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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인 Oct 12. 2020

인버카길에서 만난 대학 선배

* Day 17 / 20201010 토요일

@ Colac Bay, Invercagil


원래도 해변에서 홍합과 조개를 캐고 싶었던 남편은 어제 프랑스 친구가 잡은 전복을 보고 더 도전을 받아 그 친구가 소개해 준 콜락 베이로 가보자고 했다. 마침 오늘 도착지인 인버카길로 가는 길이었다. 전날 콜락 베이 조류 시간을 잘못 검색해서 가장 낮은 조류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다. 햇살이 너무 따듯한 나머지 그 두 시간 정도 차에서 낮잠을 자버린 나와 반대로 흥분된 마음을 잠재우지 못하고 바다를 바라보다 핸드폰을 보다 했던 우리 남편. 결국에는 큰 소리로 "이제 그만 일어나!" 하며 나의 시에스타에 알람을 울린 남편. 괜히 무안한 나는 왜 큰소리로 깨우냐고 심통을 내었다.

남편을 찾아라!


오늘은 인버카길에 살고 있는 대학 선배 언니네 가기로 한 날이다. 내 대학 선배가 뉴질랜드 최남단 도시에 살고 있다니! 그리고 뉴질랜드를 여행하고 있는 후배에게 먼저 '우리 집엔 안 올래?'라고 이야기해주는 선배가 있다는 게 신기하고 감사하다. 홍합을 캐면 언니네랑 같이 나눠 먹고 싶었는데 다행히도 언니네 가족들이 홍합을 좋아한단다. 콜락 베이에서 홍합은 한 사람당 25개씩만 채취할 수 있다. 우리는 두 명이니깐 50개까지 채취할 수 있는데 걸리지 않으면 더 딸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뉴질랜드 자연에 무해한 관광객'이니깐 하라는 대로 잘 지켜야지. 굳이 거기까지 안 가도 되는데 더 큰 홍합을 얻기 위해 파도가 올라오는 바위까지 가서 몸을 사리지 않는 남편을 보니 왜 저러나 싶기도 하면서 가족 구성원(아직 아내밖에 없음)을 먹여 살리기 위해 분투하는 가장의 모습을 실물로 보는 것 같아 짠하기도 했다. 나는 무서워서 가지도 못하고 멀리서 오빠가 아무 일이 없기를 바라보며 기도했다고 한다. ㅎㅎ 그렇게 거친 파도를 피하며 셀 여유 없이 정신없이 딴 홍합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49개였다. 흐흐흐 역시 우리.


혼자서 49개의 홍합을 채취한 오빠에게 바다는 짜디 짠 흔적을 남겨 주었다. 소금물에 아래 속옷까지 다 젖은 오빠는 그대로 40분을 운전해서 처음 만나는 아내의 선배네 방문했다. 가자마자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선배와 선배의 남편은 오빠를 보며 샤워와 빨래를 하라고 웃으며 먼저 이야기해 주었다. 덕분에 밀린 빨래도 돌리고 이번엔 건조기가 아닌 인버카길에 흔하지 않다는 귀한 햇살에 건조도 시켰다. 대학 시절 많은 교제를 나누진 못했지만, 선배네를 찾아오는 길도 그리고 만났을 때도 불편함이나 어색함이 신기하게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기대가 되었다. 어떤 이야기를 듣게 될까, 어떤 대화를 나누게 될까. 이 만남이 우리에게 어떤 작은 변화를 가져다줄까. 11개월 뉴질랜드에 있으면서 사람들을 만나기 전 기대감이 앞서게 된 것 같다. 물론 키위들을 만날 때는 늘 써야 하는 영어 때문에 부담감이 없진 않지만. 대부분의 만남이 우리에게 작은 변화와 기회를 만들어 주고 있기 때문에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하게 되는 것 같다.


김밥, 떡볶이와 어묵 국물 그리고 후배네를 더 섬겨주고 싶은 마음이 담긴 생뚱맞은 삼겹살까지. 여행하고 있는 후배와 남편을 위해 두 분이서 손수 준비한 저녁으로 우리의 홍합은 일단 냉장고에 고이 모셔 두었다. 그리고 우리가 하루 묵을 줄 알고 햇볕에 바싹 말린 이부자리까지 준비해 둔 그 마음이 정말 따듯하고 고마웠다. 귀한 인연 덕분에 마음과 배 따순 저녁을 보내었다.  

인버카길에서 대접 받은 밥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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