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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리릭 Mar 30. 2024

여자배구 챔피언결정전 1차전을 다녀왔습니다(수원체육관)

신의 점프는 낮아지고 있었습니다


  

 현대건설과 흥국생명이 2023-2024 V리그 챔피언결정전에서 만났습니다. 그리고 저는 대망의 1차전을 보기 위해 휴가까지 내고 수원체육관으로 향했습니다. 비가 오락가락하며 하늘은 어두웠지만 열기만큼은 뜨거웠습니다.


저를 맞이해 준 건 흐린 하늘과 기대 가득한 팬들이었습니다



        


신과 퀸의 대결


 드디어 만났습니다. 김연경 선수와 양효진 선수가 결승전에서 상대로 만났습니다.


 대한민국 여자배구 GOAT(Greatest of All time, 특정 스포츠종목 역사상 최고의 선수를 의미하는 단어)로 불리는 김연경 선수, 9 시즌 연속 V리그 연봉퀸의 자리를 지키며 V리그를 지배했던 양효진 선수. 이 둘은 힘을 합쳐 도쿄올림픽 4강 신화를 만든 적은 있지만, 결승전이라는 큰 무대에서 적으로 만난 건 처음입니다.  

    

 둘은 이번 시즌 MVP 경쟁자이기도 합니다. 김연경 선수는 개인 기록에서, 양효진 선수는 정규리그 1위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유리합니다. 다만 최종 우승이라는 결과가 MVP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어쨌거나 마지막을 더 강렬하게 기억하니까요.     



     


현대건설     


 현대건설은 불운의 아이콘이었습니다.


 2019-2020 시즌, 코로나로 인해 포스트시즌이 취소됐습니다. 현대건설은 1위를 달리고 있었죠. 그렇게 우승 기회를 허무하게 놓쳤고 2년 뒤에 다시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2021-2022 시즌의 현대건설은 역대급 페이스였습니다. 30경기를 치르는 동안 딱 3패만을 당했습니다. 참고로 이번 시즌 정규리그 1위를 차지한 현대건설은 10패를 당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코로나가 발목을 잡았습니다. 6라운드를 해보지도 못하고 시즌은 5라운드와 함께 종료됐습니다.


https://brunch.co.kr/@heuriric/104

 

 그다음 2022-2023 시즌도 최다연승 기록을 세우며 기세가 좋았지만, 시즌 막판 외국인 선수 야스민, 리베로 김연견 등의 부상으로 인해 결국 1위 자리를 흥국생명에게 내줘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번 시즌에 딱 1점 차이로 정규리그 1위를 확정했습니다.        


                  


흥국생명     


 김연경 선수는 2022-2023 시즌에 V리그로 다시 컴백했습니다. 김연경 선수 덕분에 흥국생명은 강력한 우승후보가 됐고, 예상대로 정규리그 1위를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챔피언결정전에서 먼저 2승을 거두고도 내리 3연패를 당하며 최초의 리버스 스윕패를 도로공사에게 허용하고 맙니다.

     

 만약 지난 시즌 흥국생명이 통합우승을 차지했다면, 어쩌면 이번 시즌에 김연경 선수를 못 봤을지도 모릅니다. 통합우승에 대한 열망이 강했던 김연경 선수는 결과적으로 다시 흥국생명과 재계약을 맺으며 이번 시즌 통합우승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습니다.

 하지만 초반의 무서웠던 기세는 외국인 선수 옐레나의 갑작스러운 태업으로 인해 물거품이 돼버렸습니다. 프로선수의 기본의 기본도 하지 못했던 옐레나의 자체 파업으로 흥국은 한동안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태업의 정확한 이유를 모른다는 게 더 어이없긴 합니다.) 결국 딱 1점 차이로 현대건설에게 정규리그 1위 자리를 내줘야만 했습니다.

    

 흥국생명과 김연경 선수에게는 통합우승은 실패했지만 최종 우승이라는 목표가 생겼습니다. 작년에 못 이룬 꿈을 다시 이룰 기회가 생겼습니다.      


 아, 김연경 선수의 위대함을 여기서 자세히 언급하진 않겠습니다. 다만 챔피언결정전 관련 기록만 보자면, 출전한 모든 시즌마다 빠짐없이 챔프전에 진출한 역대 최초 선수, 2005-06, 2006-07, 2008-09 챔피언결정전 MVP(참고로 김연경 선수는 2009년부터 2021년까지, 2020-21 시즌을 제외하고 해외에서 활동했습니다.). 뭐 이 정도 기록이 있습니다.     


