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비는 평소 계획적이다못해 다소 짠내가 난다. 그런 내가어느 날 문득 몇 번의 손가락질로 비행기표를 두 장 사버렸다. 유류할증료 및 제세공과금으로 자그마치 24,000원을 지불했다.아름다운 사람들 마일리지도 20,000마일이나 반납했다. 뜨고 내리는데 40분밖에 안 걸리는김포에서 김해까지의여정에 그 비용을 지불한 것이다.심지어 양산에 머무르는 1박 2일(나도 모르게 크게 외치며 팔을 앞으로 뻗어 V자를 그린다.) 동안 공항 주차비, 교통비, 각종 부대비용으로 120만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썼다. 난 망했다는 생각도 잠깐 들었다.
투명 화장실 아님
이런 항공권 충동구매 사건이 발생한 이유는 범국민효실천프로젝트 때문이다. 다른 말로 '어버이날'이라고도 불리는 이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보겠다는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 프로젝트는 현존 어떤 네트워크 판매망보다도 강력한 생물학적 피라미드 조직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또, 효(孝)라는 행동규범을 완벽하게 실천한 정신적 지주로 '심청'이라는 인물을 앞세우고 있다. 그녀는 행동하는 리더로서 '심해 프리 다이빙'만으로 삼백 석 규모의 수입쌀(원산지:청나라)을 조달한 놀라운 사례를 남겼다. 가히 다이아몬드급 회원이라 할 만하다.
항간에 이 프로젝트의 뒷배에 정치권이 있다는 음모론이 있다. 화훼 마피아와 창고업(正官庄) 조직을 앞세워 비자금을 조달하는 창구로 이용된다는 말인데 좀 신빙성이 없다. 왜냐면 내가 그 사람들이라면 이렇게 직계존속만을 대상으로 영업하지 않고, 방계혈족의 집안어르신들을 모두 끌어내 오촌당숙의 날, 외숙모의 날, 삼촌의 날 등등도 분명 만들었을 것 같다. 물론 그 이유가 '날'계열 조직과 '데이'계열 조직 간에 역할분담이 잘 되어 있어서라는 주장도 있다.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 빼빼로데이, 삼겹살데이 등도 모두 한통속이라는 것이다. 그게 사실이라면 이 나라에 더 이상 미래는 없다는 생각이다. 부디 사실이 아니길.
올해 이렇게 열성적인 참여의사가 생긴 건 또 다른 이유가 있다. 6년의 해외생활로 공백기가 길었다. 귀국 후 처음 맞이하는 어버이날에 멀리 산다는 이유로 KB국민은행 계좌이체 찬스를 쓸 수는 없었다. 좋은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한 개의 돌로 두 마리 새를 잡는다는 일석이조, 한 번 쳐서 두 장의 피를 획득한다는 일타쌍피, 톰 베린저의 그 유명한 영화 대사 'One shot two kill'처럼 양가 모두 양산에 계시니 이 또한 좋지 아니한가.
KB국민은행 제공
도착하자마자 처제가 추천하는 식당에서 장인어른과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동생이 추천한 식당 배달로 부모님과 저녁을 먹었다. 공교롭게도 둘 다 횟집이었다. '회를 주식으로 하다.'라는 말을 떠올리며, '회를 배 터지게 먹다.'라는 말을 몸소 체험했다. 그래도 맛있게들 드시니 좋았다. 신용카드를 박박 긁어대며 자본주의형 효 실천의 실습도 했다. 매우 유익했다.
양산은 누구의 고향도 아니다. 나도, 아내도, 아버지도, 어머니도, 장인어른도,회를 좋아하는 동생도, 처제도, 그 누구의 고향도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거기에 고향집처럼 모여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현대판 유목민이다. 그 고된 이동의 과정에서도 이고 지고 다니며 못 버리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추억이라는 이름의 짐이다. 주로 자식들에 관한 것인데 이번에 아내는 '국민학교' 상장들을 발견했고, 나는 유치원 졸업앨범을 발견했다. 그 앨범 속에서 전날 통화했던 대학 동창도 만났고, 먼저 세상을 뜬 고교 동창도 만났다.
굳이 라이온 킹 OST '돌고도는 (물레방아) 인생'을 부르지 않아도 된다. 백발의 부모님들이 지나간 자리에 지금 반백의 내가 서 있고, 반백의 내가 지나온 자리에 검은 머리의 자식들이 서 있다. 검은 머리 시절 내가 남긴 전리품도 발견되었다.(사진 참조) 그렇게 짧은 여행은 긴 여운을 남겼다. 충동적인 결정이 때론 큰 행복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배웠다. 세상은 아직 배울 것들로 가득하다. 그래서 또 호기심으로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공개된 추악한 과거...
[사진 설명] 약 25년 전 그 날, 저 병에는 전통주의 하나인 진도홍주가 담겨 있었다. 객기 충만한 8명의 친구들은 빈약한 안주 두 개를 앞에 놓고 독주 중에 독주인 진도홍주를 들이부었다. 그날 친구 K는 연탄배달용 리어카에 실려 어디론가 보내졌고, 저 병과 잔은 다음날 아침 내 가방 안에서 텅 빈 채로 발견되었다. 남은 술을 봉해서 가져온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결정적 증거는 가방에서 함께 발견된 붉게 물든 내 전공서적과 노트였다. 술집을 나온 후 약 두 시간 동안의 행보에 대한 진술은 모두 8개인데 각 진술 간에 일관성, 개연성 등은 전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