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아들이 갈등하는 영화는 또 있다. '챨리와 초콜릿 공장'에서 윌리 웡커의 아버지는 치과의사다. 아들의 치아 보건을 위해 아버지는 설탕이 든 음식을 죄악시한다. 그 반항심으로 윌리 웡커는 오랫동안 아버지를 떠나 초콜릿 전문가가 된다. '과잉보호'가 부자간을 갈라놓았다. 착한 챨리의 설득으로 아버지를 찾아간 윌리 웡카, 아버지는 아들의 치열만 보고도 금세 아들을 알아본다. 떠난다고 사라지는 건 아닌가 보다. 이가 물보다 딱딱하다.
'사도'에서 영조는 자신이 정통성이라는 굴레를 쓰고 고통받았던 트라우마 때문에 아들이 완벽한 계승자이기를 바랐다. 그런 영조의 '열등감'은 아들에게 사랑 대신 질책을 주고, 아들은 아들대로 원망만 키워가게 된다. 우리가 잘 알듯이 이 사건은 결국 영조가 아들 '사도세자'를 죽이는 비극으로 끝난다. '영원한 제국'에서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 씨에 집착하고, 할아버지가 아버지 죽음을 슬퍼했다는 증거로 올빼미 시를 찾으려 하는 것도 결국 부자간의 갈등이 가족 전체로 번진 것이다.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아내를 잃은 후 뭔가 마음이 삐딱해져 버린 폰 트랍 대령은 아이들에게 노래를 금지시키고 엄격함으로 일관된 훈육을 한다. 남자 친구가 생긴 큰 딸, 사춘기의 아들은 부모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지만 홀로 남은 아버지는 그걸 모른다. 다행히 마리아라는 구세구가 나타나 아버지와 일곱 명의 아이들을 모두 구원해 적어도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아버지가 너무 큰 일을 하느라 자식들이 고생을 하는 경우도 있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보면 정약용은 비록 자신이 나라의 죄인이 되었지만 아들들은 좌절하지 않고 굳건하기를 바란다는 마음을 글로 전했다. '백범일지'도 두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로 시작한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자식의 안녕을 못 챙기는 마음이 참 무거웠을 것 같다. '칼의 노래'에는 이순신 장군의 아들 이면이 정유재란 때 고향 아산에서 왜군에게 보복살인을 당하는 내용이 나온다. 잡혀온 어린 왜병을 베면서 아들을 떠올리는 장면이 있는데 그것이 복수인지 그냥 연상인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필부로서 의식주 해결과 학업 지원의 기본적인 역할만 수행할 수 있어도 다행인 나 같은 사람들도 많다. '빌리 엘리엇'의 아버지도 평범한 광부로 아내도 잃고 파업으로 삶도 피폐해져 가고 있었다. 구체적인 목표도 없이 아들이니까 권투를 가르친다는 설정에서 그 꽉 막힌 상황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계기로 빌리의 꿈을 위해 헌신하기로 맘먹은 아버지는 다시 강한 사람이 되었다. '괴물'에서 박강두의 아버지 박희봉은 아들의 모자람 때문에 총알이 없어 죽게 되지만 그 순간에도 자식들은 위험하니 멀리 가라고 손짓을 한다. 무기력하지만 강한 아버지다.
'국제시장'에서 주인공 윤덕수는 한국 현대사의 슬픈 시간을 관통하며 살아남는다. 한국전쟁 때 흥남부두에서 아버지와 헤어진 그는 피난민 생활, 베트남 전쟁, 독일 광부 파견 등 굴곡진 인생을 살았지만 무너지지 않고 끝까지 아버지로서 가족을 지켜냈다. 나는 그 영화의 마지막 장면 윤덕수의 독백을 기억한다.
"아부지, 내 약속 잘 지킸지예? 막순이도 찾았고예. 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
처음으로 나약한 모습을 보이며 울고 있는 그는 어린이가 되어 있다. 그리고 그때 그 아버지를 만난다. 울면서 아빠 품에 안긴 어린 윤덕수는 아빠에게 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나는 어떤 아버지일까? 돌아보면 해 준 것도 별로 없고, 내다보면 해줄 것도 별로 없다. 좋은 아버지는 요원해 보인다. 나 혼자라면 나의 이런 평범함이 초라하게 느껴질 이유가 없는데 '아버지의 이름으로'는 채워도 채워도 부족함이 느껴진다. 그런 아들이 군에 간다. 아들이 무사히 인생의 또 한 과정을 지나가면 좋겠다. 나도 다시 만날 날, 뭔가 달라진 아버지가 되어 있고 싶다. 아직 떠나지도 않은 아들이 벌써 보고 싶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