                


너무나 싱거웠던 1,2세트, 그리고 반전의 3,4세트


 이번 시즌 전적은 4승 2패로 흥국생명이 더 많이 이겼습니다. 특히 5,6라운드는 3-0 셧아웃 승리를 거뒀죠. 5라운드 경기는 제가 직접 수원체육관에 가서 직관했던 경기라 더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https://brunch.co.kr/@heuriric/165


 챔피언 결정전이라 이름 붙였지만 1,2세트 경기는 너무 싱거웠습니다. 5,6라운드를 그대로 복사해 놓은 느낌이었습니다. 현대건설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흥국생명은 하고 싶은 걸 다 했습니다.


                                                             14-18-20-22-25-20-18-14


현대건설이 5라운드부터 내리 8세트를 연속으로 지면서 얻은 점수입니다. 마치 데칼코마니 같죠? 챔피언결정전 상대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부끄러운 점수입니다.     


 1,2세트의 가장 큰 문제는 리시브였습니다. 리시브가 안 되니 현대건설의 장점인 미들브로커를 쓰기가 어려웠습니다. 김다인 선수는 모마에게 공을 올릴 수밖에 없었고 단조로운 패턴 속에 모마의 공격은 블로킹에 계속 차단당했습니다. (참고로 흥국생명은 이 날 경기에서 블로킹 19개를 기록하며 챔피언결정전 기록을 새로 썼습니다.)


1,2세트를 지배했던 흥국생명의 장신 선수들


 어차피 이렇게 된 이상 김다인 선수가 더 모험을 했어야 했지만, 김다인 선수는 다소 얼어있는 느낌이었습니다. 국가대표 주전 세터로서 국제대회 27연패의 트라우마가 재현되는 건 아닐까 저 혼자서 걱정도 했습니다.

 자신감이 없는 건 비단 김다인 선수만이 아니었습니다. 풀리지 않는 공격 속에 정지윤 선수의 플레이도 소심해져 갔습니다. 팀을 이끌어줘야 할 양효진 선수마저도 목디스크 후유증과 함께 침묵을 이어갔죠.     


  하지만 스포츠는 역전이 있고, 이변이 있고, 끝날 때까지 모르는 거죠. 3세트가 되면서 현대건설은 갑자기 새로운 팀이 됩니다. 1,2세트는 일부러 못하는 척했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1,2세트는 현대건설이 초반에 잠깐 점수를 비슷하게 하다가 한순간 무너지면서 회복을 못하는 패턴이었습니다. 특히 김수지, 이주아, 김연경 선수의 서브 때 연속 실점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3세트에서는 갑자기 달라졌습니다. 쉽게 무너지지 않고 버텼습니다. 그리고 흥국생명의 단조로운 공격 패턴은 조금씩 막혀가고 있었습니다.          


 흥국생명은 체력적인 문제를 안고 있거든요. 정규시즌 일주일에 많으면 2경기 정도를 했었는데, 포스트시즌은 이틀에 한 번씩 경기를 합니다. 흥국생명은 인천과 대전을 오가며 정관장과 3번의 경기를 했고, 겨우 하루 쉬고 현대건설과 챔피언결정전 1차전을 하는 것입니다.     


 네, 흥국생명의 점프는 점점 낮아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흥국생명은 반드시 3세트에 경기를 끝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정규리그 1위는 그렇게 쉽게 패배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3세트부터 현대건설은 원래 우리가 알던 현대건설로 돌아왔습니다. 특히 모마의 공격 성공률이 올라간 것이 컸습니다. 모마가 터지기 시작하니 다른 선수들도 자연스럽게 기회가 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9세트 만에 흥국생명을 상대로 승리했습니다. 기세를 몰아 4세트도 가져왔구요.          



그야말로 엄청났던 5세트... 신도 이겨낼 수 없었던 마지막!


 정규리그에서는 5세트까지 가서 지면 승점 1점을 얻습니다. 하지만 챔피언결정전은 다릅니다. 5세트에서 지면 그저 1패를 얻을 뿐입니다. 체력 소진, 허무함까지 덤으로 얻게 되죠.     


 5세트 9대 12. 흥국은 3점 차로 이기고 있었고 다 왔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5세트에 있었던 현대건설의 치명적인 범실들은 승리의 기운이 흥국생명에게 왔다고 믿었을 겁니다.     


