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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스타 KM May 15. 2024

꼿꼿하게 서 있는 나무에게 간절함을 말한다

싱가포르 보테닉가든


간절하게 원하면 어느 곳에서든 기도하게 된다는 어느 배우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는 결국 무명의 긴 시간과 노력을 발판 삼아 유명한 배우가 되었고, 그의 이야기는 나에게 큰 공감을 주었었다.

간절하면 무언가 하게 된다는 그 말.

간절함이 있으면 마음속에서 저절로 얘기하게 되고 되내게 되는 것이 기도 아닌가.


나는 며칠 전부터 저녁을 먹고 다 정리한 후 보닉 공원을 갔다.

Botanic gardens 보타닉 공원은 싱가포르 대표 공원이다. 2015년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온갖 생물과 나무들이 살고 있는 공원이다.

부지런한 걸음으로 걸어가면 출발한 지 25분 정도 지나 보닉 가든 나씸게이트에 도착을 하고, 다시 집까지 오면 1시간 정도 걸린다. 걸어서 왕복 만보정도 되는 거리다.  


공원에 들어서면 그 공기가 다르다. 싱가포르는 원래 습하지만 공원에 들어서면 그 습한 기운이  다르다.

그 많은 나무들이 뿜어내는 피톤치드는 나무의 향기와 함께 한층 상쾌함을 더한다.

밤공기의 상쾌함도 꽤나 괜찮고 습기가 나를 씻겨 내려주는 느낌도 나쁘지 않다.

상쾌함은 좋지만 걸음은 재촉하게 된다.

밤 9시경엔 공원에 사람이 없어 내가 찾는 나무까지 가려면 좀 무서운 생각도 들지만 난 간절하지 않던가.

그 모든 감정을 안고 그 나무에 도착했다.

지금 나에게 치성터 같은 곳이다.

그 키가 큰 나무를 아래에서 위까지 올려다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밤하늘도 보게 되고 달도 별도 보게 된다.

나무를 보고 빌었다. 기도했다.

공원에 사람이 없어도 나무에게 마음속으로 말을 한다는 것이 처음엔 좀 어색했지만 며칠 하다 보니 이젠 좀 소리가 나서 내 말이 내 귀에 들린 정도로 말하기도 한다.

수백 년 동안 그 모진 기후 속에서도 이렇게 꼿꼿이 자란 나무의 좋은 기운으로 나의 간절함을 들어달라고 말을 한다. 사람으로 말하면 수백 년 동안 인생의 희로애락을 견뎌낸 인생 아니겠던가.

기도하고 오는 기분은 좀 더 가볍다. 마음의 무거움을 좀 덜어낸 기분이랄까. 생각이 꼬리를 물지 않아야지 하면서 걷다 보면 어느새 또 생각이 많아진 발걸음은 빨라진다.


 어둠이 좀 무서워 걷다가 뛰었다. 얼마 뛰지 않았는데 “우지직”

내 신발에 밟힌 무언가가 느껴졌다.

“오~ 안 돼.”

조금 떨어져서 멈춰 그곳을 바라보니 달팽이가 나의 발에 밟혔다.

‘오… 미안해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나는 뛰는 걸음을 멈추고 걷기 시작했다.


싱가포르 내가 사는 동네는 달팽이가 많다. 콘도 안에도 길에도 비가 오면 길가나 화단에 나와있는 달팽이를 흔히 볼 수 있다.

오늘도 비가 무지하게 퍼부었기에 달팽이들이 나왔나 보다. 나는 길을 보면서 걷기 시작했다.

뛸 때는 앞으로 향해 빨리 가야 된다는 생각과 멈추면 안 되고 어디 목표까진 뛰어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는데 걸으니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마치 인생을 얘기해 주듯 그렇게...

집까지 가면서 인도에 나와있는 네 마리의 달팽이를 만났다. 뛰었으면 나에게 밟혔을지도 모르는 달팽이를 만나니 반갑기까지 했다.

나는 내 발 앞을 기어가는 달팽이를 손으로 들어 화단 쪽으로 옮겨주었다. 기어가는 달팽이를 손가락으로 들어서 옮겨주려 하면 달팽이는 힘을 다해 자신의 몸을 바닥에서 안 떨어지려고 힘을 주었다.

아차 싶었다.

‘그래 너도 시간이 필요하지.’

호의도 상대가 필요한 순간에 주어야 그게 호의인 것처럼. 나는 달팽이에게도 시간을 주었다. 불과 1초나 2초의 시간이지만 달팽이의 행동에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나는 기어가는 달팽이의 등을 손가락으로 똑 두드렸다. 그랬더니 누군가 싶어 몸을 달팽이 집 안으로 움츠렸다. 그러고 나서 바닥과 밀착된 몸에 힘을 뺐다.

여긴 위험해. 내가 널 좀 옮겨줄게.”

나는 달팽이를 손가락으로 들어서 사람들 발에 밟히지 않게 화단 안으로 넣어주었다. 그렇게 네 마리의 달팽이를 만나고 나니 어느덧 집이었다.

간절함이 밤하늘, 달, 별, 나무에게도 꽃에게도 달팽이에게도 전해지길 바라며 좋은 기운 안고 집으로 들어왔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이 글을 읽는 가정에 건강과 행복이 깃들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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