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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경호 Sep 27. 2024

김호연의 「불편한 편의점」을 읽고


  만화 그림 같이 유치찬란해보이는 표지가 먼저 눈길을 끌었고, ‘누적 판매 50만부 돌파’라는 띠지 문구가 한 번 더 내 호기심을 자아냈다. 페이지수에 비해 두껍고 다소 거친 질감을 가진 것으로 보아 80미색모조지가 아닌 80그린라이트지를 사용한 것이 분명해보였다.     


  편의점 주인 염영숙 여사가 파우치를 잃어버린 것을 알아차린 것은 서울역에서 출발한 기차가 이미 평택 부근을 지날 때다. 누군가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 그가 파우치를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잠시 후 같은 사람으로부터 전화가 온다. 배가 고프니 편의점 도시락을 하나 사먹겠다고 한다. 염여사는 그가 노숙자임을 직감한다. 마침내 서울역으로 돌아와 노숙자를 발견한 염여사는, 그가 다른 세 명의 노숙자와 몸싸움을 해가며 파우치를 지켜내는 것을 목격한다. 


  청파동에서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는 염여사는 노숙자를 데리고 자신의 매장으로 가서 편의점 도시락을 먹게 해준다. 주간 알바인 ‘시현’에게는 노숙자가 언제라도 다시 오면 도시락을 주라고 지시한다. 노숙자 사내는 아침마다 편의점에 와서 도시락을 먹는다. 


  며칠 후 도시락 폐기 시간에 맞춰 편의점에 나온 염여사는 사내와 야외 테이블에 마주 앉는다. ‘독고’라는 이름을 가진 사내는 알콜성 치매로 인해 자신에 관한 기억이 별로 없다.


  그동안 야간 알바를 하던 성필 씨는 중소기업 사장님의 운전기사 일을 얻었다며 그만둔다. 야간 알바를 구할 때까지 염여사가 그 자리를 대신하는데, 야간 근무 중 20대 취객들이 들어와 난동을 부린다. 이에 때맞춰 사내가 찾아와서는 상황을 정리해준다. 염여사는 사내를 데리고 해장국집에 가서 잘 먹이고 야간 알바를 부탁한다. 추운 겨울을 따뜻한 편의점 실내에서 날 수 있고 돈도 벌 수 있다고 설득해가면서.     


  일명 진상(제이에스)이라 불리는 손님들이 심심찮게 편의점에 찾아오곤 한다. 주간 알바를 하는 시현에게 찾아오는 제이에스 오브 제이에스(진상 중 단연 으뜸)는 시현의 심장을 떨리게 했다. 염여사와 야간 알바 약속을 한 ‘독고’가 긴 수염을 깎고 환골탈태한 모습으로 편의점에 들어와 시현과 마주한다. 시현이 독고에게 업무를 가르치자 예상 외로 독고는 빠르게 습득해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독고가 신입 교육을 받고 있을 때 시현을 심장 떨리게 하던 진상 손님이 덜컥 들어온다. 손님은 그 상황을 파악한 후, 신입을 골탕 먹이기로 마음 먹는다. 신입이라면 혼동하기 쉬운 담배를 달라고 하자 독고는 정확하게 집어 바코드를 찍는다. 이어 진상의 음흉한 계략을 무력화시켜 퇴치한다.


  시현은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 편의점 알바생들이 어려워할 만한 업무 스킬을 차분하게 알려준다. 인근에서 두 개의 편의점을 운영하는 50대 사장님이 그 유튜브를 보고 시현을 스카우트하고자 제안한다. 다른 한 개의 매장을 오픈하면서 점장이 필요하단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시현을 항상 응원해주던 염여사는 시현의 이직을 축하하면서 격려해준다.     


