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심삼일의 마지막 날. 아직은 글을 써 내려가는 게 견딜만하다. 10년 주기로 삶이 피폐해질 만큼 불면증에 시달려온 나로서는, 하루 정도 뜬눈으로 밤새는 건 일도 아니니까. 결코 끝날 것 같지 않다가도 나도 모르는 사이 아주 조금씩 나아진다는 것을 경험치로 알게 되었기에, 불면증도 우울증도 이제는 예전만큼 겁나지 않는다. 눈가와 관자놀이, 뒷목이 삼총사로 조여 오는 무거운 아침. 글을 쓰는 것처럼 사소한 행동도 지속하는 자신이 그런대로 대견하다. 아이를 갖고부터 집중력과 기억력이 급격히 떨어진 후 언제부터인가 의지박약에 돌파력 부족이 상징처럼 되어 버렸으니 더욱 그러하다.
오늘의 기분 기상도는 흐리다. 고구마 백 개 먹은 답답함 정도쯤 될까. 6개월 넘게 꾸역꾸역 끌고 오던 프로젝트가 상대방 변심으로 엎어졌다. 원하는걸 한 번도 빠짐없이 다 받아줬는데 이제 와서 구조가 너무 복잡하단다. 애당초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경우의 수를 늘려놓은 게 본인인데. 사람은 이렇듯 자기중심적이다.
단순변심. 사실 나도 자주 하는 행동이다. 인터넷에서 옷을 주문해 놓고는 반품 이유로 가장 자주 쓰는 선택지. 제품 탓이라고 굳이 하지는 않지만, 경제적 손실은 내가 아닌 업체가 입고, 정확히 무엇이 문제인지 알려주지도 못하겠고, 그것이나마 편리하게 처리되지 않으면 고객센터에 전화해서 불평하기까지 한다. 그런데 대체로 단순변심이란, 제품의 문제가 아닌, 못생긴 체형의 문제다. 물건을 소화할 수 있는 몸을 갖지 못한, 나의 문제라는 거다.
불씨가 사그라 들 때마다 호호 입김 불어가며 어렵게 살려내던 노력이 무색하게도, 상대방 마음이 바뀌는 건 한순간이다. 하지만 단순변심이 보통 제품 때문이 아닌 소비자인 나의 못난 체형 탓이듯, 프로젝트가 부러진 원인 역시 신의를 지키기에는 부족했던 상대편의 인격일 터. 이제, 무얼 어떻게 달리 했으면 좋았을지 딱 한 번만 복기해보고 새로운 과제를 찾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하면 된다.
한 때 동료였던 이들이 일사천리로 출세길을 달려 나갈 때, 어쩔 수 없이 상실감이 든다. 조금만 더 견디면 될 거였는데, 제 풀에 못 이겨 혼자 좌초한 건 아닌지 주눅 들기까지 한다. 더욱이 조직의 힘을 빌어 할 수 있던 일이 많았던 전에 비해, 오롯이 내 노력만으로 사람들의 냉소를 이겨야만 한다는 깨달음에 나 자신이 초라해진다. 그러고 보면 조직이 뒷받침될 때 압박을 이기지 못할 멘털을 갖고 있었으면서 혈혈단신 내 힘으로 무언가를 일구어 보겠다고 생각했던 게 어처구니없다. 아니, 생각해보면 난 무언가를 이루겠다고 생각했던 거라기보다 그냥 모든 걸 내려놓았다가 가랑비에 옷 젖듯, 다시 '현업에 복귀' 해서는 예전에 하던 가락을 못 내려놓은 인지부조화 상태에 가깝다.
무엇 하나 내 뜻대로 되는 일이 없을 때. 선의로 한 말과 행동이 부메랑이 되어 나를 해칠 때,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마음이 통하는 사람을 찾기 어려울 때.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봤자 자기네들끼리 학연에 지연에 형 동생 (아니면 언니 동생) 트고 나 같은 주변인들을 쳐낼 때, 무얼 하면 좋을까. 도대체 내가 무언가 '일'을 하겠다는 발버둥 치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지, 남들 보기에 이제 남편 뒤에 숨어 '여유 있게' 놀기만 하면 될 것을, 무엇을 위해 사서 이런 고생을 하고 있을지 알 수 없을 때, 어떻게 하면 다시 우울의 늪으로 빠져들지 않을까.
답은 역시 단순하다. 매일매일, 하던 대로, 건강한 몸과 원하는 목표에 한 발짝이라도 다가가는 습관을 지속하는 것. 아침에 하는 공복 유산소 50분, 어떻게든 하루 중 15분을 내어하는 짧은 명상. 마음이 동하는 책을 골라 자기 전 30분 동안 하는 독서. 어릴 적 친구나 가족 이외, 프로페셔널하게 아는 지인을 하루에 한 명이라도 컨택해서 안부를 묻고 서로 도움이 될만한 논의를 하는 것. 모임을 찾아서 만들고, 참석하고,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것. 일보다 사람이 어렵고 무서운데, 나이가 들면 들수록 무게중심은 점점 더 일보다 사람 쪽으로 기운다. 그래서 내가 부러워하는 외향적인 많은 사람들에게 숨 쉬듯 자연스러운 '네트워킹'을 난, 작정하고 매일 노트에 적어가며 공부하듯 해야 한다. 단순히 내성적인 성격 탓은 아닐 터이고, 어려서부터 주변 사람들을 편안하게 배려해주는 습관이 몸에 베지 않은 탓이다. 무엇이든 매일 조금씩 방법을 달리 해보는 것. 언젠가는 나에게 맞는 방법을 찾게 되겠지 라는 믿음과 함께, 꾸준함은 결국 물로 바위에 구멍을 뚫게도 해주지 않았던가.
새로운 하루가 밝았다. 주변을 온통 흐리게 만들던 비관은 없어졌지만 그런 만큼 게을러지고 정체된 것도 사실이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시금 움직여볼 시간이다. 몸이든 마음이든. 부정적인 생각을 접고 무엇이든 자꾸 새로이 벌여보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