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눈 떠보니 집이었다.
혹시나 이승으로 돌아가 가족들을 볼 수 있을까 싶었는데, 아무 일 없이 덩그러니 누워 천장을 마주했다.
꿈을 꾼 것도 없었다.
요상하네, 이렇게 편한 기절이 다 있나.
거기선 아무 일도 없었던 거 같고, 차라리 다행인 건가.
남들 하는 만큼이겠지만, 나 역시도 가까운 사람들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은 보기 싫어 아픔을 숨겨왔다.
김밥 한 줄로 하루를 때워야 할 정도로 돈을 아끼면서도 잘 먹고 다닌다고 안심시켰다.
회사에서 왕창 깨진 날에도 사회생활을 배우는 중이라고 씩씩한 모습을 보였다.
내가 보고 싶다는 사람을 위해 구토를 해가면서도 약속 장소에 나갔다.
나만 참으면 남들은 평온한 하루를 온전히 채울 수 있을 테니까.
부정적인 사건, 사고, 감정은 특히 최대한 간소화해서 설명했다.
그런 이야기해봤자 슬픈 사람이 하나 더 느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나누면 반이 된다는 얘기는 내겐 설득력이 없었다.
그러니까 이번 기절로 이승에 있는 내 몸뚱아리가 경기를 일으키지 않았다는 건 다행인 일이 맞다.
맞아, 맞는데, 왜 이렇게 우울하지.
보고 싶었나 보다.
엄마가 울고 있는 모습이라도 그리웠나 보다.
아빠가 화내는 표정이라도 살피고 싶었나 보다.
동생이 힘겨워하는 상태라도 눈에 담고 싶었나 보다.
나 정말 이 사람들이 너무 보고 싶다.
머리가 띵해서 그런지 더 서럽네.
빨리 돌아가야겠다.
오늘 편지 한 다섯 개는 몰아 써야지.
건강한 상태로 살아갈 수 없다고 하더라도, 같이 있고 싶은 사람들 곁에서 살아남아야겠다.
괜히 약속 미루고 멀어졌던 지인들도 한 번은 얼굴 마주하고 밥 한 끼 먹어야겠다.
여기서 있었던 일을 기억할 수만 있다면, 아마 개과천선하지 않을까 싶다.
옆집 청년도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서로 도움 주는 사이가 될 거 같고, 나쁜 사람 같지도 않고, 오히려 좀 안타까운 면도 있는…
“아, 그 사람이 날 여기다 데려다 놓은 건가?”
찬찬히 고개를 돌려 침대에서 내려오려는데 옆에서 숨소리가 들렸다.
내 이마에 물수건을 올려두고 아주 편안히 잠든 청년이 엎드려 있었다.
………
조금만 더 쉬어도 되겠지.
눈은 말똥말똥했지만, 애써 감았다.
규칙적인 호흡을 내뱉는 숨소리에 나를 맡기고, 잠깐, 아주 잠깐만 이 사람의 고요함을 지켜주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