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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리릭 Apr 04. 2022

허무하지만... 그래도 여자배구 덕분에 행복했습니다!

여자배구 V리그 21-22 시즌 리뷰

 이 글을 쓰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너무 허무했습니다. 차라리 처음부터 끝낸다고 했으면 조금 더 나았을까요? 불안한 희망은 불과 2경기만에 잔인하게 사라졌습니다. 미리 만들어뒀던 매뉴얼과 규칙을 무시하면서까지 강행하려 했던 시즌은 허무하게 종료되었습니다.


 너무 억울했습니다. 왜 하필 제가 가장 좋아하는 여자배구여야만 하는 건지... 남자배구는 포스트 시즌을 시작했고, 농구도 남자부와 여자부 모두 진행되고 있는데 왜 여자배구만 이렇게 끝나야만 하는 건지...


 작년 10월 13일, 시즌 프리뷰를 시작으로 거의 거르지 않고 일주일에 한편씩 꼬박꼬박 글을 썼습니다. 어느 정도 순위표가 확정되어 가면서 앞으로 펼쳐질 봄 배구를 행복하게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허무한 결론과 결말에... 한동안 여자배구 소식을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났고 그래도 마무리는 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고도 없이 갑자기 떠나버린 짝사랑에게 전하지 못할 마지막 편지를 쓰듯이 말이죠. 




여자배구 V리그 순위 / 이미지 출처 : KOVO 한국배구연맹 홈페이지


 급하게 시즌이 종료됐고 여자배구 순위는 그 시점의 순위로 결정됐습니다. 팀마다 치른 경기수가 다르지만, 경기수를 동일하게 맞춘다고 해도 순위표에 변화가 생기지는 않습니다. 

 


1위 현대건설


 코로나 없이 시즌이 계속 진행됐더라면 역대급 성적으로 시즌을 마칠 수 있는 현대건설이었습니다. 코로나 이슈가 발생하기 전까지 개막 후 12연승, 한국도로공사에게 1패를 당한 후 다시 여자부 최다연승인 15연승. 많은 기록들을 새롭게 썼고, 더 쓸 수 있었습니다만 아쉽게 코로나와 함께 많은 것들이 물거품이 되어버렸습니다. 승점 단 1점이 부족하여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 짓지 못한 채 시즌이 종료된 것도 많이 아쉽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스포츠고, 인생인 것도 같습니다. 


  지난 시즌 최하위에서 역대급 1위로 올라선 것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현대건설은 감독 교체와 함께 새로운 모습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양효진 선수가 있습니다. 지난 시즌 잠시 주춤했던 양효진 선수는 도쿄올림픽을 겪으며 한층 노련해졌습니다. 2라운드 MVP를 받기도 했죠. 



 외국인 선수 야스민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시즌 초반 야스민의 강서브는 알고도 못 막을 정도였습니다. 야스민 선수는 1라운드 MVP에 선정됐었죠.


 숨은 MVP는 세터 김다인 선수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공격은 세터에서 시작합니다. 김다인 세터는 이전과는 다른 노련미를 장착했습니다. 과감하게 공격 루트를 다양하게 가져가면서 상대팀을 속였죠. 양효진의 부활, 야스민의 공격력, 정지윤의 레프트 정착... 이 모든 것들이 가능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분명 김다인 세터의 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FA가 된 양효진 선수를 현대건설이 절대 놓치지 않을 것이고, 야스민 선수는 재계약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대건설은 이번 시즌 전력을 거의 그대로 다음 시즌에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다음 시즌에도 압도적인 성적과 함께 제대로 된 통합우승에 다시 도전할 수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이미지 출처 : 현대건설 배구단 페이스북



2위 한국도로공사


 현대건설이 역대급 성적으로도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 짓지 못한 것은 그만큼 2위 한국도로공사가 잘했기 때문이겠죠. 개막 후 한 번도 지지 않던 현대건설을 꺾은 건 한국도로공사였습니다. 한국도로공사는 마지막까지 강력한 2위의 존재감을 뽐내며 결국 현대건설의 우승 확정을 막았습니다. 한국도로공사가 기록한 승점 70점은 역대 3위에 해당하는 승점일 정도로 대단한 시즌이었습니다.


 한국도로공사는 이번 시즌 더블 세터 체제로 성공을 거뒀습니다. 보통 강팀은 한 명의 주전 세터를 사용하는데, 한국도로공사는 이고은 세터와 이윤정 세터를 교체하면서 상대팀에게 혼란을 줬습니다. 