  시현과 교대 근무를 하던 ‘오선숙’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남자 세 부류가 있다. 첫째는 남편인데, 그는 안정적인 직장을 걷어차고 나오는가 하면 가게를 운영하다 가출해버리고 병 들어 돌아왔다가 다시 나가버렸다. 둘째는 아들인데, 대학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직하더니 1년 2개월 만에 때려치우고 주식하다 망하고 독립영화 찍는다고 돈 날리고 우울증에 걸려 병원 신세까지 졌다. 셋째는 야간 알바로 들어온 독고라는 미련 곰탱이였다. 하지만 미련 곰탱이 독고 씨는 1주일만에 아주 괜찮은 인간이 되어 선숙을 놀라게 한다. 말 더듬는 것도 많이 나아지고, 알콜성 치매로 인한 기억력 감퇴도 차츰 나아진다. 


  선숙이 근무하는 시간에 한 소년이 들어와 삼각김밥 두 개를 훔친다. 소년이 도망가려는 찰나에 독고가 들어와 문제를 잘 해결한다.


  선숙은 아들이 아버지처럼 될까봐 걱정한다. 집에 틀어박혀 게임이나 해대는 아들과 심하게 다툰 후 편의점에 출근해서 독고와 인수인계를 하다가 울음이 터져 버린다. 독고는 다시 한 번 솔루션을 내놓는다. 아들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봤냐고 물으면서, 집에 가거든 손편지를 써서 삼각김밥과 함께 아들에게 줘보라고 권한다.     

  마흔넷이 된 ‘경만’은 퇴근하다가 어김없이 편의점에 들러 참깨라면, 참치김밥, 참이슬을 구매하는 단골고객이다. 그는 이를 ‘참참참’이라고 부른다. 대학 졸업 후 제약 영업, 보험, 자동차, 인쇄제지, 의료기기까지 두루 경력을 쌓았지만 애초에 흙수저였고, 이제는 중학생이 될 쌍둥이의 아빠다. 집에선 반기지 않는 술을 퇴근 후 혼자라도 먹기 위해 편의점에 들러 ‘참참참’으로 해결한다. 경만은 곰탱이같은 독고를 마주하는 게 영 부담스러웠지만 그런 그에게 독고가 먼저 다가가 옥수수수염차를 권한다. 야외 테이블에서는 겨울 바람을 맞아 추우니 몸을 녹이라면서 온풍기까지 갖다준다.


  ‘인경’은 대학로에서 연극을 하다 후배들에게 나이로 밀려 그만두고 나서, 글을 쓰기 위해 박경리 토지문학관에 입주한다. 문학관에서 만난 대학교수 희수쌤은 인경과 친해지고, 인경이 문학관을 나올 때 작업실을 소개해준다. 희수쌤의 딸이 숙대 앞 전세빌라에 있는데 방학 때 비어있을 것이니 그곳을 이용하라고 권한다. 편의점이 내려다보이는 빌라에서 새벽에 잠이 깬 인경은 낮에 만났던 편의점 곰탱이 알바 독고 씨를 불편해하면서도 편의점을 이용한다.


  인경은 빌라의 창가에 앉아 편의점에 출입하는 동네사람들을 구경하던 중 참참참 아저씨 경만이 혼술을 하고 돌아가는 모습을 발견한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는 인경은 편의점으로 내려가 경만에 대해 독고씨에게 묻는다. 경만과 독고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보니 자신이 쓰고 있는 글의 이야깃거리가 되겠다 싶어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 독고와 친해진다.


  자신을 연극 무대에서 퇴출(?)시킨 김대표로부터 2년 만에 전화 연락이 온다. 인경은 독고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글의 소재로 구상하고 있던 터라 김대표에게 작품의 플롯을 이야기해준다. 김대표는 당장 계약하자고 제안하고, 인경은 그날 밤 자정을 넘도록 자판을 두드린다.     


  염여사의 아들 ‘민식’은 ‘기용’을 만나 에일 맥주 사업에 대한 제안을 받는다. 달콤한 제안에 귀가 솔깃해져 사업자금을 어떻게 마련할지 생각한다. 편의점이 아빠의 유산이며 그중 절반은 자기 몫이라고 생각하고는 엄마가 편의점을 처분해서 자신에게 돈을 주길 바란다. 맥주를 사들고 가 엄마를 설득하려고 편의점에 간다. 독고랑 마주친 민식은 진상 짓을 하며, 엄마에게 얘기해서 독고를 자르겠다고 협박한다. 


