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마을과 콩씨 카페 여행 by 꽃작가
제목을 적고 보니 '신비로운데 정겹다는 게 뭔소리야' 싶을 수도 있겠다. 뭐 애초에 '신비롭다'와 '정겹다'가 한 문장에서 어울릴 수 있는 말일까 싶기도 하지만- 양동마을을 바라보며 느낀 감정은 '시간이 멈춘 것 같다'는 표현이 부족할만큼 신비로웠고, 가까이 다가가 걷는 동안에는 흙으로 채워진 담벼락이, 집집마다 심어둔 옥수수가, 냇가에 아무렇게나 핀 작은 꽃들이, 정갈한 마당의 풍경들이 참으로 정겨웠다. 그래서 아무리 고민해도 지금은 양동마을을 이렇게 표현할 수 밖에 없겠다. 신비롭고도 정겨운 마을이라고.
매표소를 지나 마을 초입에 다다르자 갑자기 다른 시공간에 진입한 것처럼 낯설고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다가가지 않고 이대로 멀리서 바라만 보다 가도 좋겠다 싶을 만큼 아름답다. 한참을 그렇게 마을 초입에 서 있다가 이곳에 너무 오랜만에 찾아왔다는 게 괜히 미안해졌다. 여기 참 좋구나, 여기 참 예쁘구나. 왜 잊고 지냈을까.
경주와 포항사이에, 양동마을이 있다. 포항으로 자주 출퇴근 하는 나는 중간에 살짝 길을 빠져나가면 얼마든지 양동마을에 갈 수 있다. 갈 수 있는데- 그런데, 그동안 참 오래도록 가지 않았다. 일 하러, 밥 먹으러, 쇼핑하러, 포항까지는 곧잘 다니면서 양동마을은 왜 밀쳐두고 있었을까. 아니 그보다 왜 내 기억속의 양동마을은 ‘다시 가고 싶은 곳’으로 남아있지 않았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때의 내가 너무 어렸거나, 취향이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고 밖에.
오랜만에 찾은 양동마을은 많이 달라져있었다. 네비게이션의 안내를 따라 주차를 하고 나면 근사하게 지어진 양동마을 문화관을 먼저 만나게 된다. 실내 전시관도 있지만 마을 풍경이 보고 싶어 그냥 지나쳐 나왔다. 매표소를 지나서야 예전에 봤던 풍경이 들어온다. 양동초등학교, 그리고 양동마을의 전경. 근사한 현대식 건물을 지나 만나는 조선시대의 풍경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치히로의 가족들이 터널을 지나 만난 신들의 마을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했다. -큰딸은 층층이 건물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양동마을을 보며 ‘하울의 움직이는 성’같다고 했다. 그만큼 낯설고 색다른 풍경을 맞닥뜨리게 된다.-
다들 알고 있듯 양동마을은 경주 손씨와 여강 이씨 두 가문이 500년 세월 대를 이어 살고 있는 마을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통 마을로 150여 채의 기와집과 초가가 남아있는데 실제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는 마을이라 일부 건물은 개방이 되지 않고, 당연히 주민들의 사생활에 주의하며 관람해야 하는 곳이다.
양동마을은 설창산 자락을 따라 높은 지대에는 양반 가옥이, 낮은 지대에는 하인들의 가옥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마을을 모두 둘러보려면 제법 오르막길을 걸어야 한다. 하지만 그 덕분에 마을 초입에서 병풍처럼 둘러서 있는 고택의 풍경을 바라보는 것도, 마을 위쪽에서 전체 마을의 풍경을 한눈에 내려다보는 것도 모두 잊지 못할 장면이 된다.
더운 날이라 욕심 부리지 않고 마을 일부만 돌아보기로 했다. 양동마을을 제대로 살펴보자면 1시간은 기본이고 2시간 이상이 소요되는 탐방 코스도 있다. 금새 한 바퀴 휘 돌아볼 수 있는 작은 마을이 결코 아니니 매표소에서 나눠주는 지도를 보며 대략 코스를 정하고 걷는 것이 좋다.
무첨당과 향단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갖가지 꽃이 핀 시내를 따라 걷다보니 연꽃밭이 기다린다. 양동마을 주민이 농사 짓는 곳이라고 한다. 때마침 피어있는 꽃들이 반갑다. 무첨당까지는 제법 오르막길을 걸어야 하는데 길 양옆으로 숲이 있어 종종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오래된 우물과 집들을 지나 무첨당에 들어섰다. 조선시대 성리학자 이언적 선생 종가의 제청(제사를 지내는 대청)인데 조선 중기에 지어진 건물이 아직 그대로 남아 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걸 떠올리니 무첨당 마당에 서 있는 이 순간이 뭔가 특별하고 오묘하게 느껴졌다.
