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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셔블 밝은 달에 Jun 20. 2020

경주의 맛 1

대충 먹을 때도 맛은 포기할 수 없는 여행자를 위해 by 진연

 바빠서. 귀찮아서. 다이어트하니까. 대충 먹을 순 있다. 하지만 그 대충에 '맛'까지 포함되는 건 아니라

상추에 쌈장 하나 놓고 먹더라도 기어코 된장에 양파를 갈아 넣어 잡냄새를 없애야 하고,  아플 때마저 '맛있는 죽'에 쓸 육수를 달이기 위해 몸을 일으키는, 맛에 목숨 거는 사람이 나다. 어쩌다 맛없는 한 끼를 먹으면 그에 들인 돈과 노력과 시간이 아까워서 운다. 허투루 보낸 한 끼는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면서. 고백하자면 이토록 예민한 내가 나도 몹시 피곤하다. 할 수만 있다면 내가 내가 아니라 친구면 좋겠다. 각자 열심히 살다가 가끔 만나 맛있는 한 끼의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친구. 나는 이룰 수 없지만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겐 가능하지 않을까.


'맛' 까탈자의 면모는 여행할 때도 예외는 아니어서 어딜 가든 맛집 검색이 우선이다. 방송에 나온 집, sns 맛집, 누가누가 추천한 곳 같은 단어들 중에서 나는 특히 '현지인'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 동네에 살면서 이곳저곳 엔간히 다녀봤는데 이곳만 한 데가 없더라. 며 추천해 주는 곳. 고장의 특산물을 꼭 먹어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맛'으론 최선인 셈이다.

예전에 낯선 동네에서 혼자 점심을 먹어야 할 일이 있었다. 검색해도 나오지 않을 동네라 어딜 가나 고민하던 중에 유니폼을 입은 직장인들이 손에 지갑만 든 채 우르르 걸어가는 모습을 보았고, 본능적으로 그들 틈에 끼어 들어간 식당에서 인생 '굴국밥'을 만난 적이 있다. 터줏대감들의 데이터란 확실히 다르다고 느꼈던 기억이 난다.


오늘 소개할 곳도 그런 주민 맛집이랄 수 있다. 관광지에서 벗어난 한갓진 동네란 것도 그렇고, 가게 벽에 붙어있는 '계모임' 환영의 현수막과 오래된 주택을 개조한 식당 내부가 딱 사랑방 분위기다.

식당의 이름은 경주 시외버스터미널 뒤 편에 위치한 <양지 식당> 이름만 말하면 될 걸, 굳이 위치까지 붙인 건 동명의 유명한 곳이 또 있기 때문인데 메뉴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 (콩나물 밥으로 유명한 또다른 양지식당 역시 맛집이라, 소개할 기회가 있을 듯 하다)


그러니까 이 집의 주 종목이라면, 참가자미 회 전문에 해물탕에 갈치찌개에. 간판과 유리창에 붙어 있는 메뉴만으로도 '네가 뭘 좋아할지 몰라서 다 차렸어' 분위기지만 선택은 어렵지 않다.


이곳에서 나도 동네 사람인양 보이려면 '정식'을 시키면 된다. 손님들 대부분이 먹는 메뉴에다 가격도 7000원으로 가장 싸다.

그럼에도 정식만으론 아쉬워서 다른 메뉴를 기웃거리자 지인이 '정 그러면 정식에 회만 추가하면 돼'라며 꿀팁을 주었다.


- 정식이니까 밥이랑 국, 밑반찬이 나오는 건가?


숱해 먹어온 집밥 스타일. 정식은 낯선 메뉴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반찬이 하나씩 차려질 때마다 터져 나오는 감탄사는 무엇?

가짓수는 둘째 치더라도 음식의 때깔이 딱 손 맛 고수, 할머니 솜씨다.

개인적인 생각일지 모르지만, 할머니가 만든 음식은 재료를 써는 법부터 음식에 도는 윤기가 좀 다르다.


