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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셔블 밝은 달에 Jun 20. 2020

경주가 필요한 순간

봉황대와 노동노서고분군 by 박피디

 10년 전쯤이었을까... 캄보디아 앙코르왓에 갔었다. 내 예상보다는 앙코르왓은 컸고, 3박 4일 일정 안에  엉덩이 한번 여유 있게 붙일 시간도 없는 빡빡한 패키지 일정. 3일째인가... 앙코르왓의 노을 명당 프놈 바켕 사원에 올라갔었다. 관광객은 바글바글, 사원 계단 한구석에 겨우 엉덩이를 붙이고, 노을을 찍을 사진기를 준비 중인데... 사원 꼭대기 계단의 정중앙 명당자리에 앉은 서양 처자가 눈에 띈다. 저 자리를 선점할 정도면 엄청 일찍 왔을 텐데 생각 중인데, 그녀는 셀카나 노을 사진엔 관심이 없는 듯, 책을 읽고 있다. 그리고 30분이나 지났을까 앙코르왓을 배경으로 노을이 지기 시작한다. "뷰티플~ 원더풀~", "투게더 테이크 포토" 웅성웅성~ 왁자지껄~ 와중에 그녀는 여전히 책을 읽고 있다. 드문드문 고개를 들어 노을을 보다 다시 책을 본다. 그 시간 프놈 바켕의 수많은 사람들 중 그녀만이 앙코르왓과 하나였고, 오롯이 순간을 즐긴 사람이었다. 망원 기능도 없는 똑딱이 사진기 하나로 어짜든동 '나~ 여기 다녀왔어요'란 증명사진 한 장 남기려 애쓰는 나에게 그녀는 거의 부처님 급의 염화미소로 '이보시오~ 여행은 그 순간을 즐기는 것. 여행은 그 공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라오'라는 무언의 가르침을 전해주었고,  나는 속으로 그녀에게 외쳤다 "그래 이것이 바로 물아일체의 여행법 아닌가! 시에시에스푸~(謝謝師父) 스승님 감사합니다" (중국 영화를 너무 봤군 ㅠ.ㅠ)

 이렇게까지 장황하게 사연을 소개한 이유는 5월 경주를 만끽할 수 있는 장소를 소개하기 위해서다. 3월은 봄의 시작을 알리는 벚꽃으로... 4월은 싱그런 꽃송이 같은 연인들이 만들어낸 북적임으로 기억된다. 바야흐로 5월은 싱그런 경주의 속살 속으로 안길 시간이다. 5월이 오면 나는 돗자리를 가지고 봉황대로 간다. 단 한 장의 풍경사진으로 경주를 보여준다면 반드시 이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곳, 봉황대. 언제 누가 이름 붙였는지 모르지만, 경주 곳곳의 능들이 마치 봉황이 낳은 알 같다고 생각한 누군가가 붙인 이름 붙인 거대한 고분이다. 거대한 반원, 봉황의 알 위에 선 자연스레 나무가 자랐고, 거목과 부드러운 능의 곡선이 하나의 선을 만든 풍경이 이곳 봉황대이다. 이곳의 정식 명칭인 '노동, 노서 고분군'이다. 노동동과 노서동 사이엔 도로가 나있고  양편으로 나누어져 봉황대가 있는 곳은 '노동동 고분군'. 일제시대 휘황찬란한 금관의 발견으로 유명해진 금관총과 서봉총이 있는 곳은 '노서동 고분군'이라 부른다.

