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으로부터 배우다-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
우리는 살면서 단절감을 자주 경험하곤 한다. 밥그릇 하나를 보아도 그것이 내 앞에 있다는 것은 인지하면서, 그것이 나에게 어떤 경로를 통해 오게 되었는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마치 내가 가진 것들 모두가 내 앞에 어쩌다 존재하는 것이라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정신장애의 대부분이 이러한 단절감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이 단절감은 나와 물질, 나와 비물질, 나와 타인, 궁극적으로는 나와 자신을 고립시킨다.
이렇게 단절의 시기를 보낼 때, 우리는 우리 안의 창조성과도 멀어지게 된다. 끊임없는 공포감이나 불안감이 자신을 잠식하게 되면 우리는 공존이 아니라 세상 속에 홀로 버려졌다는 느낌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 고립감과 단절감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라는 착각을 일으킨다. 더불어 그런 자신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욕구를 부르게 된다. 그리고는 내가 '나'라는 환상 속에 고립되는 것이 문제의 시작이었음을 알게 된다.
이렇게 힘들고 각박한 세상 속에서 유대감은 사라지고 인간은 점점 더 고립된다. 하루하루 살아내기 바쁘다 보니 타인과 소통하는 것을 거부한다. 웬만한 얘기는 다 참견처럼 들리기도 한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정신적으로 고립되고 병적인 상태에 있을 때에는 밥집에서 다른 사람이 밥을 먹는 소리조차 너무 듣기 힘들었다. 그것은 인간과 자신에 대한 혐오로까지 번졌다.
우리가 건강한 창조성을 되찾기 위해서는 나로부터의 휴식이 필요하다. 한 정신과 의사가 말했다. 공황장애가 오는 이유는 해야 할 것도 많고, 하고자 하는 것도 많은데 미래는 불확실하기 때문이라고. 나는 그 말에 무척이나 공감한다. 더불어 현대의 많은 사람들이 힘들고 아픈 이유는 많은 것들로부터의 단절, 특히나 현재로부터의 단절 때문이다.
우리가 열심히 사는 것은 끊임없이 미래의 자신이 과거의 자신보다 나아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그것은 우리를 자꾸 넘어뜨린다. 우리는 이 삶 하나하나에서 연결감을 느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이 순간에 머물러 내 주변을 느껴야 한다. 그것이 창조성을 깨우는 첫걸음이다. 과거와 미래에 답은 없다. 신이 우리에게 주신 삶은 오직 '지금'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재 내 눈앞에 있는 것을 시작으로 나를 감싸는 공간을 느껴보면 연결감이 느껴진다. 물건 하나를 만들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거쳐갔다는 것이,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위안을 주는 것이다. 우리는 고립감에 휩싸일 때, 실체 하지 않는 공포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내 앞의 하나하나로부터 연결감을 느끼기 시작하면 세상 속의 경이로운 창조성에 감탄하게 된다.
또한 예술작품뿐에서만이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작은 볼펜 하나에 깃든 창조성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 연결감에 힘입어 우리 안에 있던 창조성이 깨어나게 된다. 힘들 때는 힘을 낼 필요가 없다. 그저 여기에 있는 자신을 인식하기만 하면 된다. 더 이상 과거나 미래를 생각하지 말고 하루만 사는 것이다. 오늘만 살다 보면 우리는 저절로 창조성의 연결통로로 기능할 수 있게 된다. 우리 안에서 창조성을 꺼내고 생성시키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으로부터의 연결감이 우리로 하여금 창조성을 발현하게 만든다. 그리고 지금, 짬을 내서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이나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로부터 자신을 억누르지 않아야 한다.
오른쪽은 현대미술가이자 개념미술가인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작품 '오크나무'이다. 물 한잔을 떠놓고 그것을 오크나무라고 칭했기에 우리는 이것이 도대체 무슨 말인지를 한참 생각해야 한다. 아래에는 자신이 인터뷰를 진행한 인터뷰지를 붙여놨다. 그러나 이 인터뷰지를 읽어보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더 헷갈리게만 된다.
나는 이 작품이 연결성을 말하고자 하는 것처럼 보였다. 작가는 순환을 말하고 있다. 생명의 순환. 우리는 언젠가 바다였을 것이다. 미생물이었을 것이고, 우리 몸 안의 물은 언젠가 나무였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집 안에 틀어박혀 있더라도 절대 혼자일 수가 없다. 왜냐면 생명의 순환 고리 안에서 우리의 존재는 따로 떨어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혼자라고 느끼는 순간 우리는 자연의 일부로서 제 기능을 하기 힘들게 된다.
혼자라는 두려움은 늘 우리를 좌절하게 만든다. 그러나 함께라는 연결성은 우리를 살아있게 한다. 고립이 아니라 함께한다는 즐거움. 그것이 우리를 다시 살게 한다. 그런 가운데서야 비로소 신은, 그가 경험하고자 하는 창조감을 우리를 통해 펼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