실제로 주인 할머니 혼자서 모두 만드신 것이라고 했다.

코로나 사태로 종업원 분들을 내보낸 탓에 제조도 서빙도 할머니께서 직접 하셨다.


할머니의 맛이라고 할 때 누군가는 "저희 할머니는 음식을 못하시는데요?"라며 의문을 갖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우리 할머니도 그러셨다. (사랑해요. 할머니) 양지 식당의 음식도 모두 다 입에 맞다곤 할 수 없는데,  

어떤 반찬은 짜고 어떤 건 젓갈의 향이 강하다. 꼬시래기 무침엔 '제피'가 들어있다. 취향이 갈릴 만한 지점이 분명 있다.

하지만 남녀노소 누구라도, 미각을 가진 동물이라면 모두가 입맛을 다실만한 반찬이 있으니 그것은 양념게장과 함께 나온 가자미 튀김.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구이 아니고 튀김이다.

빨간 양념의 비주얼은 양념통닭을 닮았으나 한 입 깨무는 순간 촉촉한 생선살이 느껴지면서

그것을 감싸는 새콤달콤한 소스는 탕수육인가? 싶은, 정체가 낯선 와중에 확실한 건 맛. 있. 다. 는 것.


이 반찬 하나만으로도 흉내 낼 수 없는 정성이 가득 담겨 있다.

일단 냄새 없이 잘 말린 가자미가 있어야겠고, 너무 마르지도 그렇다고 축축하지도 않은 가자미를 깨끗한 기름에 튀겨내야 하며 그것을 버무릴 양념을 만들어야 할 테지.


경주, 포항을 잇는 동해바다 쪽 동네에서 가자미란 흔하게 볼 수 있는 재료긴 하다.

유독 맛있어서 이곳을 다녀가는 관광객들이 특산품처럼 사가기도 하고, 식당에서 밑반찬으로도 만날 수 있는

식재료로 동네 절친으로부터 "우리 엄마가 해풍에 말린 가자미 있는데, 살래?"라며 전화를 받기도 한다.


그저 소금만 살살 뿌려 구워 먹어도 좋을 가자미에 튀기고 조리는 과정을 더해 특별하게 만들어 낸다.

동해안의 명물, 가자미를 이 동네에서조차 모를 낯선 방법으로 먹어보고 싶다면 이곳만 한 곳이 없다.

가시 하나하나를 발라내는 일쯤은 반찬을 만드는 수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래서 주인 할머니께서 미안한 듯 "가자미 빼고는 다 더 먹어도 돼요."라고 하실 때 물개 박수를 치며 "그러셔야죠. 돈 받으셔야 될 것 같아요" 하면서 주접을 떤 건 진심에서 우러난 것임을 밝힌다.


밥 한 그릇을 나눠  반은 양념게장과 가자미 튀김 해서 먹고, 반은 물김치랑 밑반찬들을 넣어 비벼 먹는

먹 설계가 필요한 곳임을 잊지 말자. 그러다가 '한 공기 더 추가요!'를 외칠게 뻔하지만, 어디 계획대로 되는 것이 그리 많던가.


ps. 이 곳의 인기 반찬 가자미 튀김은 판매도 가능. 회가 먹고싶다면 회정식도 추천한다. 만원으로 정식보다 두어가지 반찬이 추가되고 가자미 회무침이 나온다.



전화번호 054-771-3118




꽃작가 덧붙임.

     진연 작가 덕분에 최근 양지식당에 가보게 됐다. 이 식당도 모르고 살았다니 경주에 40년 헛살았다 싶었다. 짭짤하고 칼칼한 경상도식 밑반찬을 좋아한다면 단언컨데 행복함에 쓰러질 것이다.  우리가 갔던 날엔 다슬기국이 나왔는데  말 그대로 '담백하고 깊은 맛'에 반해 두 그릇 깨끗하게 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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