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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한송이 Jun 22. 2023

남 돕는 데 취미 없어요

16화

이젠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직장 동료에게 편지를 썼다.


안녕했나요, 매일 아침 여유롭게 커피 한 잔 들고 사무실로 돌아왔던 때가 가끔 떠오릅니다.

사람이 참 힘든 환경이었는데, 덕분에 꾹 참고 견딜 수 있었어요. 고맙습니다.


등의 내용이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늘 누군가에게 고마워하거나 미안한 감정을 품어왔던 듯싶다.

남에게 피해 주지 않으려 선 그었던 게 무색하게.


나한테 고마워할 사람이 있을런가 모르겠네.


"깼어요?"


침대에 엎드려 자고 있던 청년이 부스럭 일어나 내게 물었다.


"미안해요. 내가 잠들어서 일어난 거죠?"


미안해하는 사람은 찾은 거 같다.


"순서가 잘못 됐어요. 일어났는데 자고 있길래 조심히 빠져나온 것뿐예요."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해서 엄마는 나를 ADHD로 정의하곤 했다.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은 상태지만, 현대인에게 흔한 사회적 부작용 정도로 여겨서 대수롭진 않았다.

더구나 우리 엄마는 원래 나한테 아무렇지 않게 막말(?)을 하곤 했으니까.

그래도 나는 기죽지 않았다. 내가 남들한테 독하단 얘기를 들었던 건 엄마 덕분이지 싶다.


"밖에서 기절할 정도로 몸이 안 좋았으면 말했어야죠. 얼른 다시 누워요. 나는 먹을 것 좀 가져올게요. 먹어야 기운이 나지."


"그것도 순서가 틀렸어요. 기운이 나야 먹죠, 지금은 뭐 씹고 싶지 않아요."


나는 폴짝 뛰어 침대에 누웠다. 

이게 기운 없는 사람 행동이냐는 식으로 청년이 눈을 흘겼지만 아랑곳 않았다.

마지못해 다시 자리에 앉은 그는 기지개를 켰다.


"잘 잤네요. 얼마만인지 모르게."


코 골면서 잘 잘 것 같은 사람이 불면증을 고백하니 안타까우면서도 동질감이 들었다.

난 잠을 잘 못 자는 편이었다. 

아파서 중간에 깨거나, 걱정이 많아서 눈만 뜨고 있거나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승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불안해요?"


요새 내 고민은 오롯이 이승으로의 복귀여서, 그도 마찬가지일 거라 판단했다.

누군가가 싸울 때마다 그랬듯, 멋대로 생각하고 오해하고 내뱉은 말이었지만.


"전 이곳에 들어온 모든 영혼들이 돌아가는 걸 보는 게 좋거든요. 그래서 돕는 거고요. 송이 씨도 내 과 같은데?"


오지랖 어디 안 간다.

성격이 변할 수야 없지.

그치만 나까지 그렇게 보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남 돕는 취미는 없-


똑똑똑-


"저... 안에 계신가요?"


날 찾아올 사람이 없는데.

청년 집과 내 집을 헷갈린 게 분명하다. 

나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앉아서 청년에게 턱짓했다.

나갈 거면 니가 나가라-라는 뜻이었다.


"부탁드릴 게 있어서요. 강 건너 사는 김이한입니다."


뭐?


나는 당장에 문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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