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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셔블 밝은 달에 Aug 22. 2020

경주의 맛 3

고기의 고장으로 ‘오시오’ by 진연



 경주를 다녀간 사람들로부터 듣는 평가 중 이것만큼 억울한 것이 없다. 이곳은 왜 맛집도, 고장을 대표하는 먹을 것도 없냐? 는 말. 면전에서 듣게 된다면 먼저 상대방에게 양해를 구해야 할 것이다. 대화가 길어질 거 같은데, 시간 괜찮으시냐.


먼 곳에서 친구나 가족이 놀러 온다고 할 때 무조건 가야 할 식당이 100개쯤 있다면, 그중 첫 번 째는 특별한 사연이 없는 한 ‘고깃집’이다. 대도시에서 온다면 특히 그렇다. 한우는 강원도, 돼지는 제주도가 유명하지만 감히 이름을 붙이자면, 경주는 고기의 고장이기 때문이다.


유통시스템이 잘 돌아가는 시대에도 ‘고기’란 생산지에서 멀 수 록 비싸고 신선도 유지가 어렵기에 축사로부터 떨어진 ‘도시’에서 좋은 고기를 먹자면 돈을 쓰겠다는 결심이 필요하다. 한 번은 강남 한 복판에 있는 냉면집에서 메뉴판을 보고 기함을 한 적이 있는데, 소고기 110g의 가격이 무려 7만 원 이래서 글씨가 번진 건 아닌지 문질러 보기도 했다. 그러다 우화 속 신 포도를 보듯 “맛이 가격만큼 할까? 고기는 경주지” 했지만, 부담스러워서 한 소리지 비싼 고기는 그 값을 할 것이다. 그럼에도 고기는 경주라는 말은 허튼소리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대도시와 지방 소도시 생활을 ‘노동’의 관점에서 비교할 때 드는 예가 있다.  소고기 110g을 먹기 위해 서울에 산다면 그것도 강남이라면 칠만원을 벌어야 하지만 경주에선 만 사천 원이면 된다. 금액의 차이만큼 노동하지 않을 여유가 생기니 돈으로도 살 수 없다는 시간을 번다. 대도시가 그리울 때면 이 셈을 떠올리곤 한다.


그런 이유로 경주에 왔다면 고기를 먹어야 한다.


합리적인 가격에 내공 있는 주인의 조합이 어디 쉬운가. 경주의 대학가, 성건동에는 걔 중에서도 ‘탑’이라고 할 만한 고깃집이 있다.


<오시오 참숯 석쇠 갈비>

특별하지 않은 외관이지만 고만고만한 가게들이 줄 지어 서 있는 중에 오직 이곳만 보이는 건 사랑에 빠진 이치와 같겠지. 마냥 좋고, 다 이쁘다.


하지만 처음 갔을 때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주문부터 쉽지 않았는데 ‘특선 오시오 모듬’이라는 낯선 메뉴 때문이었다. 항정살, 목살, 소갈비살, 양념갈비, 돼지껍데기. 알만 한 이름 앞에 세트 메뉴 1,2로 등장한 모듬은 이곳의 자랑인 돼지고기 메뉴를 골고루 섞어 놓은 것. 손님의 입장에서 봤을 때, 세트가 없었다면 같이 간 사람들끼리 의견을 모으느라 싸움깨나 했을지도 모른다.

돼지 생갈비를 여기 아니면 어디서 먹겠냐고도 했겠고, 조미료 맛 안나는 양념갈비의 고소함을 정녕 외면할 셈이냐고도 했을 테고, 배가 불러도 돼지 껍데기는 꼭 먹어야 한다며 고집을 부렸을 텐데, 다행히도 세트 1, 2만 결정하면 되니 얼마나 다행인지.


주문만 무사히 넘긴다면, 다음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참기름 향이 진동하는 파절임과 명이나물과 몇몇 밑반찬이 나오고 달궈진 숯과 함께 불판이 들어온다. 여기서 눈치를 챘다. 주인분이 보통 깐깐한 분이 아니시란 걸.


불판은 타도 고기는 타지 않는다는 이것은 세척이 편해서 세제를 많이 쓰지 않아도 되는 피아노 줄 불판.

숯불구이란 좋은 고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잘 굽는 것 까지라는 뜻 같았다.


초벌을 해주는 것도, 주인아저씨께서 틈틈이 다가와 자주 뒤집으라!!고 하고, 못 미더우면 직접 구워 주는 것도 모두 같은 말, 태우지 말지어다!


잘 굽힌 고기를 한 점 입에 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주인아저씨께 화를 냈던 듯하다. “아니, 왜 이렇게 맛있어요?”


이제야 온 것에 대한 아쉬움과 그간 무수히 다녀갔을 사람들에 대한 질투와 이윤이 많이 남지 않음에도 좋은 고기를 고집하는 주인아저씨에 대한 존경이 섞여서 터져 나온 진실의 소리였다.

그러다 주접의 말문마저 막은 메뉴를 만났으니 그것은 돼지 껍데기. 삶지 않고 마늘양념만 버무렸는데 냄새 없이 쫄깃한 식감이 그야말로 인생 껍데기라 할 만하다.


이쯤 되면 누구나 예상 가능할 것이다. 이 곳은 식사에도 정성을 다 할 집이다. 이 날은 마침 장마의 시작이라 비가 내렸고 뜨끈한 국물 생각에 유부쫄면을 시킨 것이 신의 한 수였는데 하늘의 뜻이었을까.

멸치 육수에 국수 대신 쫄면을 넣어 얼큰하게 먹는 ‘유부 쫄면 경주엔 대표할만한 음식이 없다는 소리를 들을 때면 내놓는 자랑  하나로 이름난 곳이 몇몇 있지만, 단언컨대  마음속 1등은  <오시오 참숯 석쇠 갈비>  잔잔한 새우가 들어간 국물의 감칠맛이 끝내준다.


알고 봤더니 유부쫄면 맛집이기도 했다는 반전 끝에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세상 행복해졌다. 먹고자 한다면 다음 주도 그다음 주에도   있는 거리라는 게. 마냥 좋다. 자랑하자면 ‘ 사는 즐거움이  이런  아니겠나.




오시오 참숯 석쇠갈비  054-746-5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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