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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멧별 May 19. 2021

아버지의 이름으로(1)

아들의 출가

큰아들이 입대한다. 이렇게 오랜 시간 집을 떠나게 되는 건 처음이다. 동생이 태어났을 때 집을 떠나 할머니 댁에서 한동안 지낸 적은 있다. 초등학교 스카우트 캠핑을 하려고 하룻밤 집을 비운 적도 있다. 여름방학 때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를 간 적있다. 국제학교 축구부에서 중국으로 원정경기도 갔었고, 밴드부에서 미국으로 원정대회도 갔었다. 그런 훈련 과정을 거쳐 이제는 진짜 훈련소로 간다.  18개월이라는 초유의 긴 시간 동안 분단 상황의 평화 유지를 위해 내 아들이 조국에 불려 간다.


작은아들은 신체검사에서 1급을 받아왔다. 그 친구도 내년에 휴학하고 형을 따라 입대할 것이다. 이런 일을 마주하면서 개인적으로 어떤 결심 같은 것을 게 되었다. 군 복무와 관련하여 꼼수를 쓰는 자들과는 불가피하게 사회생활을 같이 할 수는 있겠지만 깊은 인간관계는 절대 맺지 않겠다는 다짐이 그것이다. 윌리엄 텔두 번째 화살 같은 것이라고 보면 되겠다. 아마 자기 배 아파 낳고 기른 아내는, 더 강리라 확신한다.   


스무 살 무렵에 누가 꿈이 뭐냐고 물으면 나는 '아버지'라고 답했다. 꿈을 이룬 후에는 '좋은'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싶은 새로운 꿈을 가졌다. 그러나, 너무나 명백한 물질만능 세상이라 그 꿈을 이루려면 불가능에 가까운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혹은 물질이 없어도 자식들이 나를 그렇게 인정해 준다면 좋겠는데, 실은 그냥 하는 데까지 해보는 수밖에 없다.


물질만능은 내가 아버지로부터 들은 옛날이야기 속에도 등장한다. 피죽을 끓여먹는 가난한 집에서 어머니가 아버지 제사만은 밥을 지어야 한다 보리쌀 한 홉을 감춰놓는다. 애들은 굶고 있는데 보리쌀을 감춰놓는 어머니가 아들은 불만이다. 드디어 제삿날, 보리밥의 찰기가 부족해서 꽂아놓은 숟가락이 자꾸 쓰러지자 아들이 숟가락을 집어던지며 한마디 한다. "물려준 것도 없으면서 밥투정해요?" 찰리 채플린의 말처럼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인데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아들이 가난한 아버지를 인정해 주는 이야기도 다. 다리 밑에서 거적 천막을 치고 사는 거지 부자(父子)가 있었다. 하루는 다리 위로 소방차가 요란스럽게 지나갔다. 아버지가 실없이 한마디 던진다. "우리는 집에 불 날 걱정은 없어서 좋아. 그렇지?" 그러자 아들이 기특한 대답을 한다. "이게 다 아버지 덕분이죠." 나이런 방향으로 흐르기를 기대하는 편이다.  


영화에도 아버지와 아들이 자주 등장한다. '스타워즈' 에피소드5 '제국의 역습'에서 다스 베이더를 전 세계의 아버지로 등극시킨 한마디 "I am your father." 여기서 아들 루크 스카이워커는 그 유명한 대사로 아버지 아나킨 스카이워커를 부정한다. "Noooooo." 조지 루카스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신봉하는가? 에피소드7 '깨어난 포스'에서는 한 솔로가 아들 카일로 렌의 광선검에 죽임을 당한다.


 '글레디에이터'에서도 두 명의 아버지가 등장하는데 아들 코모두스에게 죽임을 당하는 로마의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코모두스에 의해 아들이 살해당하는 로마의 장군 막시무스가 그들이다. 막시무스 역시 코모두스에게 살해당하는데 코모두스 살인 동기는 '권력욕'이다. '공공의 적'에 등장하는 존속살인은 '물욕'에 기인한.


욕심은 너무도 평범하게 우리 주변에 널려 있는 감정이지만 과하거나 삐뚤어질 경우 문제를 낳는다. 아버지와 아들도 감정을 제대로 나누지 않으면 예와 같이 극단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평소에 올바른 감정 공유와 조절이 필요하다. 가족이니까 아무래도 괜찮다고 여겨서는 안 되는 것이다. 실제 주변에 의절하거나 연락하지 않는 부자관계는 흔하다. 결국 남는 건 모두의 후회라는 것이 지론이기도 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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