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한송이 Jun 30. 2024

여러 번의 행복

어쩌다 보니 밴쿠버, D-111

나는 새로운 길로 걸어가는 걸 선호한다. 겁은 많고 모험심도 없으면서 매일 색다른 길을 찾는다.

무언가에 쉽게 질려하는 성격도 아니고 오히려 규칙적으로 사는 편임에도,

반복되는 출근길만큼 지긋지긋한 것도 없다.

밴쿠버에서의 등굣길도 비슷하다.

두 달째 같은 길목으로만 나다녀서 그런지 

어쩔 때는 왼쪽으로 꺾었다가,

또 어떤 날에는 오른쪽으로 꺾었다가.

별 짓 다 하면서 등교한다.


매일 똑같은 밥을 먹는 것도 별로 달갑지 않다.

그래서 한국에 있을 때 잘 안 먹었다.

먹는 행위 자체가 배고픔을 참는 것보다 

귀찮기도 하고,

어제 먹은 밥 오늘도 먹으려니 식욕이 

자체적으로 억제됐다.

밴쿠버에서도 별반 다르지는 않지만, 

이상하게 살찌는 기분이다.

전보다 잘 챙겨 먹고 있긴 하다. 외국에서 아픈 것만큼 서러운 것도 없을 테니까.


매일 오전 5시에 일어나 공부하고, 운동하고, 아침 먹고, 등교하는 같은 반 친구를 보면서

대단하다는 표현을 감추기가 어려웠다. 나 역시 비슷한 루틴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어서,

그게 얼마나 어려운 지 알고 있다. 매일이 나 자신과의 싸움이다.

다른 친구들과 선생님은 이런 우리더러 지루한 삶이라고 놀렸다. 

별생각 없었는데, 이리저리 길을 바꿔가며 등교하는 나를 보면서 어쩌면 나 역시도

내 삶이 심심하다고 생각하는 거 아닐까 의문이 들었다.

한국에서의 정해진 삶이 싫다고 투정 부리면서도 

못 벗어나고 있는 건가.

느긋하게, 여유롭게 살고 싶다고 외치면서도 

급한 성격은 고칠 수 없는 건가.


누군가 내 삶을 함부로 지루하다고 말해서도 

안 되는 거고, 내가 거기 휘둘릴 이유도 없는 거지만

정말 순수한 의도로 궁금해졌다.

대단한 친구에게 물었다. 

너는 네 삶이 지루하다고 생각하냐고.

친구는 대답했다.


나는 규칙 덕분에 지금의 나로 성장할 수 있었어. 

오히려 남는 시간도 확보되어 있으니 훨씬 

여유롭지. 남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든, 

나는 신경 안 써. 

내 행복이 이건데, 남들 따라 살 이유는 없으니까.


행복은 양이 아니라 빈도라고 했다.

똑같은 길을 걸어가더라도 어느 날은 오리들을 구경할 수 있고,

어느 날은 빗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리듬을 탈 수도 있다.

내 행복도 남 따라 쫓아가지 않고,

나만의 모험을 떠나는 등굣길을 조금 더 즐겨보기로 했다.

작가의 이전글 정중한 존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