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멧별 Apr 17. 2022

연의 연

Study of folk remedies for fracture

[Fiction]아무도 모른다. 내가 세상에 알려진 그 비극의 주인공이란 것을. 화목했던 한 가정이 파괴되고 홀로 살아남은 아이. 그날 입은 상처를 평생 안고 사는 천애의 고아. 그것이 나다. 가족을 잃은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나는 다시 폭력에 짓밟힌다. 그놈이 나에게 저지른 만행을 나는 뼈에 새기고 있다. 불편한 양쪽 다리를 느낄 때 나는 그놈을 생각한다. 그리고, 악연의 끝은 복수가 되어야 한다고 되뇌며 지금 그놈을 찾아가고 있다.


아버지와의 추억은 아주 짧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때 아버지는 어린 나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리 집안사람 중 한 명이 외국에서 얼어 죽었다는 무서운 내용이었다. 그 밤을 잊을 수가 없다. 그 밤이 우리 가족의 마지막 밤이었기 때문이다. 모두 잠든 새벽, 먹구름 같이 검은 것 형제자매들을 차례로 죽이는 모습과 사력을 다해 그것을 막아서는 부모님까지 쓰러뜨리던 모습을 나는 똑똑히 봤다. 도망치던 나는 2층에서 아래로 떨어졌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왼쪽 다리가 부러져 정신을 잃고 말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여러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떴다. 다리에는 칠산 조기 껍질을 부목 삼아 오색 당사가 감겨 있었다.

   

내가 깨어난 곳은 1층 주인집이었다. 2층 세입자 가족이 몰살당하고, 가까스로 도망친 아이 하나가 2층에서 떨어져 불구가 된 사건을 접한다면 집주인들은 십중팔구 집값이 떨어질 것을 걱정할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좀 특별했다. 특별하다는 것은 예를 들자면 이렇다. 값나가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집구석에 희한하게 부부간의 금슬은 좋아서 사시사철 부부가 딱 붙어서 잠을 잔다거나, 그 결과 거느린 자식이 족히 서른 명은 되어버려 먹을 것 입을 것이 턱없이 모자라는데도 바깥양반 성품은 더없이 후덕하다거나 하는 따위의 일들이다. 배고픔과 부대낌에 끼니마다 밤마다 아우성이니 세 들어 살던 우리도 같이 힘이 들긴 마찬가지였다.

     

그런 집주인이 나를 거두어 며칠을 보살피니 부러진 다리도 회복되고 트라우마에서도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렇게 은혜를 입고 나는 우리 집안사람들이 터를 잡고 산다는 고향으로 길을 떠난다. 거기서 만난 집안 어른에게 그간의 일을 고했다. 내 부모형제의 변고를 안타까워하면서도 집주인의 선행에 감복한 어른은 다시 돌아가 보답하라며 박씨를 하나 내주었다. 이듬해 나는 그 박씨를 들고 다시 그 집을 찾다. 그리고 집주인에게 요긴하게 쓰라며 그 박씨를 선물했다. 박씨에는 '보은표'라는 브랜드도 찍혀 있었다. 박을 엄청나게 잘 키웠던지 집주인은 그걸로 큰 부자가 되었다.


그리고 얼마 뒤 는 그놈을 만난다. 세상도 좁아서 그놈은 착한 집주인의 형이었다. 그는 나를 납치하여 멀쩡한 내 오른쪽 다리를 부러뜨렸다. 그리고는 천연덕스럽게 자개 껍질로 다리를 묶어 방구석에 처박아 놓았다. 열흘이 지났을까 겨우 몸을 추스르고 그곳을 탈출한 나는 고향으로 돌아갔다. 자초지종을 들은 집안 어른들은 크게 노하며 이번에는 '보수표'라는 브랜드의 박씨를 내주었다. 나는 지금 흉중에 그것을 품고 그놈에게 가고 있다.


나를 만난 그놈은 첫마디로 "박씨 가져왔느냐?"라고 물어본다. 내가 박씨를 건네자 브랜드도 확인해 보지 않고 동생처럼 박을 길러 부자가 되겠다며 그것을 심는다. 박은 무럭무럭 자라서 드디어 박을 타는 날, 박들이 열리자 복수가 시작된다. 그놈이 그렇게 망하는 꼴을 나는 봤다. 하지만 또 맘씨 착한 동생이 그를 거두어 살게 해주었다고 한다.  


모든 것이 끝난 지금 나는 아버지의 그 옛날이야기를 떠올리며 가족을 그리워한다. 집안 할아버지 뻘 되는 분의 이야기. 그 할아버지는 날씨 좋은 나라에서 한 달 살기가 꿈이었다. 그렇게 방문한 어떤 나라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겨울이 다가오자 할아버지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여비를 마련하기 위해 한 택배회사에 취직을 했는데 그때 택배를 부른 그 남자를 만났다고 한다. 그는 금박으로 치장한 옷을 입고 슬픈 눈을 하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뭘 부치실 건지 물어보니 그는 자기 옷을 한 자락 잘라주며 '이걸 저기 가난한 집에 가져다주세요. 택배비는 착불로.'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총알처럼 택배를 배송했지만 그 가난한 집에 택배요금이 있을 턱이 없었다. 그렇게 수차례의 부당 노동행위와 대납에 시달리던 할아버지는 결국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추운 겨울날 그 남자 집 앞에서 동사하고 말았다고 한다.


긴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사람들은 할아버지의 배달에 대한 투철한 사명감을 높이 사고 있다고 한다. 어떤 나라에서는 우체국에 할아버지의 모습이 상징처럼 걸려있다. 또 할아버지의 총알 같은 배송을 기리기 위해 야구단 이름에 우리 집안 성씨를 넣어 부르고 있다. 그 나라 고위 관료들은 중요한 회의가 있을 때면 할아버지의 모습을 본 딴 옷을 입고 모인다.


왼쪽 다리는 그나마 어느 정도 쓸 수 있지만, 오른쪽 다리는 재활이 어려울 정도로 망가졌다. 골절상의 응급처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나를 통해 세상 사람들이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연(燕)의 연(緣)은 이렇듯 기구했지만 지구를 구하는 다섯 명의 특공대에서 막내로 근무하고 있는 지금은 꽤 즐겁다. 철대로  필리핀을 거쳐 호주까지 오가는 삶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 아픔을 삼키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삼키는 일은 내 이름이기도 하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그해 여름, 올림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