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집안에 모과 향이 난 기억이 난다. 노랗고 울퉁불퉁 투박하게 생겨 갈색 상처가 듬성듬성 난 열매는 꽤 짙은 향을 뿜어냈다. 몇 알은 거실 티비 장위와 식탁 위에 몇 알은 아빠 자동차 안에 모과가 등장하는 시기가 있었다. 그때는 그 짙은 향이 지독하다고 생각했다. 가끔 그 향에 속이 메슥거리기도 했다. 그러다 조금 컸을 때, 엄마가 따뜻하게 끓여주신 달콤하고 향긋한 모과 차를 마시고 나는 모과 차가 좋아졌다.
겨울이 되면 유자차를 많이 마시지만, 유자보다 나는 모과를 더 좋아한다.
한동안 그 맛을 잊고 지내다가 요 근래 엄마에게 모과 차가 먹고싶다고 했다. 회사에서 돌아오니 집안에 모과 향이 났다. 싱크대 옆 파란 바구니에는 모과가 가득했다. 모과가 왜 이렇게 많냐고 하니 엄마는 낮에 친구와 함께 시장에서 모과 6개를 사고 돌아오는 길 다른 친구를 만났는데, 동네 모과나무가 있다며 함께 따자고 했단다. 경비실에 말을 하고 긴 작대기를 구해 한 명은 모과나무를 흔들고, 엄마는 떨어진 모과를 바구에 담았다고 했다. (나보다 더 재밌게 노는 아주머니들) 그렇게 덤으로 생긴 모과까지 더해 모과가 많았던 거였다.
모과는 아주 단단했다. 칼질이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먼저 모과를 세척하는 것이 일이 였다.
물을 가득 받고 베이킹소다와 식초를 물에 넣은 뒤 모과를 담그고 1시간을 기다렸다. 1시간이 지나, 건져낸 모과는 굵은소금에 문질러 깨끗이 닦아냈다. 모과 겉면에 찐득하고 반질하게 코팅된 부분이 뽀득하게 씻겨 내려갔다. 아마 그 부분에 약이 많이 묻어있었을 것이다. 씻은 모과는 물기가 없도록 깨끗이 닦아냈다.
엄마와 나는 도마를 바닥에 두고 큰 칼을 이용해 딱딱한 모과를 힘껏 자르기 시작했다. 생고구마를 자를때보다 더 힘이 들어가는 작업이었다. 삐뚤빼뚤 모양을 포기한 모과 조각들이 그릇에 점점 차올랐다.
싱크대 문을 열어 담을 수 있는 크고 작은 유리병들을 다 꺼내어 깨끗이 닦았다. 그리고 하얀설탕과 모과를 1대 1로 촘촘히 쌓아갔다. 하얀 설탕 가루가 노란 모과를 소복이 덮어주었다.
한 병, 두병, 담다 보니 5병이 나왔다. 둘이 먹기에는 너무 많이 양이었다. 그렇게 담고도 모과가 두 주먹쯤 남아 그것은 신문지 위에 고르게 펼쳐 말리기로 했다. 굽힌 허리를 펴니, 피곤함이 스르륵 몰려왔다. 별거 아닌 것 같았는데, 만만하게 볼 일이 아니었다. 역시 세상에 쉬운 일은 없는 것일까. 그래도 완성된 병들을 보니 뿌듯했다.
두병에서 세병은 12월 약속이 가까운 순서대로 나눠주기로 했다. 그때쯤 설탕이 잘 베어 맛있을 것이다.
올겨울은 이 따뜻한 모과 차가 나를 위로해 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