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향 커피 한 잔

봄이야기1

by 홍유

언니를 처음 만난 곳은 대학 강의실이었다. 우리는 1학년도 아닌 3학년 전공 수업을 들으면서 처음 만났다. 종종 같은 수업을 듣고, 같이 식당에 가서 밥을 먹고, 같은 수업을 들으러 뛰어갔다.


봄이 와서 캠퍼스에 벚꽃이 만발하면 언니는 팔을 쭉 뻗어서 가장 낮은 가지의 벚꽃을 따 주었다. 나는 그것을 받아서 책 사이에 넣고 말렸다. 다 마른 꽃잎은 손코팅지에 붙여서 예쁘게 코팅했다. 한 해 동안 책갈피로 예쁘게 쓰고 다음 봄에는 다시 꽃잎을 땄다.


언니는 도서관에서 늘 같은 자리에 앉았고, 책상 밑에는 커피믹스와 종이컵이 있었다. 지금처럼 텀블러를 가지고 다니지도 않았던 그때, 언니는 커피를 마시자며 커피믹스와 종이컵을 갖고 열람실 밖으로 나왔다. 정수기에서 따뜻한 물을 부어서 마시는 그 커피 한 잔은 참으로 달았다.

언니는 졸업 후에 아이들을 가르쳤다. 우리는 항상 바빴고, 졸업한 언니를 볼 수 있는 날은 많지 않았다. 나는 대학원에서 밤늦게 공부하다 집에 가면서, 언니와 함께 걷던 길을 고요히 돌아보기도 했다. 그 길 위에서 종종 언니와 통화도 했다. 우리의 관심사는 20대 처녀들에게는 전쟁 같던-지금 생각하면 귀엽기만 한- 연애사였고, 앞으로 어떻게 살까를 고민하는, 지극히 당연하면서도 처절한 것들이었다. 그래도 그 전화 한 통이, 가끔은 지직거리고 어느 지점에서는 끊기기도 했던 초창기 휴대 전화가 이어주는 그 전화한 통이 우리가 같은 시간을 살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언니는 쉬는 날 가끔 학교에 왔다. 같이 밥을 먹고, 같이 커피를 마셨다. 함께 캠퍼스를 걸어서 돌아오는 길. 그 봄날의 벚꽃잎들이 다시 우리 주변에 흩날리는 것만 같았다.

한겨울, 정말 추웠던 저녁에 언니가 전화를 했다. 그간 가르치던 애들이 대학에 모두 붙었단다. 잠시 일이 없어졌다고. 우리 아파트에 학생을 구하는 공고를 붙였으면 한다고 말했다. 언니와 나는 우리 동네 아파트를 모두 돌며 전단지를 붙였다. 전단지를 붙이는 언니의 손이 차가워지고, 테이프를 뜯어 주는 내 손이 곱았다. 그날 준비한 전단지를 모두 붙인 후, 가장 가까운 갈비탕집에 들어갔다. 노곤한 몸에 온기가 돌면서 우리는 말없이 앉아 있었다. 식후 무료 제공되는 커피 한 잔을 멍하니 마시는 우리 주변으로 벚꽃향 침묵이 가득했다. 언니는 그날 이후 폭주하는 연락 속에서 제법 괜찮은 자리를 골라 수업을 시작했다. 밤늦게 수업이 끝나고 가기 전에는 집 앞에서 종종 나와 만났다. 언니의 차 안에 앉아서 우리는 따뜻한 차를 마셨다. 언니는 내게 일어나는 많은 일들을 가만히 들어주었고 같이 분개하고, 위로해주고, 용기를 줬다.


몇 년 후, 언니는 결혼을 하고 캐나다로 떠났다. 언니는 청첩장을 주려고 내가 근무하던 곳으로 왔다. 근사하게 점심을 사줬다. 캐나다로 가기까지 준비할 것이 많아 시간이 빠듯하다고. 해서 저녁을 같이 먹을 수 없어 미안하다고 했다. 언니는 광주에서 결혼했다. 언니의 결혼식 날, 5월 연휴와 겹쳐 고속버스는 톨게이트를 빠져나가는 데만 세 시간이 걸렸다. 헐떡거리며 결혼식장에 들어갔을 때, 언니의 폐백이 끝나고 있었다. 그저 미안하고 그저 서운하고. 가방에서 언니에게 쓴 편지가 들어 있는 봉투를 꺼내 전했다. 드레스를 입은 언니와 함께 사진 한 장도 못 찍어 보고 돌아왔다. 언니의 가장 소중한 날인데. 그 날 집에 돌아오면서 터미널에서 혼자 사 마신 커피는 쓰디 썼다. 내 입맛에는 역시 믹스커피가 최고라면서, 나는 커피 한모금마다 투덜거렸다.

그날 밤 언니가 전화를 했다. 봉투에 뭘 이렇게 많이 넣었냐면서. 혼나고 싶냐고. 이제 자주 못 본다고 막하냐면서 우스개같은 잔소리를 했다. 그간 네게 참 고마웠다면서. 헐떡거리면서 들어와서 밥도 못 먹고 가는 걸 보고 마음이 안 좋았다고 말했다. 종종 연락하자며, 덤덤히, 여전히 따뜻하게, 우리는 그렇게 통화를 했다.


언니와 나는 이따금 시차를 맞추어 전화를 한다. 근 14시간의 시차는 우리가 같은 지구에서 살고 있음을 묘하게 알려준다. 전화를 하기 전, 현지시간을 찾아볼 때면 새삼스럽게도 멀리 있다는 사실이 느껴진다. 언니 얼굴을 본 지 얼마나 되었을까? 이제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언니와 전화하는 날이면 항상 내 앞에 커피 한 잔을 놓는다. 언니 목소리와 함께 커피를 마시면 그 안에서는 언제나 벚꽃향이 피어난다.


커피 잔 안에서 언니와 나의 시간은 20년째 함께 흐른다. 언니는 내게 따뜻한 커피 한 잔 같은 사람이다. 커피향 사이에서 봄날의 벚꽃향을 끌어낸다. 흔한 커피 한 잔을 오직 나만의 것으로 만들어 주는 그 벚꽃 향기. 나는 그 향기가 항상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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