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밴쿠버, D-69
조금이라도 어릴 때 많은 경험을 쌓는 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에 있어서 더욱 커다란 시야를 갖게 해 준다는 어른들의 말씀은
틀린 것 하나 없다.
곧 불혹의 나이를 갖게 될 학생들과,
이제 막 스무 살을 갓 넘겨 밴쿠버에 도착한 학생들의
삶에 대한 태도는 꽤 커다란 차이를 보여준다.
물론 내가 마주한 사람들이 이 세상의 전부도 아니고,
일부분이겠거니 인정하기 때문에 일반화하고자 하는 의도 역시 없다.
시니컬하게 세상을 대하는 스물세 살 대학교 졸업생은
마치 자신이 다 산 사람처럼 냉소적인 태도로 모두를 불편하게 만들고,
이미 산전수전 다 겪은 어르신은 난처한 상황에서 재치 있게 상황을 바꾸기도 한다.
그러나 이 역시 극히 일부일 뿐이다.
모든 게 새롭고 즐거운 나이엔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 역시 쉽다.
언어 장벽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국가의 친구를 금방 사귀는가 하면,
함께 어울려 다니면서 식견을 넓힌다.
그에 반해 세상의 눈초리에 지칠 대로 지쳤던 이들은 모든 행동이 조심스럽다.
때때로 제 고집을 부리다가 유쾌하지 않은 일을 겪기도 한다.
"그럴 수도 있지."
타인을 대할 때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마음 가짐이다.
그저 그렇구나 하고 넘길 줄 아는 것.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그 자체를 수용하고,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가지기에
마치 나도 조금은 나이 들어버린 느낌이 들 때가 있어 괜히 서글프다.
괜찮다.
한국에서보다 두 살이나 어린 캐나다에서
내가 못 할 게 무엇 있으랴.
생각이 늙어버린 뒤라
하늘만 보고도 꺄르르 웃었던 어린 시절의 나로 돌아가기는 어렵겠지만,
내가 아닌 타인과 사고방식, 문화를 직접 겪음으로써
한 뼘 정도 더 마음을 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으로
오늘도 예쁘게 하루를 시작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