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역발상

되면 한다, 흐름의 시대를 향하여

by Surelee 이정곤


되면 한다, 흐름의 시대를 향하여


요즘 유튜브에서 ‘사장 남천동’이라는 채널이 화제다. 시사 논평의 예리함도 인상 깊지만, 내게 강하게 다가온 건 그 채널의 벽에 걸린 구호 한마디였다.
“되면 한다.”

기막힌 역발상이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하면 된다’는 말을 수없이 들으며 자라왔다. 시험에 실패했을 때, 취업이 막막할 때, 누군가는 말했다.
“넌 할 수 있어. 하면 된다.”
이 말은 오랫동안 한국 사회의 원동력이었고, 산업화 시대의 신화가 되었다.
그것이 어느 순간 사회적 통념을 넘어 하나의 이념처럼 자리 잡았고, 심지어 교회마저 그에 물들었다.
기복신앙의 교리처럼 복음의 탈을 쓴 ‘하면 된다’는 구호는, 믿음과 노력, 축복을 등가의 논리로 포장해 전파되었다.
하지만 정말 ‘하면’ 되는 걸까?
‘하면 된다’는 결과 중심의 사고다. 성공하지 못한 사람은 스스로의 부족함 탓을 하게 된다. 이 얼마나 냉정한 구조인가.
반면, ‘되면 한다’는 다르다.
그 말에는 기다림과 자연스러운 흐름을 존중하는 태도가 담겨 있다.
씨를 뿌렸다고 바로 열매를 거둘 수는 없다. 뿌리내리고,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시간은 모두 다르다.
‘되면 한다’는 그 시차를 인정하며, 억지로 나를 몰아붙이지 않는다.
이제는 ‘하면 된다’가 모두에게 통하는 시대가 아니다.
노력 이전의 격차—구조적 불평등, 자원의 차이, 심리적 기반—을 무시한 격려는 때로 폭력이 될 수 있다.
‘되면 한다’는 무기력이 아니다.
삶의 흐름을 읽고, 때를 기다리며, 조화를 이루려는 성찰이다.
필요할 땐 움켜쥐고, 아닐 땐 놓을 줄 아는 유연함.
나이 들수록 나는 이 말이 주는 따뜻함과 겸손함에 마음이 끌린다.
세상을 바꾸는 말은 늘 크고 강한 구호 속에만 있지 않다.
때론 조용한 한마디가 시대의 전환이 되기도 한다.
이제 나는 나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오늘도 억지로 하며 살고 있는가?
아니면 조용히, 그러나 깊이 있게 흐르는 강물처럼 내 흐름을 따라 살아가고 있는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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