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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각사각 Sep 18. 2020

착한 아이 모범생

The Beginning. 

“와, 넌 다른 공부 잘하는 애들과는 다르게 정말 착한 거 같아!"
“우리 큰 딸은 착해서 신경 쓸 일도 없었어요~ 작은 아이가 손이 많이 갔지.”
“누구? 아아 그 모범생? 걘 뭐 당연히 또 1등이겠지.”
“넌 좋겠다 공부 잘해서!” 


착한 애. 모범생. 어렸을 적 항상 나를 향한 수식어들이었다. 칭찬 같은 그 호칭들의 이면에 있는 다른 모습들.


“공부만 잘하지 뭐, 야무진 맛이 없어." “착한 거 매력 없어." “에휴 재미없게 넌 또 공부냐?” “공부 잘하는 애들은 너무 독해서 별로야." “제 잘난 맛에 사는 거지 뭐. 싸가지 없게." “저거 다 착한 척이지.” “공부 잘하는 애들이 꼭 성공하는 건 아니더라.” “그냥 우리가 놀아주는 거지 뭐.” 


학창 시절에는 공부를 잘하는 게 권력이란다. 공부만 잘하면 그 누구도 함부로 건들지 못한다고. 어느 정도는 사실이었다. 소위 말하는 “일진"들도 나를 괴롭히지 않았고 친구들과도 두루두루 친하게 지냈다. 하지만 그 뒤에 들려오는 수많은 목소리들을 난 모르지 않았다. 여린 성격의 나는 그 목소리들에 필요 이상으로 신경을 썼고, 그래서 더 아등바등 노력했다. 조금만 내가 실수하면 “역시 공부 잘하는 것들은 싸가지가 없어"라는 말을 들을까 봐. 공부를 잘한다고 하면 편협된 시선으로 바라보는 걸 알기에 난 공부 잘한다는 말을 절대 나 스스로 하지 않았다. 난 "착한 아이"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중학교 때 시험 몇 주 전부터 우리 반 교실에는 (가끔은 다른 반까지) 내 노트가 돌았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조심스럽게 물어보고 가져가기 시작했지만 얼마 뒤에는 나한테 물어보지 않은 아이들까지 내 노트를 베끼고 있었다. 나한테 빌려간 친구에게 돌려달라고 말하러 가면 “아, 누구누구한테도 빌려줬어! 괜찮지?”라는 대답을 받았다. 나는 쿨한 척 그 다른 아이를 찾아가 “천천히 보고 다 쓰면 돌려줘.”라고 했고. 가끔 내 교과서나 노트가 훼손되거나 이물질이 묻어오는 경우도 있었는데 화가 났지만 티를 내지 않았다. 아니 낼 수가 없었다. 내가 화를 내면 돌아올 대답이 뻔하니까. 그 대답을 듣는 나는 더 상처 받을 테니까. 


이 “착한 아이" 이미지는 집에서도 이어졌다. 많은 첫째가 그렇듯 난 첫째로서의 부담감 속에서 자랐고 선천적으로 예민하지 않았던 나는 부모님 말씀을 고분고분 잘 듣는 아이였다. 하라는 대로 따랐고 공부 또한 성실하게 열심히 했다. 하지만 네 살 어린 동생은 나와 완전 반대였다. 흔히 말하는 “마이웨이"를 걷는 사람이었다. 부모님이 하지 말라는 것들을 골라서 하는 말썽꾸러기였고, 정도를 걷지 않았다. 굳이 친구들과 두루두루 잘 지내려고 하지도 않았고 수업시간에도 딱히 선생님께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 저렇게 주어진 틀에 맞는 행동을 하나도 하지 않는데 좋은 머리로, 좋은 운으로 결과적으로는 좋은 성과를 내는 모습을 보고, 어린 마음에 그런 동생이 너무 부러웠다. 그래서 내가 많이 심술을 부린 것도 같다.  


그래서일까, 난 남들이 아무리 내게 착하다고 해줘도 그게 칭찬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내가 보기엔 내가 착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속으로는 열등감과 이기적인 마음으로 가득 찼으면서, 열심히 착한 이미지를 만들어 가는 사람. 내가 생각하기엔, 난 그런 못난 사람이었다. 그래서 누가 내게 착하다는 말을 할 때 난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아니에요. 난 착하지 않아. 아니, 착하고 싶지 않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다시 열심히 그 틀에 나 자신을 끼워 넣었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라는 개념을 처음 알았던 때가 아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였을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느꼈던 모든 감정이 한꺼번에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착한 아이가 되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또 착한 아이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 도대체 왜? “착하다"라는 말 말고는 스스로를 정의할 수 있는 단어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공부 또한 마찬가지였다. “모범생"이라는 그 하나 만으로 내 모든 게 정의되는 것이 싫었지만 한편으로는 그 외에 날 정의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서. 그렇게라도 정체성을 가지고 싶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그렇게라도 알고 싶어서. 그렇게 난 더 “모범생”이 되었고 “착한 아이”로 살아왔다. 어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내 속마음을 꾹꾹 눌러 담고 외면한 채로.

 


그렇게 나는 겉으로는 완벽해 보이지만, 
뻥 뚫린 속을 메우려 
열심히 남들이 던져주는
칭찬과 인정이라는 독을 마시며
사춘기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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