  민식은 독고를 자르기 위해 흥신소 곽씨에게 그의 뒷조사를 의뢰한다. 독고는 퇴근해서 서울역으로 향해 노숙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전직 경찰인 곽씨는 독고를 미행한다. 이어 독고는 전철을 타고 압구정역에 내린다. 세련된 5층짜리 병원에 들어가더니 원장을 만나고 나온다. 뒤따라간 곽씨는 원장을 만나 용산서 지능범죄팀이라며 독고에 대해 물어보지만 금세 가짜임이 드러나고, 도리어 원장은 독고의 뒷조사를 해오라고 다그친다. 좌절감이 든 곽씨는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는 친구 황씨를 찾아가 하소연하지만 기분만 더 나빠진다. 


  곽씨는 편의점 앞에 다다랐다. 편의점 주인으로 보이는 할머니(염여사)와 독고가 대화를 나누다 할머니가 나가는 것을 확인하고는 안으로 들어간다. 독고는 친절하게 곽씨를 맞이하고, 야외테이블 앞에 나와 온풍기까지 틀어준다. 핫바까지 데워 와 곽씨에게 건네주는 친절에 감동한 나머지, 곽씨가 독고를 뒷조사하는 중이라고 털어놓는다. 민식이 독고를 쫓아내려고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도 독고는 태연하게 괜찮다고 하며 이제 편의점을 그만둘 거라고 말한다.    

 

  독고의 기억은 서서히 돌아왔고, 새 출발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다. 딸과 아내에 대한 기억이 떠오르면서, 자신의 무심함과 오만함 때문에 그들과 소통하지 못하고 투명인간 취급 당하던 과거가 떠오른다. 그리고 자신이 성형외과 의사였던 사실이 생각난다. 압구정동 병원은 독고가 일하던 곳이었고, 4년 만에 찾아가 만난 병원장은 고스트 닥터에게 대리수술까지 맡기고 사고가 터져도 책임지지 않는 사람이었다. 독고가 맡았던 환자가 고스트 닥터의 수술을 받고 사망한 뒤 독고는 병원을 떠나야했다. 아내와 딸은 집을 떠났고 가정은 해체됐다. 그들이 대구에 있다는 사실은 알아냈지만, 이미 독고는 차압 딱지가 덕지덕지 붙은 집에서 죽어가고 있었다. 결국 서울역 노숙자가 되었고 거기서 염여사를 만났던 것이다.     


  편의점을 그만 둔 독고는 대구에 가기 위해 서울역에서 티켓을 끊고, 노숙자 시절을 떠올렸다. 대구에 의료 봉사를 간다고 둘러댔지만, 염여사는 독고를 배웅하느라 서울역까지 따라왔다. 독고는 헤어지기 전 염여사에게 말한다. “죽어야 될 놈을 살려주셨어요. 부끄럽지만 살아보겠습니다.” 대답 대신 염여사는 마주 안은 채 작은 손으로 독고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기차가 한강 철교에 올랐다. 노숙자 시절 마포대교나 원효대교에서 뛰어내리려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알 것 같다. 다리는 건너는 곳이지 뛰어내리는 곳이 아님을. 기차가 강을 건너고는 눈물이 멈췄다.  

   

  이 소설은 주인공 독고가 살아낸 평범하지 않은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고스트닥터에게 대리수술을 맡기게 해 환자를 사망하게 한 병원장이 독고에게 큰 불행을 가져다 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가족과의 불화와 무심함과 오만함이 독고가 겪어야 했던 불행의 근원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고는 지난날의 잘못과 화해하려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난다. 염여사를 운명처럼 만나고, 편의점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며 소통의 본질을 깨달아가는 그에게 독자들은 격려를 아끼지 않을 것이다. 아울러, 메뉴도 다양하지 않고 불편한 일들이 자주 일어나는 불편한 편의점도 동네의 사랑방 역할을 해낼 수 있는 장소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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