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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멧별 Oct 09. 2022

인생은 아름다워. 안 그래?

죽는 건 두렵지 않아.

한적하다 못해 스산하기까지 한 '문산' 소재 극장, 저녁 여덟 시 반 타임을, 통신사 할인까지 적용하여 기분 좋게 예매했다. 이런 영화가 나왔다는 소식을 접했고, 아내의 첫사랑을 찾는 여행에 남편이 동행하는 내용이라고 들었다. 아내도 그 정도만 알고 있는 듯했다. 사전에 정보를 찾고, 리뷰를 읽고 하는 것보다 그냥 모르는 채 가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무작정 스크린 앞에 앉았다.


"한국 영화 중에 이런 종류의 영화가 있었어?"

내가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잠긴 목소리로 아내에게 던진 질문이다.

'Yesterday(예스터데이)'가 떠오르기도 하고, 'Mamma Mia(맘마미아)' 같기도 하고, 'La La Land(라라랜드)'인가 싶기도 하다가, 'Muthu(춤추는 무뚜)' 느낌도 나는 가운데, 내내 눈물을 꾹 참고 영화를 봤다.


영화가 시작되고, 한참 팍팍했던 시절의 우리 내외처럼 주인공 부부의 답답한 대화가 오가다가 갑자기 이문세의 노래가 흘러나오면서 울컥하는 고비가 찾아왔다. 30여 년 전으로 돌아간 주인공들과 노래하고 춤추는 사람들.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으로서 내가 마치 거기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벌써 아들 둘이 모두 군 복무 중이다.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 기르는 일은 많은 사람들의 일상이지만, 그 안에 담긴 감상들은 다들 조금씩 다르다. 톨스토이의 인생관처럼 인생은 희비의 비빔밥 같은 것이다. 기쁘건 슬프건, 달건 쓰건 우리는 씹고 삼켜야 한다. 먹다 보면 좋아하는 재료와 싫어하는 재료의 구분이 없어지고 궁극의 목적인 배채워지는 것이다. 인생은 그렇게 나아간다.


인생이 그렇게 가는데 가장 안타까운 것은 부지불식 간에 스쳐가는 시간의 속도인 것 같다. 바로 어제 아이들과 캐치볼을 하고 수납장에 넣어둔 것 같은 야구 글러브를 발견한다. 강민호 선수의 싸인은 그대로 글러브 남아 있는데 그것이 십 년도 더 된 일이고, 이제 야구공을 주고받을 아이들은 없다. 삼십 년 전, 둘러앉아 막걸리를 마시고, 노래를 부르고, 웃고 떠들던 젊은 친구들도 이제는 없다. 그리고 그 기억을 담은 나이든 우리가 남았다. 먼지 쌓인 야구 글러브처럼.


제목에 인생이 들어 있는데, 나이 오십 된 사람이 인생을 말하면 나이 육십 된 사람이 불편해하는 게 우리의 풍조다. 팔십 정도 된 사람은 칠십 정도 된 사람 얘기를 좀 들어주는지 모르겠다. 오십인 나는 사십인 사람이 나에게 인생을 말하면 조용히 들어주고 싶다. 남에게 영향을 줄만한 인생을 살지도 못했거니와, 사람은 제각각의 삶이 있다는 것이 오랜 생각이다. 나는 지금도 종교가 없다. 내 종교는 '나'라며 말하고 다니던 적도 있다. 오만하게 들 수도 있지만, 남을 괴롭히지 않고, 남에게 손 내밀지도 않는 삶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사람냄새 나는 사람이 내 좌우명이었고, 그 말에도 각각 다른 향기를 품고 사는 서로를 인정한다는 생각이 담겨있다. 사람들  중에는 신(神)의 선(善)을 따른다고 말하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크고 작은 죄를 짓고, 자신의 신에게 용서를 구하고, 또 너무 쉽게 용서를 받았다고 믿어버리는 들이 있다. 나는 그런 세상은 신이 사람을 부리는 세상이지,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라고 여긴다. 그리고 이제 신의 자리를 돈이 대신하고 있다.


2019년 10월에 촬영 시작, 2020년 연말에 코로나로 개봉 연기, 그리고 2022년 9월에 개봉했다. 3년 동안 '한국 최초 주크박스 뮤지컬 영화'라는 타이틀을 지켜냈다.

'한국 최초의 주크박스 뮤지컬 영화'라고 한다. 그래서 내가 이런 영화가 있었나라고 의문을 품었던 것이다. 세상 좋은 것들을 다 경험한 일부 관객들이 실험적이다, 갈길이 멀다 등등 평을 내놓고 있다. 브로드웨이에 가서 본, 피카디리에서 관람한, 헐리우드가 만든, 그런 작품들과 비교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공감할 수 있는 우리나라의 이야기라서 의미가 있다고 본다. 나는 좋았다.


우리 내외와 사연이 비슷한 동시대 부부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울면서 잘 봤다. 딱 내 스타일의 영화라고 할 수 있었다. 아내는 '써니'의 후속작이라는 다소 '담담한' 평을 했지만, 영화 내내 뭔가를 생각하는 눈치였다. 영화가 말해주고 있듯 첫사랑이든, 짝사랑이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서로의 인생에서 서랍 하나 정도 채우는 분량이면 족하지 않을까?


영화를 같이 보고 아내와 나눈 대화에서, 죽는 것은 그렇게 두려운 일은 아닌 것 같다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 오히려 잘 살아야 하는 현실이 고, 그나마 지금까지는 큰 없이 잘 살아왔다고 서로 인정했다.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 같이 눈물을 흘리며 봤던 이탈리아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 이어 역시 인생은 아름답다는 것을 알려준 영화다. 친구 같이 느껴지는 배우들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여보. 인생은 아름다워. 안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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