 다만, 이번 시즌을 끝으로 FA가 된 이고은 세터가 페퍼저축은행으로 가게 됐습니다. 다음 시즌은 이윤정 세터가 붙박이 주전 세터가 될지, 아니면 다른 세터와 또 더블 세터 체제로 갈지 궁금해집니다.


 한국도로공사의 이번 시즌 MVP는 리베로 임명옥 선수라고 생각합니다. 임명옥 선수는 수비, 리시브, 디그 모두 1위에 올랐습니다. 임명옥 선수는 1986년생, 올해 37세입니다. 하지만 에이징 커브가 아닌 노련미와 경험치만을 가득 장착하여 역대급 수비를 보여줬습니다. 한국도로공사는 그에 대한 보답으로 FA 자격을 취득한 임명옥 선수와 3억 5천만 원이라는 역대 리베로 최고 연봉으로 재계약을 맺었습니다.


 임명옥 선수보다 5살이나 더 많은 정대영 선수도 블로킹 4위를 기록하는 등 눈부신 활약을 보여줬습니다.



 외국인 선수와 주전 세터 체제가 바뀔 가능성이 높은 한국도로공사가 다음 시즌에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됩니다.


이미지 출처 : 한국도로공사 배구단 페이스북 



3위 GS칼텍스


 GS칼텍스가 강팀은 강팀이었습니다. 지난 시즌 여자부 최초 트레블에 빛났던 GS칼텍스는 챔피언결정전 공동 MVP인 이소영 선수와 러츠 선수가 모두 팀을 떠나면서 위기를 맞았습니다. 하지만 기본 전력이 워낙 탄탄하고 주전과 비주전의 실력 차이가 적은 팀이라 그런지 기대 이상으로 잘해줬다고 생각합니다.


 외국인 선수 모마의 활약이 대단했습니다. 신장은 크지 않지만 점프력과 파워를 장착해 득점 1위를 기록하며 4,5라운드 MVP에 선정됐습니다. 아쉬운 건 역시 강소휘 선수였습니다. 팀의 에이스가 되어야 한다는 부담감과 부상 여파로 기대만큼 활약을 못해줬습니다. 차상현 감독도 이 점에 대해 여러 번 인터뷰에서 말한 적이 있죠. 뭔가 2% 아쉬운 부분이 채워지지 못하고 시즌이 끝나버렸습니다.


 FA 대상자인 안혜진, 유서연 선수가 모두 잔류를 선택했습니다. 안정적으로 장기간 팀을 이끌고 있는 차상현 감독을 중심으로 다음 시즌에도 여전히 강팀의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예상됩니다. 강소휘 선수가 다시 자신감을 가득 장착하여 맹활약해주기를 기대해 봅니다.       

이미지 출처 : GS칼텍스 배구단 페이스북



4위 KGC인삼공사


 개인적으로 가장 많이 기대했던 팀인데 성적은 생각보다 좋지 않았습니다. 시즌 초반 이소영 선수 영입 효과로 상위권을 지켰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승보다 패가 많아졌고, 결국 15승 17패로 시즌을 마감했습니다. 


 팀 전력의 절반 이상이면서 의존도가 너무 높았던 외국인 선수 디우프가 떠났고, 상대적으로 수비가 좋은 엘레나 선수를 영입했습니다. 거기에 이소영 선수가 합류하면서 균형 잡힌 전력이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두 선수 모두 수비만 하다가 끝나버린 것 같은 기분입니다. 

 오지영 선수가 떠난 자리에 급하게 들어와서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던 노란 리베로가 부상으로 떠난 여파가 너무 컸습니다. 



 이소영 선수가 돌아온 에이스가 될 수 있느냐가 다음 시즌의 성패를 결정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거기에 정호영 선수가 조금 더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고, 노란 선수가 부상 없이 수비를 지탱해준다면 다음 시즌 다시 한번 봄 배구에 도전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이미지 출처 : KGC인삼공사 배구단 페이스북



