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부터 국제도시 '경주'. 경주에서 만난 해외의 맛 by 박 pd
경주 국립박물관을 관람하다 보면 교과서 한편에서 보았던 파아란 유리잔-로만글라스를 직접 볼 수 있다. 지금으로 치면 지중해 어디메(터키나 로마 혹은 이집트)에서 왔다는 이 파란 유리잔은 경주가 실크로드의 끝. 혹은 시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며, 2000년 전에도 인터내셔널 한 컨트리, 글로벌한 도시라는 것을 증명하는 유물이다. '셔블 밝은 달에 두 다리는 내 것 (내 아내의 것)인데, 다른 두 개는 누구의 것인가?'라며 고대판 '부부의 세계'를 노래로 지어 불렀다는 '처용' 역시, 깊게 파인 눈에 커다란 매부리 코를 가진 외국인이라는 것이 정설로 굳어진 것을 보면 서라벌, 경주는 그 옛날부터 국제적인 도시였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삼국을 통일하고, 조금씩 비실비실해지던 신라가 어느 해 사라지고, 다시 천년이 지난 2020년... 경주는 다시 인터내셔널한 도시로 살아가고 있다. 물론 한국을 대표하는 역사도시인만큼 여행차 경주를 오는 외국인도 많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경주에 눌러앉은 외국인의 수가 1만여 명에 이른다니 한국의 웬만한 중소도시 중에 외국인 인구비중이 가장 많은 도시가 경주이다. 경주 인구가 대략 26만 명이니, 경주 인구의 1/26이 외국인인 셈이다. 이렇게 많은 외국인 노동자가 살게 된 데는 울산과 경주 사이에 위치한 외동읍에 중소 규모의 자동차 부품 공장들이 많고, 이런 공장들에 취업한 외국인 노동자수가 점차 늘었다. 그렇게 등록 외국인 1만 시대가 된 것이 현재 경주 모습이다. 외국인 노동자가 많이 사는 외동읍에 5일장이 열리면, 여기가 한국인지 외국인지 헷갈릴 만큼 장터 소비자의 대부분이 외국인이며, 한국에 보기 힘든 파파야, 고수, 모닝글로리 같은 작물도 쉽게 살 수 있으니 그야말로 동남아 어느 시장에 온듯한 느낌이랄까...
한때 우리들의 아버지 세대가 그랬던 것처럼 잘 사는 나라에 해외취업을 나온 그들은 주중엔 공장에서 열심히 돈을 벌고, 주말이 되면 휴식과 쇼핑, 식재료 구입을 위해 경주 시내에 나온다. 그런데, 이역만리 해외 노동의 피로를 풀어주기에 고향의 맛만큼 좋은 것이 없을터... 하지만 5년 전만 해도 그들 나라의 음식을 파는 식당이라곤 눈 뜨고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래~ 없다면 만들어야지! 고향의 맛을 찾는 소비자들이 있다는 확실한 정보를 가진 사람들은 힘들고 위험한 공장 노동보다야 식당 운영이 더 나을 수 있다고 생각했고, 도심공동화로 임대료가 저렴해진 경주역 앞 도심에 식당을 개업하기 시작해 지금은 대략 경주역 앞에만 10여 개의 외국 식당과 아시안 마트 있다. 베트남, 중국, 터키, 러시아, 태국 식당까지 조촐하지만 이태원 못지않은 다양한 외국식당들이 현재도 성업 중이다.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성건동에는 중국식당만 10여 곳을 넘을 정도라니 이제는 경주 차이나타운이라 불러도 좋을 정도이다. 요즘 성건동에는 중국인, 조선족 동포뿐만 아니라 중앙아시아에서 오신 고려인 동포들(카레이스키), 혹은 그야말로 러시아어를 쓰는 중앙아시아계 외국인 노동자도 많아서 우즈베키스탄이나 신장위구르 자치구 정도는 가야 맛볼 수 있는 중앙아시아계 요리인 삼사(화덕빵), 프로브(볶음밥), 러시아 바바큐 요리인 사슬릭을 맛볼 수 있는 식당도 있고, 보드카 종류만 해도 100종은 넘게 구비한 러시아계 마트까지~ 그야말로 과거 인터내셔널 했던 도시 서라벌이 1,500년이 지난 현재, 경주에 다시 구현되는 듯하다.
