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떨어져 역기러기로 사는 요즘, 문득 아이들 생각이 날 때 그들의 방에 들어가 본다. 책상이 있고 침대가 있고 책장도 있고 옷장도 있다. 각자의 관심과 취미라고 할 것들도 여기저기 놓여 있다. 연예인이나 운동선수의 브로마이드, 운동 기구, 악기 등이다. 그것들을 쓰다듬으며 마음의 대화를 시도한다. 그러나 쉽지 않다. 멍청한 나는 그런 것들을 놓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만큼 그들과 시간을 가지지 못했던 것이다. 그들이 그것들과 함께 있는 모습을 전혀 못 본 것은 아니다. 그래도 그들, 나, 그것들을 연결하는 삼각형을 완성하기 어렵다. 공명을 위해 일부러 한쪽 꼭지를 단절해 놓은 타악기 트라이앵글 같다.
한 귀퉁이에 레고 박스들이 쌓여있다. 스타워즈 시리즈, 바이오니클 시리즈 등 여러 테마의 것들이 뒤섞여 있다. 삼단 서랍장 하나는 예전의 그때와 똑같은 모양으로 벌크 브릭들을 가득 담고 한편에 서 있다. 저렇게 더 이상 만져지지 않고 뒷전으로 물러난 지가 얼마나 되었는지 기억도 가물하다. 첫째가 배틀로봇에 심취했을 때 TV에 나오는 로봇들을 레고 브릭으로 흉내 내어 만들었던 적이 한참 있었다. 그리곤 별 기억이 없다.
수납장을 열면 오래된 물총, 야구 글러브, 스케이트보드 등이 눈에 띈다. 둘째의 애용품들이었는데 그것들을 들고 신나게 놀러 다니던 모습이 떠오른다. 얼마 전 어린애가 있는 다른 집에 그것들을 물려주면 어떠냐는 제안을 했을 때 아직 맘의 준비가 안 되었다고 대답한 적이 있다. 그래서 천천히 생각해 보라고 했는데 그러고 또 1년이 지난 것 같다. 회사일은 그렇게 늘어지게 안 하면서 이런 논의는 왜 긴 시간을 흘려보내 버리는 걸까?
영화 '토이 스토리 Toy Story' 시리즈가 있다. 주인공 소년 앤디Andy가 어릴 때부터 대학생 때까지 등장한다. 또 그의 장난감 카우보이 우디Woody, 카우걸 제시Jessie(외동딸인가?), 우리 집에도 두 개나 있었던 우주인 버즈 라이트이어Buzz Lightyear*가 등장한다. 4편까지 나왔는데 나는 3편까지 봤다. 3편 마지막에 앤디가 대학생이 되어 장난감들을 떠나면서 남긴 말 "고마워 친구들.Thanks guys."에 우디가 건넨 말 "잘 가, 파트너. So long, Partner"가 기억에 남는다. 내 아들들도 작별을 고하고 떠났다.
*닐 암스트롱에 이어 달에 착륙한 실제 미국 우주인 버즈 올드린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영화 '퍼스트 맨' 참조)
그래서 제시는 우디와 버즈 중 누구의 여인이 된단 말인가?
아이들과 즐겨 듣던 'Puff the magic dragon'이란 노래가 있다. 앤디 대신에 거기엔 어린 제키 페이퍼 Little Jackie Paper가 나오는데 펍Puff라는 이름의 드래건 인형과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어린 시절을 보낸다. 하지만 어느 날다 커버린 재키가 더 이상 펍을 찾아오지 않자 펍은 슬픔에 고개 숙인 채 비늘이 다 떨어진 채로 동굴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이후 100일 동안 마늘과 쑥만 먹고 용녀(龍女)가 되어 다시 나와 재키와 결혼했다는 얘기는 아직 전해진 바 없다.
벽에 세워진 오랜 괘종시계처럼 잠잠하게 자리 잡은레고를 뒤로하고 아이들은 떠나갔다. 나는 그 레고들을 만지고 있다. 그렇게 남겨진 것들의 슬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빠르고 느닷없이 세월은 가버렸다. 아이들이 커가는 신호를 항상 보내고 있었음에도 난 그들이 언젠가 앤디나 재키 페이퍼처럼 될 것이라는 예측을 못 했다. 이제 막상 그들이 물리적으로 내 곁을 떠난 후에야, 지난 일을 회고할 뿐이다. 앞으로도 그들과 꽤 많은 이별을 해야 할 것이다. 군대도 보내고, 장가도 보내고, 일을 따라 다른 지역으로도 보내고. 그리고 내가 그들을 떠나는 순간도 올 것이다. 별로 해준 것 없어도 건강하게 자라준 아이들에게 고맙다. 예전에 함께 나누던 인사를 멀리 한반도에 띄워 보낸다.
"To infinity and beyond! May the Force be with you. Guys."
Toy Story 3 : "Amigo o Enemigo?" "Jessie, Señorita." 압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