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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멧별 Sep 24. 2022

서랍 정리

작가의 서랍에 담긴 조각들로 만든 누비이불

"부모님의 시선으로 어린 나를 보다."

부모님 생각, 자식들 생각을 하다가 내가 애들이 크는 시기를 봤던 기억과 그때의 느낌과, 내가 그렇게 어렸을 때 우리 부모님은 나를 보고 어떤 느낌을 가졌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적어 놓았습니다.


"아빠와 축구를 하고 싶었던 수많은 날들과 회사에 가기 싫었던 수많은 날들은 대부분 일치할 수 없었다."

나는 그 수많은 엇갈림 속에서 인생을 허비한 것일까? 내가 생계형 인간이라는 핑계를 대며.


"웃음을 읽어버린 나에게 : 웃기고 즐거운 센스 넘치는 내 인생"

어느 날 무의식 중에 거울에 비친 내 표정을 본 후, 웃기고, 항상 웃고, 농담 잘하는 사람으로 살았던 스물몇 해가 기억나서 적어 놓은 글인 듯합니다.


"차사고 :  차종에 따라 사람도 다르게 취급되는 느낌"

가장 흔한 국산 브랜드인 내 차와 어느 외제차와 사고가 났는데 차량 가격과 견적 같은 것들이 비교되면서 묘하게 달리 취급되는 느낌을 받은 날 남겼습니다.


"단 하나뿐인 '나'라는 이데올로기"

그 이데올로기를 신봉하며 여기까지 왔는데, 깃발은 아직 나부끼건만 지난 노정이 잘 생각나지 않습니다. 기억이야 없겠냐만은 생각이 잘 나지 않습니다. 나라는 이데올로기는 실험적이었고, 결국 실패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개미 애벌레는 개미가 된다. 나비 애벌레는 나비가 된다. 그렇게 어린 나는 늙은 나가 되었다."

개미처럼, 나비처럼 알을 낳고 애벌레를 만들고 곤충같이 담백한 껍데기만 남겼습니다.


"믿을 만한 딱 한 사람, 결국 내 젊은 날의 희망대로 그녀만 남았다."

나는 대부분의 약속은 지키지 못하고, 원칙적인 몇 가지밖에 실천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The old man under the sea"

노인이 잠긴 바다. 어디 바닷가에서 긁적인 것 같습니다.


"출근길, 김광석이 없다는 것이 갑자기 슬퍼졌다."

나는 그가 살아생전 즐거웠는지, 우울했는지, 행복했는지, 슬펐는지 정확히 알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이제 훨씬 나이가 들어버린 지금, 삼십 대에 요절한 그가 더 불쌍한 것인지, 이십 년을 이렇게 더 살고 있는 내가 더 불쌍한 것인지, 그런 것들이 문득문득 생각납니다.


"사랑이란 기억보다 더 슬퍼 : 여주가 우는데 나도 눈물이..."

친구가 이 노래가 좋아졌다고 해서 영화를 봤습니다. 울 수 있을 때 울어 놓는 것도 좋은 것 같습니다.


"아들아 효도가 웬 말이냐."

모든 물질적인 것들을 의도적으로 제외한 듯한, 소위 물려줄 재산이라는 것을 생각하니, 저런 말이 떠올랐습니다. 물질만능주의를 전제로 한 생각입니다.


"권태 없는 나"

내 이름을 네이버에 치면 인간의 권태에 대한 모든 정보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한 날 그걸 보고 이렇게 적어 놓은 듯합니다.


"그래도, 고향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부산에서 태어나고, 경기도에 살면서, 서울에서 일을 합니다. 나는 고향을 물으면 부산이라고 대답하지만 사실 부산에는 집도, 가족도 없습니다. 경기도에서 태어나고 자란 자식들은 여기가 고향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서울이라는 곳은 아주 먼 곳에 있는데...


"이만큼만 이룬다면 소원이 없었는데..."

옛날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때는 이 정도만 산다면 만족할 거라 생각했는데, 과욕을 부리지 않고, 남에게 손 벌리지 않고, 자족하며 살겠다는 생각을 버린 적은 없는데, 왜 이렇게 삶이 힘들고 치욕스러운지 생각해 봤습니다. 나름의 결론은 '비교'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그것도, 당하는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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