5위 IBK기업은행


 시즌 후반을 지배했던 것이 코로나라면, 시즌 초반을 지배했던 건 IBK기업은행이었습니다. 감독 항명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논란을 만들었고, 특정 선수와 구단은 끝나지 않는 진실 게임을 펼쳤습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팬들에게 돌아갔습니다. 도쿄올림픽 4강 진출과 함께 한껏 뜨거워졌던 여자배구의 열기는 이 사건으로 차갑게 식을 뻔했습니다. 경기가 있을 때면 경기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감독대행과 악수를 하는지 여부가 더 중요한 뉴스가 될 정도였으니까요.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감독과 코치, 주전 세터가 모두 팀을 떠났고 새로운 감독과 새로운 외국인 선수가 왔습니다. 그리고 달라졌습니다. 새롭게 주전 세터를 맡은 김하경 세터가 눈물 가득한 성장을 하면서 IBK기업은행은 5위까지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그 눈물이 비시즌 동안 다시 한번 성장의 밑거름이 된다면 다음 시즌의 활약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 시즌 여자배구 시청률 TOP5 중 4경기가 IBK기업은행 경기였습니다. 순위는 낮았지만 IBK기업은행을 응원하는 팬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습니다. 다음 시즌에는 이런 인기에 부응할 수 있는, 더 멋지게 달라진 IBK기업은행을 기대해 봅니다.


이미지 출처 : IBK기업은행 배구단 페이스북 



6위 흥국생명


 지난 시즌 주전 선수 중 절반이 사라진 채로 맞이한 시즌이었습니다. 살아있는 전설인 리베로 김해란 선수가 복귀했지만 순위가 떨어지는 것까지 막기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외국인 선수 캣벨의 활약으로 시즌 초반에는 기대 이상으로 버텼지만, 캣벨의 체력 저하와 함께 순위도 떨어졌습니다. 결국 IBK기업은행에게 5위 자리마저 내주며 6위로 시즌을 종료했습니다.


 흥국생명에서는 이주아 선수의 활약이 돋보였습니다. 블로킹 3위를 기록하면서 자신감과 실력을 채워가는 모습이었습니다. 이주아 선수는 2018-2019 시즌 정지윤, 박은진 선수와 함께 프로에 데뷔했습니다. 치열한 경쟁 끝에 신인왕은 정지윤 선수가 수상했지만, 3년이 지난 지금 3명의 선수 모두 우리나라 배구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여자배구의 현재가 된 이들이 만들어갈 우리나라 배구를 기대해 봅니다


 신인 정윤주 선수의 활약도 빛났습니다. 한국도로공사 세터 이윤정 선수와 이번 시즌 신인왕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할 것으로 보이는 정윤주 선수는 신인답지 않은 과감한 공격으로 흥국생명 팬들에게 통쾌함을 선물해 줬습니다.


 흥국생명은 8년 동안 팀을 이끌었던 박미희 감독이 물러나고 남자부에서 지도자 경험이 많은 권순찬 감독을 새롭게 영입했습니다. 김호철 감독의 영입으로 새롭게 바뀐 IBK기업은행처럼 흥국생명도 긍정적인 변신을 할 수 있을지 다음 시즌이 기대됩니다.


이미지 출처 : 흥국생명 배구단 페이스북



7위 페퍼저축은행


 여자배구에 10년 만에 새롭게 창단한 페퍼저축은행은 시즌 전 목표로 했던 6승을 달성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첫 시즌을 시작한 팀입니다. 당연히 아쉬운 부분도, 부족한 부분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선수들은 투지와 열정을 불태웠고, 홈구장 팬들은 성적과 관계없이 열띤 응원을 보내줬습니다.  


 처음부터 잘하기를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무기력한 경기가 아닌 늘 최선을 다하는 프로다운 경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리고 페퍼저축은행은 그 기대를 충족시켜준 시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다음 시즌부터는 아닙니다. 이제는 처음이 아니니까요. 팬들의 기대치는 조금 더 올라갈 것입니다. 단순히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닌 전보다 나은 결과를 원할 것입니다. 풀타임 주전으로 한 시즌을 소화하면서 선수들이 많이 느끼고 경험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걸 바탕으로 다음 시즌에는 더 멋진 플레이를 보여주는 페퍼저축은행을 기대해 봅니다.


이미지 출처 : 페퍼저축은행 배구단 페이스북




 급하게 종료된 시즌이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한 번 정리하면서 뒤돌아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도쿄올림픽의 짜릿했던 순간부터 현대건설의 15연승, 페퍼저축은행의 창단 첫 승까지 많은 일들이 생각납니다.


 급하게 시즌이 종료되면서 팬으로서 매우 아쉽고 안타깝습니다. 그래도 선수들이 보여준 멋진 경기 덕분에 행복했던 시즌이었습니다. 떠올릴 수 있는 즐거운 추억을 선물해 준 선수들에게 다시 한번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모두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다음 시즌에는 부상 없이, 코로나 없이 무사히 시즌을 완주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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