 이곳은 유적이면서 경주 사람들의 삶의 공간이다. 봉황대의 맡은 편에는 10년전까지 경주시청이 있었고, 경주의 구도심인 중앙상가가 위치한다. 그래서 시내 나온다 하면 당연히 봉황대를 봤고, 상가와 고분들이 어우러진 모습이 어색하지 않은 사람들이 경주 사람들이다.  더이전으로 거슬러가 일제시대 초입만 하더라도 봉황대, 금관총 같은 고분이 있던 자리 근처에 초가집들이 즐비했다. 그 시기 아이들은 고분을 동산 삼아 뛰어놀았고, 땅을 파다가 나온 신라시대 구슬을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것을 보고 일제가 금관총 발굴을 시작했을 정도로 이곳은 옛 경주 사람들의 주거공간이었다. 지금이야 고분보호를 위해 올라가는 것을 법으로 막고 있지만, 1980년대까지만 해도 봉황대 꼭대기에 올라가 경주시내를 내려다본 기억이 없는 사람은 없을 정도로 고분들의 경주 사람들의 삶의 일부였다. (몇년전 눈이 많이 온 겨울날 눈 쌓인 봉황대에서 스노우보드를 타서 욕을 엄청 먹은 분도 계시다^^;;;) 그런 연유가 있어서일지 몰라도 지금도 이곳은 유적지라기보다는 공원 느낌이다. 물론 당연히 유적으로서 보호를 해야 하지만 우리는 이곳에서 자유롭다. 자그마한 동산 같은 고분들이 겹쳐진 풍경 사이에 진짜 경주가 있다. 2000년의 이야기와 싱그런 초록이 있다. 특히 봉황대의 뒤편 노서고분군엔 나무가 많다. 큰 나무가 좋은 그늘을 만들어주는 곳에 자리를 만들고 몸을 누이고 나면 그때야 비로소 나는 경주의 품에 안긴다. 한없이 부드러운 능들의 곡선에 여유롭고, 더없이 푸르른 5월의 신록에 눈이 시원해진다.


  경주는 역사의 도시이며 문화재의 도시이다.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곳은 입장료를 내야 하거나 유적 보호를 위해 접근이 차단되기도 한다.  하지만 봉황대가 있는 이곳만은 다르다. 우리의 삶과 유적의 공유가 허락되는 하는 공간이다. 입장료도 없고, 문화재를 보호해야 한다는 강박도 없다.  '보호', '교육', '유지', 혹은'감시'란 행위를 하지 않는 곳이니 이곳을 즐기는 마음마저 한결 편해진다. 이곳의 능들은 더 이상 '금관총', '서봉총', '금령총' 같이 역사 교과서 속의 외워야 할 이름들이 아니라 푸르름과 여유를 전달해주는 삶의 배경이 된다.  역사도시의 주민만이 만끽할 수 있는 진정한 특권이다. 2000년의 역사를 배경 삼아 쉴 수 있는 초록 초록한 권리.

 5월이다. 이쁜 돗자리와 색색의 풍선, 피크닉 상자를 준비한 커플들과 친구들이 이곳의 나무 아래에서 인스타용 사진을 찍고 있다. 저들이야 말로 경주를 백 퍼센트 즐기고 있다.  경주의 진정한 핫스폿을 알아챈 저들을 칭찬한다. "함께 즐기고 누리니 즐겁지 아니한가~"



ps :  사실 천마총이 있는 대릉원과 봉황대가 있는 노동노서고분군은 지척에 있다. 대릉원은 돌담으로 돌러쌓여 확실한 보호(?)를 받고 있기에 입장료를 낸다. 과거 어떤 이유가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대릉원 구역만 담을 치고, 노서노동고분군은 프리하게 두었는지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둘러친 담이 없었기에 봉황대와 노동노서고분들은 경주사람들의 삶의 공간이 되었다는 것이다. 자유를 느꼈든 자들은 압제의 그늘로 들어가지 못하는 것처럼 이제는 높은 담을 허물고 경주시민과 이곳을 찾는 여행객에게 대릉원을 돌려주어야 한다. 봉황대에서 느낄 자유를 더욱 넓고 아름다운 대릉원에서도 느낄 수 있게 해야한다. 그때야 비로소 유적과 도시가 하나가 되고, 진정한 역사의 도시, 발길 닿는 모든 곳이 역사가 살아 숨쉬는 경주가 될 것이다. 생각해보라!  대릉원의 푸름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수 많은 사람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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