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 이야기(1)

우연의 연금술 ― 치즈에 담긴 철학

by Surelee 이정곤


사막을 건너는 한 상인이 있었다. 그는 길고 긴 여정을 위해 염소젖을 양의 위로 만든 주머니통에 담았다. 그가 선택한 이 전통적인 용기는 단순한 저장수단이 아니었다. 동물의 위는 내부에 렌넷(응유 효소)을 간직하고 있었고, 이는 의도치 않게 우유를 몽글몽글하게 만들어버렸다. 사막의 열기와 흔들림, 시간이 더해져 젖은 고체와 액체로 나뉘었다.

그가 주머니통을 열었을 때 마주한 것은 실패처럼 보였다. 상했던 우유, 망가진 식량. 그러나 그는 호기심을 선택했고, 조심스레 한입 베어물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실패가 아닌 변화, 변질이 아닌 창조를 발견했다.
그 순간부터 인류는 '치즈'라는 선물을 얻게 되었다.

그 실패가 진짜 실패야 ?

우리는 예상치 못한 상황 앞에서 자주 절망한다.
계획에서 벗어난 결과는 실수로 간주되고, 결과가 불완전하면 쉽게 무가치로 치부된다. 하지만 이 치즈의 탄생은 우리에게 다른 가능성을 열어 보인다. 계획하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일들, 우연이 만들어낸 풍미, 그것이야말로 삶의 진짜 맛일 수 있다는 것이다.

치즈는 인간의 통제 너머에서 태어났다.
자연의 시간, 열기, 미생물, 흔들림, 기다림....
그리고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인 인간의 겸손한 입술이 더해져 완성되었다.

완벽하지 않기에 완전한 것들

오늘날 우리는 결과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모든 것을 관리하느라 바쁘다.
유통기한, 데이터, 성능지표, 루틴과 목표.
그러나 정작,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것들은 예상 바깥에서 탄생하곤 한다.

사랑도, 예술도, 아이디어도, 인생의 터닝 포인트도 대부분은 예측되지 않은 순간에서 피어난다.
치즈처럼.

이렇듯 치즈는 우리에게 엉뚱한 가능성을 가르쳐준다.
완벽한 조건보다 뜻밖의 상황, 실수처럼 보인 계기가 더 깊은 맛을 낼 수 있다고.
가장 진한 풍미는 의도와 통제를 벗어난 자리에서 태어난다고.


삶의 주머니 속 치즈

우리 모두는 마음속에 각자의 ‘주머니’를 하나쯤 안고 산다.
그 안에는 지금은 아직 낯선, 혹은 실패로 보이는 덩어리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태양과 바람, 흔들림과 기다림이 더해졌을 때, 그것이 언젠가 삶의 가장 고소한 순간이 되어줄지도 모른다.

그러니 실수로 보이는 그 일 앞에서, 우리도 한 입 베어물어 볼 수 있었으면 한다.

그 안에 숨어 있는 의미를, 가능성을, 변화의 씨앗을.



치즈 한 조각, 삶 한 조각

오늘 저녁, 누군가와 치즈를 나누어 먹게 된다면 그 하얗고 작은 덩어리 속에 담긴 우연과 연금술, 자연과 인간이 함께 빚은 겸손한 창조의 시간을 잠시 떠올려보기를 바란다.

그것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은은한 향으로 속삭여주는
철학의 한 조각이니까.(1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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