 이 날도 김연경 선수는 정말 말 그대로 신이었습니다. 공격은 기본이고 리시브는 어찌 그렇게 쉽게 하던지요. 현대건설에게 그렇게 어려워 보이던 리시브를 김연경 선수는 툭툭 해냈습니다. 심지어 서브마저도 날카로웠습니다.


 하지만 그 신에게 유일하게 허락되지 않은 딱 한 가지는 체력이었습니다. 아무리 신이라고 할지라도 7일 동안 4경기를 치르는 강행군 속에 5세트까지 하는 건 쉽지 않았을 겁니다. 그럼에도 흥국생명이 13대 14로 매치포인트를 선점했을 때, 흥국생명은 승리를 확신했을 겁니다. 1차전을 이긴다면 원정 경기에서 최소 1승 1패를 확보하고, 2차전은 상황에 따라 체력 안배도 가능했기에 흥국생명에게는 이 날 승리가 매우 매우 필요했습니다. 3월 16일(토) 시즌 마지막 경기 이후 줄곧 휴식을 취한 현대건설을 이기기 위해서는 그래야만 했습니다.   


신은 지쳐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대건설의 모마는 잘 비축한 100%의 체력을 바탕으로 강력한 스파이크와 서브에이스를 날렸고, 흥국생명의 희망을 박살 내 버렸습니다. 현대건설은 처음 2세트를 허무하게 내줬지만, 3,4,5세트를 가져오며 짜릿한 승리를 만들어 냈습니다.

      

 요새 도파민 중독이라는 말 많이 하잖아요. 5세트 막판, 현대건설이 점수를 따라가고 마침내 듀스까지 가는 엄청난 경기가 되었을 때, 진정 제 도파민이 폭주하고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이런 경기가 있나 싶은 경기를, 심지어 그것도 챔피언결정전에서, 직접 경기장에서 보는 행운을 얻다니요!


 도파민이 아쉬운 분들에게 다시 한번 여자 배구를 추천드립니다!     


https://brunch.co.kr/@heuriric/59

      

 이걸 보기 위해 4년을 기다린 저에게도 이 날 경기는 최고의 직관 경기였습니다. 그동안은 코로나와 육아로 인해 이런 큰 경기를 관람할 수 없었습니다.


 챔피언결정전의 입장권은 평소보다 조금 비싸지만, 응원패키지(티셔츠, 깃발, 클리퍼)를 기본으로 주고 평소보다 관중들에게 주는 상품도 많습니다. 저는 여기에 더해 운 좋게 현대건설의 마스코트 인형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건 흥국생명의 홈인 인천에서 펼쳐질 경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 거친 육아 속에서 잠시 하루 일탈하여 역대급 경기를 직접 볼 수 있게 허락해 준 제 와이프에게 이 글을 빌어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ㅎㅎ)              



2차전을 앞두고


 흥국생명은 원정 경기였지만 응원만큼은 홈경기를 방불케 했습니다. 목소리의 데시벨부터 달랐고, 김연경 선수의 스파이크가 꽂힐 때마다 수원체육관에는 핑크빛이 가득했습니다.

      

사진만 보면 누구 홈인지 알 수가 없을 정도로 핑크의 열기는 대단했습니다


 2차전에 원정팬들의 함성이 흥국생명에게는 절실합니다. 5세트 듀스까지 가며 체력을 소진했기에 2차전은 반드시 승리해야 그다음을 준비할 여유가 생깁니다. 신을 보유했지만 배구는 개인 스포츠가 아닙니다. 그 신을 도와줄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졌지만 잘 싸운 흥국생명 선수들 (사진 출처 : KOVO 홈페이지)


 현대건설은 극적인 승리로 여유가 살짝 생겼지만 자신감과 경기력 회복이 절실합니다. 특히 김다인 선수를 포함한 선수들의 과감함이 필요합니다. 모마 혼자의 힘으로는 절대 계속 이길 수 없습니다. 1차전을 이겼으니 2차전은 져도 된다는 마음으로 도전할 필요가 있습니다. 실패하더라도 다양한 공격 옵션을 가져갈 필요가 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겨우 웃을 수 있었던 현대건설 선수들 (사진 출처: KOVO 홈페이지)


 그리고 1차전에 결정적인 실수를 했던 고예림 선수와 윌로우 선수가 지난 경기는 빨리 잊고 2차전에서는 자신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라며, 2차전도 멋진 경기를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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