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가르기, 이제 그만

비빔 도시를 꿈꾸며

by Surelee 이정곤

편 가르기, 이제 그만

내게 가장 나쁜 정치인을 꼽는 기준은 단 하나다.
편 가르기를 하는 자.
지난 대선 정국을 지나며, 깜도 안 되는 젊은 후보가 나와 젊은 남녀를 갈라치기 하며 정치적 이득을 챙기려 발광을 했다.
그가 하버드의 공부벌레였는지는 몰라도, 내 보기에 그는 울리는 꽹과리처럼 요란하기만 하고
실력 없는 헛개비에 불과하다.
그는 숫자와 통계, 혐오와 우월의 언어를 교묘히 엮어낸다.
분열을 팔아 존재감을 키운다.
한쪽의 상처를 들춰 또 다른 쪽의 분노를 자극하고, 그 분노 위에 본인의 이름을 새긴다.
그리하여 결국 남는 것은 서로에 대한 불신과 오해, 그리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싸움뿐이다.
정치는 이념의 대결이 아니라 사람을 향한 마음의 싸움이어야 한다.
정치는 다름을 이어주는 다리여야 한다.
그런데 요즘의 정치판은 다리를 끊고, 벽을 세운다.
그 벽 위에서 누가 더 높은지 떠들며, 아래를 내려다보며 웃는 이들이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갈라선다.
남녀를 가르고, 세대를 가르고,
빈자와 부자를 가르고,
심지어 지역까지 쪼개고 난도질한다.
정치는 점점 말장난이 되고,
그 말장난에 속고 속이는 풍경 속에서 누가 누구의 편인지에만 골몰하게 된다.
정작 중요한 삶의 문제는 뒷전이다.
집세는 오르고, 식비는 불어나고,
버스 창밖 풍경처럼 스쳐가는 국민의 고통 앞에 정치인들의 입은 너무 바쁘고, 손은 너무 멀다.
그 와중에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얼마 전, 어느 외국인 교수가 서울을 두고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예전엔 서울이 ‘비빔도시’ 같았단다.
비빔밥처럼 여러 재료가 한데 섞여 어우러지는 도시로 나름대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단다.
그런데 요즘은 ‘피자도시’에 가깝다고 했다.
피자의 페페로니는 아파트 단지,
치즈는 동네를 상징한다.
한 판 안에 있어도 서로 섞이지 않는 구조란다.
듣는 순간 섬뜩했다.
그의 말 속에는 서울의 변화,
그리고 한국 사회의 집단적 정서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비슷한 사람들끼리만 어울리려 하고, 다른 사람들과는 섞이지 않으려는 도시가 우리의 얼굴이 됐다.
아파트 단지에서도 분양과 임대를 나누고, 엘리베이터 버튼 하나에도 선을 긋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
편 가르기는 편리하다.
생각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누가 친구인지, 적인지 구분만 해두면 마음은 편하다.
하지만 그런 세상은 언제나 더 많은 적을 만들어낸다.
결국은 모두가 모두를 의심하는 사회가 된다.
나는 그렇게 편가르기 하는 사회가 싫다.
다름을 경계하는 것이 아니라,
다름을 존중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한다.
소란스러운 말보다, 조용히 눈을 맞추는 마음이 필요하다.
편을 나누는 정치보다, 삶을 연결하는 정치가 보고 싶다.
그게 가능하냐고 의심이 들어도 순전히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
정치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람들을 갈라치기 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사람들의 손을 잇는 일이다.
그 단순한 진리를 망각한 정치인에게 우리가 더는 속지 않기를.
더는 박수치지 않기를.
더는 편을 들어주지 않기를.
이제는 우리가 먼저 말해야 할 때다.
편 가르기의 정치, 이제는 정말 멈추게 해야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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