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멧별 Oct 19. 2024

김씨표류기vs홍길동전

퇴근길 단상

영화 '김씨표류기'에서 남자 김씨는 세상에 패배감을 느끼고 한강에 뛰어내려 자살을 시도하지만 실패한 후 섬에 표류하게 된다. 다시 목을 매려하지만 그것도 실패하고, 그냥 아무도 없는 섬에서 한번 살아보기로 한다. 그 과정에서 절망과 희망, 목표의 성취를 경험하며 심리 상태가 변화한다. 그런 그를 카메라 렌즈를 통해 발견한 여자 김씨 역시, 세상과 담을 쌓고 히키코모리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양 김씨 간에 모종의 작용과 반작용이 일어나면서 둘은 삶의 새로운 의미를 찾아간다. 남자 김씨의 '무인도'와 여자 김씨의 '달'이 일체화되면서 그 섬은 두 사람에게 이상향으로 자리매김한다. 그 섬은 바로 '밤섬'이다.



옛날 옛날에 홍판서는 상서로운 꿈을 꾸고난 후 느닷없이 방을 닦고 있던 몸종 춘섬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지게 되고, 그 결과 한 아이가 태어나게 된다. 그 아이가 점점 자라 팔 세 되매 총명함이 과인하여 하나를 들으면 백을 통하였으나, 서자라는 이유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 하는 사회적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아버지 홍판서도 애정은 있지만 그 벽을 넘지는 못하고, 삐뚤어진 홍길동(아이의 이름이다.)은 비행청소년이 되어 말그대로 하늘을 날아 다니며 활빈당이라는 폭력조직을 결성한 후 호부호형을 막은 사회 시스템에 반항하게 된다. 임금이 그를 구속하고 형을 집행하려 했으나, 탈옥을 감행하고 율도국栗島國이란 나라의 통치자가 된다. 나라 이름이 밤 율, 섬 도, '밤섬'이다. (느낌상 율도는 한자로 律度일 것 같고, 律島로 되어 있는 문헌도 있지만 여기서는 栗島로 하겠다.)



‘한강’의 밤섬이 언제부터 밤섬으로 불렸는지는 모르겠으나, 조선시대 사회 부조리에 반기를 든 홍길동과 활빈당의 활동 거점이 밤섬이었던 점, 이해준 감독이 현대사회의 부조리에 상처입은 남녀 김씨의 연결 매개로 삼은 장소가 밤섬이었던 점, 세월이 흐르고 섬 위로 다리(서강대교)가 지나가는 변화를 겪으면서도 금융중심지이자 한국의 민해~른(Manhattan)이라고 하는 ‘여의도’ 앞에서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할 때 그 상징성은 상당히 커보인다. '저항하는 민중의 염원과 얼이 깃든, 꺼지지 않는 촛불같은 반란의 섬'이라고나 할까?



조선시대 사람들이 꿈꿨던 이상향 율도국은 비슷한 시기에 저 먼 바다 건너, 또는 저 큰 대륙 너머 ‘에스빠냐’에서 ‘세르반떼스’라는 작가에 의해 다른 이름으로 그려진다. ‘라만짜’의 ‘돈 끼소테’와 그의 충직한 부하 ‘산초 판짜’의 모험을 얘기한 소설 ‘돈 키하리(Don Quixote)’에는 (외국어 장난은 이제 그만~~) ‘바라타리아’(Barataria)라는 섬이 등장한다. 돈키호테가 산초를 그 섬의 총독으로 임명하는데, 진정성이 없었던 본래 의도와는 달리 산초는 섬을 사람사는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사람들은 그렇게 이상향을 꿈꾼다.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도 이상적인 제도를 가진 섬나라이고, 황금의 도시라는 남미의 ‘엘도라도’ 역시 부족함이 없는 사회이며, 전설에 가까운 중국의 요순시절에는 길거리에 황금이 떨어져 있어도 주워가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카페 빈자리에서 노트북을 훔쳐가지 않는 한국도 그런 면에서 이상향이다. 입법, 사법, 행정, 분단 같은 몇가지 부족한 점들을 빼고 나면.



‘한강’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세계가 우리를 바라보는 관점과 국민 중 일부가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에 큰 차이를 느낀다. 그 관점은 아마 “집안 시끄러운 거 딱 싫다.”라던 나 어릴 때 노인들의 말과 비슷한 이데올로기일 것이라 추측한다. 모 학자는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두고 ‘통쾌하다.’고 하면서 예전에는 ‘국문학과 가서 뭐할건데?’라고 했단다. 나도 살면서 한번 들었던 말이다. ‘한강’은 국문학과를 나왔고, ‘김호연’도 국문학과를 나왔다. 이 나이에 새삼 가지 못 한 길이 막연히 부럽다. 그냥 감정적인 말이다. ‘김호연’의 소설 ‘나의 돈키호테’에도 이상향으로 ‘바라타리아’가 등장한다. 그의 소설 ‘망원동 브라더스’의 옥탑방도 어떤이들에게는 이상향이 되어 주었다. 퇴근길 항상 거기에 있는 밤섬을 지나면서 생각한 '나의 이상향은 어디일까?'라는 질문에 답해보려고 몇 자 적었지만, 아직 찾지 못 한 것 같다. 나의 지화타네호는 어디에 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Neo Totemism : 新토테미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