙임.

  흔히들 <엑스포 공원>이라고 하면 '행사 때가 아니면 볼 것 없는 곳'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엑스포 공원은 경주에 살면서도 자주 찾게 되는 곳이다. 진연작가가 소개한 아름다운 '솔거미술관' 때문이기도 하지만 상설 전시관의 볼거리도 다채롭고, 엑스포 공원 자체가 정말 아름다운 '공원'으로 구석구석 잘가꿔져 있기 때문이다. 경주 엑스포공원과 솔거미술관은 경주에서도 손꼽히는 벚꽃 명소이기도 하고, 여름엔 초록이 싱그러운 숲이 되었다가, 가을엔 단풍이 절경을 이룬다. 내가 특히 좋아하는 계절은 가을인데 경주타워 카페에 앉아 노을 질 무렵 솔거미술관과 미로정원을 바라보거나 솔거미술관 앞 벤치에 앉아있는 시간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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