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밴쿠버, D-111
나는 새로운 길로 걸어가는 걸 선호한다. 겁은 많고 모험심도 없으면서 매일 색다른 길을 찾는다.
무언가에 쉽게 질려하는 성격도 아니고 오히려 규칙적으로 사는 편임에도,
반복되는 출근길만큼 지긋지긋한 것도 없다.
밴쿠버에서의 등굣길도 비슷하다.
두 달째 같은 길목으로만 나다녀서 그런지
어쩔 때는 왼쪽으로 꺾었다가,
또 어떤 날에는 오른쪽으로 꺾었다가.
별 짓 다 하면서 등교한다.
매일 똑같은 밥을 먹는 것도 별로 달갑지 않다.
그래서 한국에 있을 때 잘 안 먹었다.
먹는 행위 자체가 배고픔을 참는 것보다
귀찮기도 하고,
어제 먹은 밥 오늘도 먹으려니 식욕이
자체적으로 억제됐다.
밴쿠버에서도 별반 다르지는 않지만,
이상하게 살찌는 기분이다.
전보다 잘 챙겨 먹고 있긴 하다. 외국에서 아픈 것만큼 서러운 것도 없을 테니까.
매일 오전 5시에 일어나 공부하고, 운동하고, 아침 먹고, 등교하는 같은 반 친구를 보면서
대단하다는 표현을 감추기가 어려웠다. 나 역시 비슷한 루틴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어서,
그게 얼마나 어려운 지 알고 있다. 매일이 나 자신과의 싸움이다.
다른 친구들과 선생님은 이런 우리더러 지루한 삶이라고 놀렸다.
별생각 없었는데, 이리저리 길을 바꿔가며 등교하는 나를 보면서 어쩌면 나 역시도
내 삶이 심심하다고 생각하는 거 아닐까 의문이 들었다.
한국에서의 정해진 삶이 싫다고 투정 부리면서도
못 벗어나고 있는 건가.
느긋하게, 여유롭게 살고 싶다고 외치면서도
급한 성격은 고칠 수 없는 건가.
누군가 내 삶을 함부로 지루하다고 말해서도
안 되는 거고, 내가 거기 휘둘릴 이유도 없는 거지만
정말 순수한 의도로 궁금해졌다.
대단한 친구에게 물었다.
너는 네 삶이 지루하다고 생각하냐고.
친구는 대답했다.
나는 규칙 덕분에 지금의 나로 성장할 수 있었어.
오히려 남는 시간도 확보되어 있으니 훨씬
여유롭지. 남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든,
나는 신경 안 써.
내 행복이 이건데, 남들 따라 살 이유는 없으니까.
행복은 양이 아니라 빈도라고 했다.
똑같은 길을 걸어가더라도 어느 날은 오리들을 구경할 수 있고,
어느 날은 빗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리듬을 탈 수도 있다.
내 행복도 남 따라 쫓아가지 않고,
나만의 모험을 떠나는 등굣길을 조금 더 즐겨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