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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w Here 세은 Sep 08. 2022

제주살이_불편한 관광객과의 이별이 허전한 이유

육지에서 제주로 이사와 느끼는 모든 감성과 생각에 관한 긁적임

육지에서 제주로 이사 온 게 추운 겨울이었다.


나름 동쪽에서 핫하다는 월정리에서 한달살이를 시작했는데 Hot 은커녕 Cold 하다못해

관광지가 맞나 싶을 정도로 썰렁했다. 

문을 연 가게는 거의 없었고 간혹 영업 중인 가게를 가면 사장 맘대로 

문 닫는 게 일상인 겨울. 


그러다 제주의 봄을 만나니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 이게 진정한 제주구나 싶어 매일 감탄했다. '이게 진짜 제주답지! 내가 이런 곳에 살고 있다니!' 감탄할 때 내 인생 최악의 여름을 만났다. 감당하기 어려운 수백 가지 벌레들, 30분만 외출해도 시꺼멓게 타다 못해 눈뜨기 힘든 뜨거운 태양, 어떻게 해도 적응되지 않는 현지인들과의 거리감으로 지쳐갔다. 무심코 밟은 풀 사이에서 뱀이 지나가고, 주차장에서 집에 들어가는 길이 매번 괴로울 지경이었다. '육지로 돌아가고 싶다. 아파트에 살고 싶다' 싶을 때 내가 사는 조용한 시골에 폭풍 같은 관광객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맞다, 제주의 7.8월을 처음부터 끝까지 올곧이 보게 된 것이다. 

제주에 산지 얼마 안 된 어설픈 도민으로서 결론한다면

관광객들의 방문이 매우 불편했다. 


이유는 매우 단순한데 내가 여유롭게 가던 곳을 더 이상 갈 수 없고, 매일 애정 하던 바닷가엔 쓰레기가 난무하며, 마지막으로 그들만의 육지 라이프 방식을 이곳에 무작정 들이미는 상식 밖의 사람들도 많다. 


내 집 앞 무단 주차는 당연하고 이건 아니다 싶어 불편함을 호소하면 '관광지니 당연한 거 아닌가?' 하는 태도에 혀를 내둔 적도 있다. 내가 사는 곳은 제주에서도 시골이라 '이곳까지 관광객들이 몰려올까?' 싶었는데 아침 8시부터 해변가엔 주차할 곳이 없고, 시장엔 물건 사려는 이웃들보다 카메라 들고 구경온 사람이 더 많았으니 제주에 오래 산 사람들 기분이 어떨지 조금은 예상된다. 


그렇게 나와 내 아이들은 7월부터 한 번도 바닷가에 나가지 않았다. 어린이집 하원 후 바닷가 모래놀이는 기본코스였는데 단 한 번도 근처에 주차조차 할 수 없었다. 사실 주차할 곳도 없기도 했고, 덥다고 핑계 댔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이 어디에 우리의 터를 잡아야 하나 낯설고 불편했다. 


말복이 지나고 이제 좀 제주의 해가 고개를 숙이나 싶은 며칠 전, 낯선 시원한 바람에 혹시나 싶어 바닷가 쪽을 가보니 이게 뭔가 싶게 사람이 몇 없었다. 예약대기를 걸어도 먹지 못하던 전통식장엔 테이블이 텅텅 비어있고, 길거리엔 주황색 당근 모자를 쓴 관광객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첫날엔 '휴 이제 좀 여유롭게 지내겠네?! 드디어 조용히 지낼 수 있겠구나 ' 기분이었는데 갈수록 묘한 생각이 든다. 


'다시 오면 안 되나? 북적이는 사람들, 시끄러운 목소리들...'


왜 허전한 거지? 왜 생각나는 거지? 불편하게만 느껴졌던 '사람'이란 존재들. 사실 관계에 지쳐 도망 오듯 제주에 온 이유도 있는데 이제야 나랑 관계도 없는 사람들의 북적임이 그립다니. 


시골 살아서 그런가... 사람이 그립다. 

할미, 할삐 말고 나랑 비슷한 또래의 사람들과 '육지는 요즘 어때요?' 묻고 싶다. 


제주에 산지 7개월. 

이제 이곳은 나에게 더 이상 특별하지 않다. 

아니, 특별함을 바랐던 나에게 반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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