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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멧별 Jul 01. 2022

유부초밥

군에 간 아들에게 아버지가 말하다.

너는 유부초밥을 좋아했다. 너를 화천에 있는 훈련소에 남기고 올 때 우리가 이렇게 긴 이별을 경험한 적이 있었나 생각해 봤다. 입대 전날 밤 나는 직접 슈퍼마켓에서 유부초밥 세트를 샀다. 입대 날 아침에 뭘 먹여 보내나 생각하다가 그것이 떠올랐다.


2008년 우리 가족은 일본 여행을 갔다. 결혼한 지 10년이 되었다고 첫 해외여행을 가기로 맘먹은 것이다. 나름 목적도 뚜렷하게 세웠다. 아시모라는 로봇을 실물 영접하고, 토토로 등으로 우리 가족과 친해진 미야자키 하야오의 지브리 박물관도 방문할 계획을 세웠다. 좁디좁은 비즈니스호텔에 묵어야 하는 궁박함 속에서도 너는 즐거워해 줬으며, 나도 기뻤다. 조식으로 차려져 있던 두터운 사각형 유부초밥을 우리는 맛있게 먹었다. 1인용으로 소포장된 미소된장도 뜨거운 물에 풀어서 먹었다. 너는 어렸고 는 젊었다.


가끔은 내가 너희들에게  유부초밥을 싸준 적도 있었다. 그냥 흔한 것인데 내가 만들어서 특별히 맛있다는 너희들의 반응이 사랑스러웠다. 최근에는 너도 직접 유부초밥을 싸 먹더구나. 작은 일에도  키운 보람이 느껴졌다. 다음에는 네가 어떤 여자를 위해 유초밥을 싸는 날도 기대해 본다.


그날 아침 그런 유부초밥을 먹고 너를 태워 가서 훈련소에 넣었다. 다음날 냉장고에서 딱딱하게 굳어진 네가 남긴 유부초밥을 먹으며 너를 그리워했다. 눈물이 나려고도 했다. 가야 하는 걸 알지만 가야 함에도 안 가는 놈들이 활개 치는 세상에 부아가 치밀었다. 그러기에는 이제 좀 어색할 나이임에도. 비가 오는 오늘 아침에 너는 또 어떤 밥을 먹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맞는지 틀리는지는 모르겠지만 인터넷에서 네가 먹을 배식 차림표까지 알 수 있다. 이 좋은 세상이 오히려 '이건 잘 안 먹는데, 이건 못 먹는데, 좋아하는 게 나오네' 하는 자잘한 생각까지 하게 만든다. 좋아진 세상은 복잡해서 어렵다.


네가 태어나던 날이 아직 생생하다. 울고 웃으며, 종알거리며, 가는 다리로 태권도 앞차기를 내지르며, 가는 팔로 야구공을 던지며, 여린 손가락으로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며 나를 행복하게 했던 너였다.

세상이 아무리 좋아져도 입대한 아들은 그립다.

그날 점심을 먹으며 남들 하는 거 잘 따라서 물 흐르듯이 하면 된다는 말을 했는데 바보 같은 말이었다. 내가 대신해줄 수도 없는 일에 괜한 오지랖이었다. 너의 군대생활은 네가 알아서 하면 되는 것인데. 호밀밭을 걷는  인생에 나는 항상 휘파람을 불며 주변을 맴돌면 되는 것인데 말이다. 아프지 말고 밥 잘 먹고 잘 지내길 기도한다.


추신 : 한 때 나를 슈퍼맨으로 추앙해줘서 고마웠다. 이제 슈퍼맨 망토와 팬티를 너에게 넘긴다. 지구를 구하거나, 한 여자를 지키거나, 한 아이를 사랑해야 할 때 요긴하게 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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