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리스타 KM Dec 18. 2022

부모님은 나에게 어떤 유전자를 물려주셨는가

오랜만에 지인들을 만나러 나가기 위해 화장대에 서서 머리를 빗는데 머리 앞부분에 난 흰머리카락들이 너무 거슬렸다.

흰머리카락은 언제부턴가 나에게 신경 쓰이는 나의 일부가 되었다. 나의 몸이지만 마치 아닌 것처럼 염색을 하고 나면 마음이 한 2주간은 편했다. 그 후 또 조금씩 비집고 올라오는 흰머리카락은 얼굴에 난 뾰루지 이상으로 신경이 쓰였다. 양 옆쪽이 먼저 나다가 머리의 정 중앙에도 나고, 이제는 이마의 정 중앙에도 나면서 이곳저곳 가리지 않고 나의 머리를 물들이기 시작했다.

최대한 좋게 생각해서 봄에 나는 새싹 정도쯤 생각하면 그래도 나의 마음에 위안이 될까...

시간이 갈수록 신경을 쓰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을 느끼며 그렇게 나이 먹음에 적응해 가나보다 라는 생각을 한다. 몸도 마음도… 나이를 거스를 수가 없다.

그것도 잠시 약속에 늦을까 서둘러 나섰다.




방학이라 한국을 한 달 이상 다녀온 지인들은 부모님 얘기를 봄물 터지듯 하기 시작했다. 3년 만에 한국을 가서 부모님을 뵙고 나니 너무 늙어계셨다는 얘기를 하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부모님의 얘기에 너무 공감이 가는 것은 나도 비슷한 경험들을 하며 세월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언니, 부모님을 모시고 전철을 타고 이동하는 것이 너무 정신없고 힘들었어요.”

그녀의 부모님은 지방에서 과수원을 하시고 계시는데 그녀의 오빠 집에서 다 같이 모이기 위해 서울로 올라오셨지만 전철의 많은 계단과 분주한 사람들 속에 정신없어 하셨고, 그런 부모님들이 혹시나 다칠까봐 염려가 되는 채로 몇 시간의 이동은 그녀를 긴장하게 만들었나 보다. 긴장한 채로 도착한 그녀의 오빠의 집에서는 더없이 맛있는 것도 먹고 즐거운 시간이 무르익을 무렵 93세인 그녀의 외할머니 얘기가 나왔다고 한다. 그녀의 엄마의 엄마인 외할머니가 치매에 걸리셨는데 요양원은 가지 않고, 자녀들 집에서 모신다고 했다. 다행히 심한 정도가 아닌 사람을 알아봤다 못 알아봤다 하는 정도의 치매. 그녀는 그것을 ‘착한 치매’라 얘기했다. 얼마 전 그녀의 부모님은 93세인 부모님을 보러 다녀오셨단다.

“ 장모님, 내가 누구여?”

그녀의 아버지가 장모님의 얼굴을 쳐다보며 물으셨다.

“맏사위.”

치매에 걸린 그녀의 외할머니 맏사위의 얼굴을 기억하셨다.

“엄마, 나는 누구?”

“큰 딸이지.”

맏사위를 기억하시는 덕분에 그녀의 어머니인 큰 딸도 기억하신다고 했다.


그런 그날의 후일담을 뒤로하고, 그녀의 아버지는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어 가셨다.

“내가 장모님께 특별히 잘해드린 것도 없는데 나를 기억하셔서 너무 미안하고 고맙고 그랴. 그래서 너희 엄마도 기억하시는 거니까. 너희 할머니는 다행히 착한 치매에 걸리셨지만 나랑 네 엄마는 나이 들면서 병들어 자식한테 짐이 될까 걱정이 돼.”

“할아버지, 왜 그런 말해…”

그녀의 중학생 딸이 울먹거리며 말했다.

그녀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할아버지는 지금도 나이가 많잖아. 병들면 오래 살고 싶은 생각이 없어.”

그녀의 아버지는 그 말씀을 하시며 눈물을 보이셨다고 한다.

그녀가 처음 보는 아버지의 눈물과 최근 몇 년 동안 유난히 늙은 모습에 마음 아파 속상한 그녀의 마음은 금세 눈물로 흘러나왔다.

그녀도 울고, 그녀의 아버지 어머니도 눈물을 흘리고, 누구보다 그 말씀에 펑펑 운건 그녀의 중학생 딸인 나영이였다고 한다.


"언니, 나영이가 할머니 할아버지를 자주 본 것도 아닌데 그렇게 공감하고 울고 그래서 진정시키느라 오히려 눈물을 멈출 수 있었어요."

"그러게. 할머니 할아버지에 대한 정이 있나 봐. 아님 부모에 대한 마음이 유전인가 보다."