성건동의 토요일 오후, 동네 편의점 야외테이블엔 삼삼오오 둘러앉아 맥주 한 캔씩을 들고 타향살이의 고됨을 풀고 있는 중앙아시아계 외국인 친구들이 가득하다. 깊은 눈매와 살짝 꺾여져 내려온 매부리코, 거뭇한 구렛나루가 왠지 익숙하다.
‘괘릉'이라 불리는 원성왕릉을 지키는 무인상에서 본듯한 얼굴. 짙은 눈썹과 부리부리한 눈, 단단한 몸을 가진 서역인의 모습이다. 바닷길 일지, 실크로드 일지는 모르지만 그 시절 신라로 건너온 그는 신라왕를 지키는 무인이 되어 왕의 능을 지키고 있다. 한때는 '처용'이었을수도... 한때는 쿠쉬나메의 주인공인 페르시아 왕자 '아브틴'이었을 수 있는 청년들의 조상들 덕택일까... 지금 봐도 먼바다와 먼 대륙을 가로질러온 저 청년들이 그리 이질적이지 않다. 한때 한반도 동쪽 변방의 작은 나라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만한 힘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은 신라 사회가 지녔던 개방적이고 다원적인 성향 덕이 있지 않았을까? 경주 외국인 노동자 1만 시대. 원했던 원치 않았던, 혹은 경주에 본래 글로벌한 DNA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외국인 노동자 친구들이 그저 스쳐 지나갈 이방인이 아닌 경주 사람의 삶과 사회 속으로 들어올 수 있게 하는 우리들의 배려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덕업일신 망라사방(德業一新 網羅四方 : 덕을 쌓고 날마다 새로워져 사방천지를 아우른다)'이란 글귀에서 '신라(新羅)'는 이름이 나왔다고 한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덕업에서 한국적인 음식부터, 글로벌한 사방(四方)의 음식까지 모두를 망라해서 맛볼 수 있는 경주가 되기 위해서... 그리고 이곳에 자리잡은 본토 외국식당들이 오래도록 살아남았으면 하는 나의 간절한 기원을 담아 긴 서두를 마무리하고, 짧은 외국식당 소개를 시작한다.
<베트남식당>
하노이 쌀국수 : 메뉴는 오직 쌀국수 하나이지만, 맛은 일당백! 살짝 삶아서 나오는 숙주가 포인트, 소고기가 듬뿍 들어가 있음에도 기름지지 않은 깔끔한 맛. 쌀국수 하나만으로도 손님들을 불러들이는 베트남 사장님의 손맛~ 강추
사거리 식당 : 다양한 베트남 요리를 모두 맛볼 수 있는 집. 에머이 같은 베트남 음식 체인점에서는 13,000원 하는 분차(buncha)가 7,000원. 베트남 온 것 같은 분위기에 가성비도 좋은 식당.
<태국식당>
나이팟타이 : 태국인 셰프가 만들어는 태국 현지의 맛. 창밖에 능만 안 보이면 이곳은 카오산로드의 어디라고 해도 전혀 어색함이 없는 태국의 맛.
<중국식당>
마라향(구 바오카오야) : 한국인 남편과 중국인 부인인 운영하는 중국식당. 경주에서 베이징 카오야와 훠궈를 함께 맛볼 수 있는 집
<러시아 바비큐 사슬릭>
바베규 파라다이스 : 중부동 행정복지센터 근처. 거구의 러시아 아저씨가 해주는 정통 러시아식 꼬지구이 사슬릭을 맛 볼 수 있다. 소, 양, 돼지, 닭날개. 소세지 꼬지와 고기빵 삼사와 감자와 고기가 들어간 빵 베르조프를 맛 볼 수 있다.
<우즈벡음식>
시린 : 우즈벡 스타일의 기름야채볶음밥(프로브)와 화덕빵 삼사가 유명. 한 입 먹는 순간, 중앙아시아로 공간이동 시키는 현지의 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