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한송이 May 24. 2024

마음의 날씨는 오늘도 OO

어쩌다 보니 밴쿠버, D-150

일기를 쓸 때 항상 오늘의 날씨를 적는 칸이 있었다.

때때로 나는 내 기분을 그려 넣고는 했다.

어른들은 반항으로 봤던 것 같은데, 나한텐 하늘의 기분보다 내 감정이 더 소중했다.

여행을 떠날 때도, 지금처럼 공부를 하기 위해 해외로 오는 경우에도,

내가 그 나라/지역을 얼마나/왜 원하는지. 마음이 중요했다.


어디든 갈 수 있다면, 어디를 고르겠는가?

왜 그곳을 선택했는가?

선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기준이 무엇인가?


토론 수업 시간에 나왔던 주제다.

어떤 친구는 음식이라 답했고, 누군가는 액티비티라 답했다. 일부는 사람이라고도 했다.

영국과 이탈리아 여행을 생각하면 나는 음식 편에 서야 한다.

프랑스와 스위스 여행을 떠올리면 나는 액티비티라 답해야 한다.

체코를 떠올리면 사람이 절대적인 기준이 될 것이다.


밴쿠버에 온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건 날씨가 되어버렸다.


어딜 가든 아름다운 풍경을 보려면 

날씨가 좋아야 한다.

밴쿠버는 레인쿠버라는 별명을 가진 도시답게 

날씨가 변덕스럽다.

불과 지난 월요일에는 일주일 내내 

폭우가 몰아칠 거라 했는데, 

정작 목요일까지 비는 단 하루 쏟아졌다.

그래서 다들 우산 없이 그냥 나다니는 건가 싶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비가 쏟아졌던 어느 날,

나는 Deep Cove에 하이킹을 하러 갔다.

처음 만난 친구들과 점심을 먹는 동안

잠시 비를 피했다.

계속해서 비가 오면 당연히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

놀랍게도 10분이 채 지나지 않아 

강렬한 태양이 젖은 땅을 순식간에 건조했다.


아름다운 경관을 볼 수 있었던 건 감사하게도 

모습을 드러낸 해 덕분이었다.


여름처럼 더우니 반팔을 입는 게 좋겠다던 

어느 오후,

친구들의 조언을 가볍게 듣고 

겨울 코트를 챙겨 리치몬드 마켓으로 떠났다.


처음에는 충고를 새겨들을 걸 후회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현명했음을 깨달았다.

야시장은 인산인해로 걸음 옮기기조차 어려웠지만,

차가운 밤공기는 사람의 온기를 느끼지도 못하게 쏜살같이 지나다녔다.


오랜 시간 머물 수 없었던 건 아쉽게도 모습을 감춘 해 때문이었다.


밴쿠버에선 어디를 가든 날씨가 좋아야 한다.

이들이 여름에 특히 높은 행복지수를 갖고, 

겨울에 우중충한 이유는 오직 날씨 때문이다.

비 오는 날 독일 드레스덴을 뛰어다니며 

동생과 깔깔 웃어댔던 나지만,

추워서 기억조차 얼어붙은 오스트리아 여행보다, 

더운데도 불구하고 신이 난 사람들 틈에서
맛있는 파스타를 먹었던 이탈리아 여행이

더 생생하게 떠오르는 건 날씨가 그만큼 좋았기 

때문이다.

내 마음이 햇살처럼 따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히 생각해 보건대,

사람의 날씨도 좋아야 할 것 같다.

오늘 내 감정이 맑음인지, 흐림인지.



마음을 잘 돌보는 사람들은 대개 튼튼하고 건강한 자아를 갖고 있기 마련이니까.

매일이 즐겁고, 소중하고, 특별하다.

소나기를 예쁘게 볼 수 있는 여유, 번개를 카메라 플래시로 생각하는 센스는 그로부터 비롯된다.


마음의 날씨를 잘 살펴보는 것.

여행에서 뿐만 아니라 살아가는 데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일과이지 싶다.


오늘 당신 마음의 날씨는 어떠한가?


작가의 이전글 하늘색 살 맛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