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함의 창조력

불안과 두려움에서 배우다- 스티브 잡스

by 바다별다락방



보통의 사람들에 비해 불안이나 우울이 다소 높은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이들을 '예민'이라는 이름으로 묶어서 표현하곤 하는데 정작 당사자들은 자신을 그저 예민하다고 치부하기에 어딘가 찝찝하다. 예민의 기준이모호한 데다 예민함의 범주가 넓기 때문에 그리도 쉽게 말하는 사람들이 불편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민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들은 종종 누군가에게 고민상담을 받거나 때로는 사주를 보러 가서도 이런 말을 빼놓지 않고 듣는다. "예민하네, 너무 예민해." "왜 이렇게 생각이 많니?"그럴수록 예민의 굴레에 묶인 이들은 자신이 외계인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나도 내가 예민하다는 걸 안다. 그런데 어쩌라는 거지?" 그것이 고민이어서 얘기를 꺼냈는데 되려 자신의 예민함만 확인하고 끝나버리는 것이다. 마음에는 해소되지 않은 감정이 쌓인다.


세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예민한 이들은 사람들의 반응 속에서 스스로 자기 자신의 가치를 점점 떨어뜨린다. 그리고 문제는 자신이 너무 예민하기 때문이라며 스스로를 옭아맨다. 그렇게 되면 점차 위축되기 시작하며, 삶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그 방향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더군다나 예민한 자신을 탓하며 사람들을 기피하기도 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예민한 기질은 예술성과 그 궤를 같이한다. 아주 예민한 두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한 사람은 예민함을 자신을 위축시키는 데 사용한다. 자신의 고유성을 없애버리고 타인에 맞추기 위해 노력한다. 남에게 싫은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밤낮으로 노력한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그에게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가져다주었다. 자신의 고유성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른 이는 자신의 예민함을 영리하게도 유일무이한 자신만의 창조성에 사용하기 시작했다. 나에게 예민하다고 말하고 있는 저 사람이 가지지 않은 것을 나는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 사람은 20년 후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어낸 유명 영화감독이 되었다. 예민하기에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까지 보던 그는 그만의 예민함을 창조성과 연결시켜 낸 것이다.


세상의 모든 기질은 그것을 어떤 방향으로 보는가에 달려있다. 습성 자체가 문제가 된다거나 실마리가 되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는 장점도 단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거기에 '있을' 뿐이다. 그것을 어떻게 가지고 갈지는 그 고유한 성향을 가진 자신의 몫이다. 결국 그것을 똑바로 보고자 하는 그 '시선의 방향'이 답인 것이다.


매우 예민하다고 잘 알려진 스티브잡스는 버림받았던 자신의 트라우마와 만성적인 불안, 우울증, 환공포증 등과 싸워야 했다. 그러나 좋은 양부모를 만나 그는 트라우마를 극복했고, 자신의 예민함을 창조력에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예민함과 상처를 남들이 해야 한다고 믿는 경로가 아닌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 곳에 사용했다. 그리고 세상을 바꿔놓았다.


우리는 예민함과 창조성이 별개라고 생각하곤 한다. 분명 세상 만물은 동전의 양면과 같을 것인데 우리는 늘 이것을 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예민함의 또 다른 말이 곧 창조성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야 하고, 혁신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회에서 예민한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것이 능력임을 망각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예민함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정작 자신들이 보지 못하는 어떤 것 때문에 걸려 넘어지기도 한다.


그러니 예민한 이들에게 당부하건대 아무나에게 자신의 예민함을 꺼내놓지 않는 편이 좋다. 상처만 받기 때문이다. 다만 그것을 자신의 창조성에 쏟아붓고, 그 창조성으로 소통할 필요가 있다. 그러다 보면 나의 예민함에 고개를 끄덕여줄 사람이 늘어날 것이고, 더불어 다른 성질의 예민함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독창적인 생각을 나누게 될 것이다. 자신의 예민함을 약점이라고 숨기지 말고 예민함을 발산할 그곳을 발견하기를 권한다. 예민함이 창조력으로 쓰일 날이 곧 올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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