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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렌더 이야기꾼 Jun 06. 2020

세탁기가 먹었어요(중중)

누구나 마음 속에 동화 한 편은 있잖아요

그림작가를 찾아요

그 무렵 나는 동화 생각에 미쳐있었다. 친구들을 만날때마다 내가 만든 동화얘기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의 동화는 별 무리 없이 진행되는 듯 보였고, 상당히 들떠 있었다.


하지만 사실 나의 동화만들기에는 치명적인 구멍이 있었다. 바로 그림이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그려볼까라는 생각으로 죽죽 선을 그어봤지만 양말까지는 어떻게 해보겠는데 세탁기는 도무지 그리지 못하겠더라. 그래서 삽화가, 그림쟁이를 찾아나섰다.


자연스런 만남을 추구하다보니 친구들과 지인들의 모임에서 은근슬쩍 동화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다분히 의도적이었으나 티 안나게 대화를 세탁기로 끌어 왔다. 그 무렵 만난 사람들 중 그림을 그리는, 그렸던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그리고 나의 동화 이야기는 급기야 앉은자리에서 세탁기 그림을 받아내서야 대화가 끝나곤 했다. 생각해보니 꽤나 강압적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와도 동화를 만들 수 없었다. 생각해보면 일이 흐지부지 되었던 큰 이유는 마음만 앞섰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나는 현실적인 면은 도려진 채 동화라는 환상 속에서 들떠있었다. 또한 수익이 나면 반을 떼어주겠다는 공수표를 입에 달고 살았는데 그것은 그림쟁이를 구하는 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대부분 그림을 업으로 삼지 않은, 취미로 남은 현생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동화 삽화 과정은 큰 부담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내가 그림을 전혀 모른 다는 것이었다. 선뜻은 아니어도 그림을 그려준다던 사람들과 마찰이 생겼다. 그 마찰은 세탁기의 눈에서 비롯되었다. 나는 세탁기에 눈과 입이 있기를 원했고, 그림쟁이의 입장에서는 입은 어떻게 그려보겠지만 눈은 그릴 수 없는 형태라는 것이다. 드럼도 아닌 통돌이 세탁기를 고집했던 나는 눈을 그릴 수 없던 사실을 납득할 수 없었다. '눈이야 그리면 되지!'라고 생각했지만 설명을 들어보니 이해가 갔다. 덮개 위에 눈을 그리게 되면 통돌이의 입 부분인 덮개가 열릴 때에 눈이 전혀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림쟁이를 슥하면 싹 그릴 수 있는 마법사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그림쟁이를 구하는 일은 흐지부지 되어갔다.


-(하)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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