“언니, 그러게요. 나영이는 태어나서 몇 번 보지도 못했는데도 신기하게 할머니, 할아버지랑 잘 지내는 거 보면 정말 그런게 있나 봐요."


그녀의 힘들었을 마음이 크게 공감이 가고 있을 때




우리의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던 그때

카톡! 알림이 울렸다.

나의 아빠 카톡이었다.

아빠는 나의 카톡에 멋을 아는 아빠로 저장되어 있다.

멋이란 무엇이든 그것에 대한 가치를 알고 즐길 줄 아는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아빠를 멋을 안다고 저장을 해 놓았다.

멋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니

1. 옷이나 얼굴 따위의 겉모습에서 드러나는 세련되고 아름다운 맵시

2. 사람이나 사물에서 엿보이는 고상한 품격이나 운치

3. 기분이나 취향

2번 같은 느낌의 아빠였다. 고상한 품격이라기보다 운치를 안다고 해야 할까. 그런 느낌의 아빠.  

아빠는 지난밤 내가 아빠한테 보낸 카톡의 답 문자를 보내셨고 ‘카톡!’ 그 알림이 울렸다.


어릴 적 오디오는 아빠가 아끼는 물건 중 손꼽히는 것이었다. 세계 명곡 LP판 전집도 그랬다.

“아니 LP판 전집을 또 샀어요?”

그 옛날 엄마의 잔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아빠는 오디오 중에 특히 스피커의 성능을 중요시 여기셨다.  소리의 저중고 음을 스피커가 다 잘 잡아줘야 한다며 노래마다 그 음역대에 해당하는 노래들을 듣고 테스트를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덕분인지 아님 아빠의 유전을 물려받은 것인지 둘 다 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나 또한 음악 듣는 것을 즐기고, 스피커가 중요한 나의 목록이다. 그 어떤 명품 가방들이나 옷보다도 갖고 싶었던 물건이 된 적이 있었었다.

특히 아빠가 내 어릴 적 집안에 틀어놨던 음악을 들으면 가슴을 때리는 감성이 생긴다. 나이를 먹는지 어릴 때의 추억이 그리워지는 순간이 종종 있고, 그럴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그림자 같은 존재의 아빠다.

그래서 그 밤 아빠에게 카톡을 보낸 것이다. 아빠가 좋아했던 외국 가수가 누군지 말해달라고. 그랬더니 아침부터 아빠는 내게 카톡을 보내왔다.

엘비스 프레슬리, 나나무스꾸리, 프레디아 퀼라, 올리비아

그러더니 아빠는 오후 3시가 넘어 장문의 문자를 보내왔다. 역사와 음악의 배경에 대해.


아빠는 늘 그랬다. 시대적 배경, 역사적 사건, 연도를 잘 기억하시고 음악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 내가 초등학생 일 때도, 내가 고등학생일 때에도, 60대에도, 70대에도 그리고 지금인 80대에도 쭉 그러 하셨다.

81세인 아빠가 예전에 암기했던 것들을 얘기할 때면 놀랍기도 하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나는 짧게 이모티콘으로 아빠와의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이틀 후 아빠는 또다시 카톡을 보내왔다.

폴모리오, 홀리오 이글리아시스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계신 바를 적어 보내셨다.



나는 아빠에게 엄지 척의 이모티콘을 보냈다.

이모티콘이 새삼 고마웠다. 아빠에게 말이나 행동으로 엄지를 올리며 최고라고 말을 하기엔 너무 낯간지러웠을 텐데 이모티콘으로는 그게 가능하게 만들어주니.

50대를 바라보는 나이지만 80대 부모님이 보시기엔 아직도 두뇌를 계발을 하고 잠재 능력을 개발 할 수 있는 나이인가 보다 생각하니 피식 웃게 되기도 하였다.


유전자! 나는 어떤 유전자를 물려받았나 종종 생각해보게 된다.

역사에 대한 암기력. 글쎄. 학창 시절 아이러니하게도 역사를 제일 못했던 과목이었다. 이것은 나를 피해서 다른 형제에게 갔나 보다.

예술적인 성향. 이건 반반인 것 같다. 나는 예술가적인 성향이 있고, 이것을 중요시 여기긴한다. 그런데 하나에 절대적으로 몰입하진 못하고 여러 가지 균형을 중시하니까 이건 반반으로 해둘까 보다.

나는 80세에 어떤 모습일까? 진정한 인생의 멋을 알까?

아빠의 말대로 아빠의 유전자를 물려받아서 음악을 즐기며 글도 쓰며 그러고 싶다. 그때쯤엔 인생의 멋을 멋지게 부리며 살고 있는 중이었으면 싶다.

아빠는 나에게 인생의 멋을 알게 해주고

그것을 느낄 수 있는 유전자를 물려주셨나 보다.

매거진의 이전글 에이스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