생각해보면 양동마을 전체가 그런 공간이다. 과거의 모습 그대로 시간이 쌓여가고 있는 곳. 그래서 양동마을을
걷다보면 전통 가옥을 구경한다는 느낌보다는 오랜 시간 공들여 가꾼 정원이나 깊은 숲을 산책한다는 느낌이 들곤 한다. 마당의 나무, 기와 한 장, 대청마루와 토담과 골목 사이 사이에 수백년 시간이 쌓이고 쌓였기 때문일 것이다. 양동마을의 이색적인 풍경과 분위기는 세월이 다했다.
무첨당에서 내려와 향단 앞을 지나 마을 경치를 잠시 내려다보며 쉬었다. 이 어디쯤 편하게 앉아서 커피 한잔 마실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좋을 텐데. 아직 양동마을 안에 한옥카페 하나 없다는 게 신기했다. (식당과 아이스크림을 파는 간이매점은 있다.) 황리단길에는 한옥마다 카페와 식당이 들어서고, 그 묘한 분위기를 사러 주말이면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이 몰려오는데. 양동마을의 풍경을 헤치지 않고 너른 마당에 앉아 이 신비롭기까지 한 마을 풍경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카페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무튼 그래서, 마을 입구 ‘양동벅스’에 쓰여진 글귀를 무시하고 마을 탐방을 시작한 사람들은 말 그대로 ‘급 후회’ 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물과 음료는 미리미리 챙기자.
양동마을을 즐기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 같다. 우리처럼 자주 자주 방문할 수 있는 지역에 있다면 산책하듯 가볍게 마을을 걸으며 계절마다 달라지는 풍경을 즐겨도 좋겠고. 작정하고 왔다면 마을 해설사 프로그램을 이용해 꼼꼼하게 설명을 들으며 알차게 보고 담아가도 좋겠다. 양동마을 홈페이지에서는 양동마을에서 시즌마다 열리는 다양한 체험 행사와 숙박 프로그램도 안내하고 있으니. 이 색다른 마을에서 밤을 보내보는 것도 좋겠다.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가을에 다시 와야지, 그때는 보온병에 커피도 챙겨오고, 마을 식당에서 밥도 먹어야지 생각하며 짧은 산책을 마쳤다.
* 양동마을 홈페이지 http://yangdong.invil.org/
사실 양동마을을 가게 된 이유는 다 이 카페 때문이다. 양동 마을에서 차로 4분 거리에 위치한 ‘콩씨 커피’. “이런 곳에 카페가 있다고?” 의문이 들만큼 생뚱맞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그냥 네비게이션을 믿고 따라가면 된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가기에는 아무래도 어려움이 있겠다. 현재 카페 이름은 '콩씨 커피'지만 지도상에는 아직 '따사안 카페'로 뜬다.)
콩씨 커피는 ‘도시청년 시골파견제’를 통해 강동면에 자리 잡은 디자이너 박송안씨가 어머니와 함께 운영하고 있다. ‘콩씨’는 송안씨가 직접 디자인한 귀여운 캐릭터의 이름이기도 한데 작은 씨앗에서 싹이 트고 자라 열매를 맺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캐릭터로 만들었다고 한다.
생뚱맞은 곳에 있다곤 하지만 콩씨 카페는 ‘여긴 내 별장이야’ 우기고 싶을 만큼 멋진 풍경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카페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너른 창밖으로 펼쳐진 해바라기밭에 마음을 빼앗겨버렸다. 하루 종일 앉아서 일하다, 멍 때리다, 책을 보다가, 그것도 지겨우면 마당에 나가 고양이랑 놀다가 휴식같은 하루를 보내면 딱 좋을 공간이었다.
콩씨 카페에 와보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는 송안씨가 직접 디자인한 ‘양동마을 굿즈’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도시청년 시골파견제’ 취재를 위해 인터뷰를 하던 중 송안씨가 ‘양동마을’에 홀딱 반해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카페 가까운 곳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이 있는 줄도 몰랐다고, 양동마을을 보는 순간 그 아름다움에 반해버렸다고, 그동안 양동마을의 존재를 모르고 살았다는 게 너무 부끄러웠다고, 그래서 양동마을 위해 뭐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고 싶었다며 이야기를 쏟아내던 송안씨. -덕분에 나도 새삼 양동마을에 다시 가보고 싶어진 거였다. - 양동마을에 반해버린 송안씨는 젊은층을 위한 마을 기념품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제일 먼저 컬러링 엽서를 만들었다. 마을의 풍경을 사진으로 담아오는 것도 좋겠지만 여행하던 순간의 기분과 감상을 담아 직접 색으로 표현해보는 것도 여행을 추억하는 멋진 방식이 되지 않을까. 귀여운 콩씨 떡메와 양동마을 컬러링 엽서는 꽤 실용적이고 색다른 경주 여행 선물이 될 것이다.
*송안씨는 최근 양동마을과 협업을 통해 새로운 굿즈를 개발 중이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 등재 10주년을 기념하는 핀뱃지 혹은 마그넷이 될 예정이라고 한다. 생각만 해도 벌써 예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