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와 예술성

자기만의 공간에서 배우다- 로알드 달

by 바다별다락방


창조성의 발현을 위해서는 자신만의 루틴이 필요하다. 루틴이 없는 것이 루틴이라면 그것도 나름대로 예술가 자신만의 고유성이라고 볼 수 있다. 그와 더불어 좋아하는 장소를 찾는다면 그것 또한 새로운 루틴의 발견이다.


장소라는 개념은 개인의 상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우리는 3차원 세상에서의 특정 공간을 늘 똑같은 '그곳'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 그 개념을 한 꺼풀 벗겨내고 볼 때, 생각하는 그곳이 늘 알고 지내던 그곳이 아니게 될 때가 있다. 그때는 가끔 자신이 붕 떠서 다른 곳에 와 있나 하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매일 지내는 침실이 어느 날 새로운 공간같이 느껴진다. 매일 침대와 만나던 시간이 아니라, 모처럼 나른한 오전 10시에 머리맡에 차 한잔을 두고 침대에 앉아 있노라면 이곳은 영 내가 알던 그곳이 아니다. 그렇게 새로운 공간에 와있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더불어 가구의 배치만 살짝 바꿔도 내가 알던 그곳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늘 자신만의 시각으로 사물을 바라본다. 거기에 생각을 입히고, 상상을 더해 의미를 새롭게 부여한다. 동네에 한 카페가 있다고 해보자. 누군가에게 그곳은 실연의 아픔을 당한 기억이 묻어있는 공간이다. 그에게 그 공간은 두 번 다시 가고 싶지 않은 기분 나쁜 공간이 된다.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 그 공간은 자신의 창조성을 끊임없이 공급해 주는 원천이다.


그렇다면 그 카페는 어떤 곳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실은 아무 의미도 없다. 그저 그 카페는 한 사람의 관념의 공간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우리의 삶을 동네 카페라고 가정해 봤을 때, 우리는 우리의 관념으로 삶을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 자명해진다. 좋고 나쁨은 내가 규정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간에 대한 관념도 스스로 규정한다. 예술가에게 있어 공간은 끊임없는 '창조의 곳간'이다. 예술가 자신이 그것에 의미를 부여한다면 창조성은 어디에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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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알드 달의 작업공간 출처: Support the Guardian


개인적으로 매우 사랑하는 예술가인 로알드 달은 자기만의 작은 책상과 안락의자를 그의 창조 공간으로 삼았다. 작은 오두막 속 그곳이 자신을 어린 시절로 돌아가게 하는 공간이자, 향유의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저서들을 그 공간 속에서 집필했다. 그에게 한 평짜리 공간은 우주였고, 세상이었다. 그 공간에서 그는 세계의 어린이들이 끊임없이 읽고 상상력을 펼칠 수 있도록 돕는 책들을 펴냈다.


우리는 늘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특정한 공간은 자신이 부여한 의미에 의해 가치가 매겨진다. 또 그에 따라 공간은 끊임없이 재창조된다. 어떤 이에게는 그것이 한 뼘 짜리 책상 위일 수도 있고, 침대 위일 수도, 미니어처 집의 작은 공간이나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상상 속의 공간일 수도 있다.


개인이 의미를 부여한 공간은 산파가 되어 예술가를 탄생시키기도, 예술가를 키워내기도 한다. 그것이 어떤 형태든, 우리는 장소와 예술성이 가지는 연결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예술가에게 장소란 자신의 언어로 새로 쓰는 곳이며, 자신의 기호를 타인에게 선보이는 곳이다. 또 무궁무진한 꿈을 발현시키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 세상에 온 예술가라면 누구나 자신만의 공간으로 자기자신을 초대할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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