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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경호 Nov 04. 2024

김영하의 「작별인사」를 읽고

오래 전, 독서모임에서 발표한 독후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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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이 읽으려고 사왔다길래 어떤 내용의 책인지 궁금해서 물어봤다. 사람처럼 행동하는 로봇이 나오는 소설이란다. 구미가 당겼다. 미래소설이라면 그건 내 취향 아닌가. 내 관심사와 맞닿아 있었다. 인공지능, 로봇, 우주, 로켓, 탐험, 달, 화성... 등등 이런 단어들이 떠올랐다. 과연 그런 내용들이 담겨 있을까 궁금해서 책을 펼쳤다.


  작가가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한 메시지가 정확히 무엇인지를 독자가 100% 이해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독자는 그냥 비슷하게 추측만 할 뿐. 작가의 의식 세계를 파헤친다기 보다는 그저 따라간다고 해야 옳을 것 같다. 미래 사회의 모습을 다루는 소설은 작가 자신도 경험하지 못한 소재를 다루는 것이므로 많은 부분을 상상력에 기반해서 서술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니 철저히 지식에 기반해서 상상력을 발휘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하이퍼 리얼 휴머노이드 로봇이 소설 전면에서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철이’라는 인간형 로봇은 자신이 기계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최첨단 인공지능 휴머노이드 제작사인 휴먼매터스 랩에서 최 박사로부터 지음을 받았지만 정작 자신은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철이는 최 박사를 아빠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 하지만 그의 몸은 인공 섬유로 구성되어있고 빨간 액체가 몸 속에서 돌고 있다. 인공지능의 수준은 이미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었고, 사람들은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살아간다.


  아빠(최 박사)는 철이가 휴먼매터스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철저히 통제했지만, 철이와 함께 펫 숍에 갔다가 간발의 시간 차로 이산가족이 되고 만다. 인간과 로봇을 판별하여 로봇을 수용소로 보내는 경비 요원들에 의해 철이는 잡혀가고 만다. 납치되다시피 순식간에 플라잉 캡슐에 실려 수용소로 보내진 철이는 수용소에서 다른 휴머노이드 로봇들과 지내면서 자신의 존재를 차츰 깨닫게 된다.


  로봇이 자신을 인간이라고 착각할만큼 인공지능 기술이 극도로 발달해서 자아를 가진 로봇이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자아가 완벽한 것은 아니라서 어떤 경우엔 거대한 네트워크로 흡수되어 버리고 공장초기화된 로봇으로 남게 되기도 한다.


  철이가 수용소에서 만난 ‘선이’라는 여자 아이는 로봇이 아닌 인간이었지만 유전자 복제로 태어난 클론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철이(로봇)는 수용소에서 만났던 선이(클론), 민이(로봇)와 헤어지게 되지만 세월이 많이 흐른 훗날 철이는 선이를 만나러 찾아가게 된다. 


  여자 아이였던 선이는 이제 할머니가 되었고, 철이는 예전에 가졌던 몸이 아닌 다른 몸을 입고 선이 앞에 나타났다. 선이가 사는 집 뒤에는 작은 오두막들이 원형을 이루며 모여 있었는데, 그곳에는 선이와 같이 늙고 병든 클론들, 망가진 휴머노이드들, 걷지 못하는 로봇들, 개와 닭, 그밖의 여러 동물들이 있었다.


  늙고 병든 선이를 바라보는 철이는 연민의 정을 느꼈다. 철이는 선이가 좋아하는 『빨간머리 앤』에 나오는 한 대목을 읽어주며 선이의 마지막을 지켜주었다. 선이의 의식이 드디어 그 불완전한 몸을 떠난 것이었다.

  이로써 작가가 책의 제목을 ‘작별인사’로 정한 배경을 알게 되었다. 로봇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인간의 생명이 꺼져가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제목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것도 완전한 인간이 아닌 복제인간이 세상을 하직한다는 설정이, 뭔가 알지 못할 울림을 전해왔다.


  책의 결말은 허무하고 비참(?)하게 끝났지만, 이야기 전개 과정에서 최 박사가 한 말은 책을 덮은 후에도 진하게 귓가를 맴돈다.


  “철아, 인간은 그렇게 쉽게 지지 않아. 아직 인공지능은 인간의 뇌의 작동 기전과 마음을 다 이해하지 못하고 있단다. 결과로는 비슷해 보일지 몰라도 인간은 그들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거든. 우리는 감정과 이성을 조합해 판단을 내려. 반면 기계들은 오직 프로그램의 논리에 따라서만 움직여. 인간이 사라진다면 결국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존재가 될 거야. 왜냐하면 왜 뭔가를 해야 하는지 모를테니까. 그들은 우주를 탐험하지도 않을 거고. 외계의 존재와 소통하지도 않을 거야. 왜 그래야 하는지 전혀 필요성을 못 느끼기 때문이지. 오직 인간만이 호기심과 욕망, 신념을 가지고 다른 세계를 탐험하고 그들과 교류하려 할 거야. 감정이 있는 존재만이 결정을 내릴 수 있고 그래야 그 결정들을 바탕으로 발전을 할 수가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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