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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보리 Oct 06. 2024

'몸'이라는 철창에 갇힌 '나'

눈 앞 거울에 피할 수 없는 이미지가 나타난다. 야윈 얼굴, 구부정한 어깨, 근시의 눈, 민둥머리, 정말 못생긴 모습. 그리고 내 머리라는 이 추한 껍데기, 내가 좋아하지도 않는 이 철창 속에서 나를 보여주며 돌아다녀야 한다. 바로 그 철창을 통해 말하고 바라보고 남에게 보여져야 한다. 이 피부 아래 머물며 썩어가야 한다. 내 몸, 그것은 나에게 강요된, 어찌할 수 없는 장소다.

-푸코-     




푸코의 말은 아주 오랫동안 내 뇌리에 꽂혀있다     

사람들은 보통 <나> 라는 존재가 몸과 마음과 정신과 기억과 감정등이 혼연일체가 된 특정 유기체라고 생각하는데 푸코는 <나> 라는 존재는 내가 원치 않는 이 몸, 피부 속에 갇혀있다고 한다.


  이 생각은 나에게 어떤 자유로움을 줬다. (푸코의 의도와는 달랐겠지만) 그 이유는 나의 몸이 곧 내가 아니라면, 집착할 이유가 없었다. 몸이 나를 포장하는 껍데기, 선물의 포장지 같은 것이라면, 타고난 모습 또는 외형의 변화를 두려워할 필요 없다. 그게 피부가 검은 것이든, 살이 찌는 것이든 빠지는 것이든남들이 보는 내 외형 또는 행동이 우스꽝스럽더라도 그건 일시적인 철창의 모습며 (안에 갇힌 나는 전혀 우스꽝스럽지 않음) 영속적인 '나' 자체가 아니다.


  나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한테 운동을 해보라고 추천했는데 친구는 "아직 나는 체력이 약해서 따라갈 수가 없어. 사람들이 그런 나를 보는 게 너무 싫어" 라고 거절했다. 운동을 추천할 때 생각보다 이런 대답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운동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볼 겨를이 없다. 그리고 그 점이 내가 하는 운동에서 제일 좋아하는 점이다. 


  처음엔 나도 다른 사람이 나를 보는 것이 부끄러웠고 내 기록이 잘 나오는 것에 신경을 썼다. 어느 순간 내 속에 몰입해서 내 자신과 대화하는 순간이 왔다.  <포기하자 / 좀만 더 해보자 / 못 할 거 같다 / 다섯 개만 더 하자> 너무나 포기하고 싶었지만 나 자신에게 계속 말을 걸고 답하는 대화를 포기하지 않았다. 어느새 운동은 끝이 나고 성취감만 남았다.


  무슨 운동이든 <자기안으로의 몰입과 마일리지 쌓이듯 쌓이는 성취감> 이 운동이 줄 수 있는 가장 큰 즐거움이라고 생각한다. 목표가 어떤 것이든 앞의 두 즐거움을 쫓으며 운동을 해야한다. 


운동을 통해 몸을 만들거나 다이어트를 하는 대부분의 사람이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왜 살이 안 빠져? 왜 몸이 안 바뀌어? 왜 인바디 수치가 안 좋아져?” 라고 말하며 스트레스를 받는다. 몸이라는 껍데기에 매몰되어 모든 신경이 몸에 집중되어 있다. 그럴 때 사람들은 운동강도를 늘릴 수 없으니 먹는 것을 줄이기 시작한다. 이 과정은 치명적이다. 마치 '코끼리는 생각하지마'라고 생각하는 순간 코끼리만 생각하게 되듯이 '음식 먹을 생각은 하지마' 라고 생각하는 순간 음식 생각만 하게 되어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몸은 그저 껍데기일 뿐이다. 너라는 존재는 네가 지금 불완전하고 허접하고 건강하지 못하고 심하게는 불쾌하게도 느끼는 네 몸 그 자체가 아니다. 어떤 몸이 완전하고 아름다운지는 사회가 만들어 놓은 미의 기준이 아니라 네가 지향하는 삶의 방향과 부합해야한다. 예를 들어 네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꿈꾸는 역도 선수라면 너는 마라토너의 얇고 드라이한 몸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튼튼한 코어와 탄력적인 팔 다리와 관절 그리고 순간적으로 나오는 폭발적인 힘과 협응력을 갖춘 몸을 원할 것이다. 모두가 타고난 골격과 신체적 유전자가 다르다. 모두가 한혜진의 몸이 될 수도 없지만, 될 수 있다고 그것이 정답인 것도 아니다. 내가 어떤 몸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어떤 몸이 되고 싶은지 갈망하는 것은 나의 선택이다. 


  몸은 그저 껍데기이고 선물의 포장지이다. 몸은 나를 가두고 있는 철창. 나라는 존재는 몸의 변화에 훼손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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