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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한송이 Jun 28. 2023

원하지 않은 해야 하는 일

17화

김이한. 내 오랜 아픈 손가락.

전생이 있었다면 쌍둥이가 아니었을까 생각할 정도로 가까웠다.

친형제처럼 서로를 위하는 친구였다.

끝과 끝으로 이사를 한 뒤 물리적 거리가 심리적 거리감과 동일해졌고,

각자의 삶을 영위하면서 멀어졌다.


사생활을 존중한다는 그늘 아래 무관심해졌을지도 모르지.


유난히 실수가 잦거나 일이 안 풀리는 날엔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긴 날이었다.

그날도 그랬다.

하지만 버텨내야만 하는 세상에 찌들어 모른 척했다.

도움을 부탁하려는 듯 걸려온 전화에 신경질을 냈고, 제 잘못은 하나도 없건만 사과하는 문자에 더 화가 나서

영영 그를 지워버렸다.


근데 나를 찾아오다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문을 벌컥 열었을 때 보인 건, 김이한이 아니었다.


"이럴 줄 알았어. 넌 예나 지금이나 이한이한테 쩔쩔매는구나?"


"정혜림?"


이한의 여자친구.


"표정 좀 봐. 야, 나도 니 친구야. 대놓고 아쉬워하지 말아 줄래?"


"김이한이 누군데 이렇게 달려 나가요?"


옆집 청년이 가까이 다가오며 물었다.

혜림과의 만남. 아, 이 순간은 전혀 예상 못 했는데.


예상 범위 밖에서 사건 또는 사고가 발생하면 스트레스가 극에 치닫는다.

그래서 난 나를 통제해 왔고, 거기엔 늘 재미도 융통성도 없는 인간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수식어는 맘에 안 들지만, 지금 같은 돌발 상황이 벌어지는 것보단 낫잖아.

응. 김이한인 척, 이름을 들먹이며 여자친구가 나를 찾아오는 것보단 훨배 편해.


"그새 남친이라도 생겼어? 이야, 많이 컸다, 한송이?"


"여긴 목숨 간당간당한 사람들이 다시 살아보겠다고 발버둥 쳐야 되는 곳이야. 걔가 보고 싶으면 노력해서 다시 살아. 나한테서 찾지 말고."


문을 닫으려고 했다.

정혜림이 문 틈 사이로 발을 끼워도 힘으로 밀어붙이려고 했다.

밖에서 뭐라고 떠들어대든 안 들으려고 했다.

상황을 파악하려고 눈알을 굴리는 청년이 뭘 물어보든 대답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김이한 찾으려고 왔어. 걔, 뇌사 상태야."


문을 닫을 수가 없었다.

문을 닫지 못하게 끼워둔 발을 빼낼 힘을 잃었다.

정혜림은 말없이 울기만 했다.

청년은 조용히 있었다.


"도와줘. 걔 좀 살려줘."


남 돕는 데 취미 없다.

없는데, 없었는데, 나는 뛰쳐나갔다.

김이한을 이승으로 돌려놓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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